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여성신문이 창간 30주년을 맞았습니다.

시민이 주주로 참여해 창간한 여성신문은 기존 뉴스미디어들이 외면해온 여성문제를 여성의 눈으로, 여성의 심장으로 줄기차게 보도해왔습니다. 우리 역사상 최초의 여성주의 정론지로서 여성신문은 매주 지면을 통해 여성 운동을 펼쳐왔고, 이제 디지털 역량을 갖춘 플랫폼 미디어로 성장했습니다.

30주년 기념호 첫페이지에는 1988년 10월28일 창간 0호 표지를 소환했습니다. 강고한 벽을 찢고 나오는 강인한 여성들 모습이 인상적이지요? 우리는 그때 독자 여러분께 ‘자매애는 강하다’는 제목으로 편지를 띄웠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우주의 축을 옮기는 힘, 그것은 오직 자매애”라고 선언한 그 정신을 오늘도 이어갑니다. ‘페미니즘만 외치는 편파적 매체’, ‘성폭력 사건만 다루는 성폭력 신문’ 이라는 등의 질시도 있었지만, 여성신문은 꿋꿋하게 ‘미움받을 용기'를 실천해왔고, 앞으로도 여성 인권 신장과 세상의 변화를 위해 신문을 만들겠습니다.

지난 30년 간 우리 사회는 참 많이 변했습니다. 여성신문 30주년의 기록으로 이번에 펴낸 『세상을 바꾼 101가지 사건』을 보면 달걀로 바위를 깨겠다고 덤벼들며 “얼룩이라도 남기자”고 했던 작은 저항들이 얼마나 큰 울림으로 확대되어 진짜로 바위를 깼는지, 어떻게 기적같이 놀라운 일들이 실현됐는지, 새삼 놀랍기도 합니다.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좌절하면서도 여성신문은 여성들과 함께 전진했습니다.

지난 30년을 두 단어로 요약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반복’입니다. 올해 여름과 가을, 혜화역에 여성 7만명이 모여 분노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 시위의 원인이 된 불법 촬영과 동영상 유포, 성차별적 수사와 피해자에 대한 2차, 3차 가해는 1999년 H군 비디오 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 사건으로 피해자인 여배우가 오랫 동안 스크린을 떠나야했습니다. 이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기에 또다른 여성 가수가 피해자로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불법촬영 동영상이 ‘리벤지 포르노’라는(도대체 무엇을 복수한다는 말입니까) 어이없는 용어를 달고 유통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단어는 희망입니다. 뿌리 깊은 성차별 관행과 끔찍한 성범죄에 맞서는 여성들이 힘차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시민 서지현, 노동자 김지은은 관행적인 성차별, 성폭력을 고발하고 저항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미투는 개인의 존엄을 파괴한 범죄에 대한 고발입니다. 이들은 끝내 이길 것입니다. 한국 사회는 이 희망이 가리키는 대로 흘러가면 됩니다.

여성신문의 지난 30년의 역사는 승리의 허스토리이자 여성들의 연대와 용기의 역사입니다. 다시 10년 후, 그리고 20년 후 뒤를 돌아보면 더욱 큰 승리의 역사가 담길 것이라 확신합니다.

여성신문을 매주 발행하는 일은 실로 전쟁 같았습니다. 그러나 좀 느리고, 거칠었어도 여성주의 미디어로서의 사명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여성신문 30년은 여성들의 연대와 용기의 기록입니다. 지난 30년 간 여성신문과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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