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하는엄마들
사립유치원 비판에 ‘가짜 엄마들’ 음해
선거 공약, 법안 발의에도 공격

여성은 변하는데 정당은 남성 중심

총선 앞두고 여성 목소리 커질수록
백래시도 더욱 강해질 것

여성의 정치적 목소리가 삭제되고 있다 / 여성신문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Backlash)가 정치 영역에서도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을 뜻하는 백래시는 특히 정치권 안팎에서 여성의 참여를 무력화시키고 법·제도 개선을 가로막는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어 심각성을 더한다.

최근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를 드러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들을 가리켜 ‘정치하고 싶은 엄마들’이라는 비아냥부터 ‘가짜 엄마’라는 음해까지 제기됐다. 이들을 향한 비방과 폄하는 새삼스러운 문제가 아니다. 엄마라는 존재가 정치를 한다는 이유로 창립 이후 따라다닌 꼬리표 같은 존재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이름 그대로 ‘엄마들의 정치 참여를 도모하는 비영리단체’다. 여성 특히 엄마들이 가부장제 사회의 각종 불합리와 모순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점에서 엄마들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들이 집중하는 분야는 돌봄과 노동 정책이다. 사립유치원 비리 공론화는 이들이 지난해 정부와 교육청 등을 상대로 비리가 적발된 유치원에 대한 정보공개와 행정소송을 벌이면서 촉발시킨 것이다. 창립총회 당시 밝힌 설립 목적은 이렇다.

“엄마들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를 통해 모든 엄마가 차별받지 않는 성 평등 사회·모든 아이가 사람답게 사는 복지 사회·모든 생명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비폭력 사회·미래 세대의 환경권을 옹호하는 생태 사회를 건설하고자 한다.”

6.13지방선거에 출마해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슬로건을 내걸었던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에게 가해진 백래시는 젊은 여성과 정치의 결합을 불편하게 여기는 인식을 드러낸 사건이다. 서울 곳곳에서 후보의 포스터와 현수막이 훼손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한 유명 남성 변호사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1920년대 계몽주의 모더니즘 여성 삘이 나는 아주 더러운 사진을 본다. 개시건방진”이라며 “찢어버리고 싶은 벽보”라고 신 후보를 공개 비난했다.

성평등 사회를 만들겠노라고 선언한 신 위원장은 요즘엔 불법 촬영물을 불법 유포하는 웹하드 카르텔 등의 문제에 적극 대응하고 최근 벌어진 이수역 폭행사건을 두고 정치인 가운데에서는 유일하게 ‘여성혐오 범죄’라고 비판하는 등 여성들이 겪는 폭력과 차별 해소에 앞장서고 있다. 이때문에 또 공격받기도 했다.

현역 국회의원들도 백래시에 시달린다. 특히 여성운동가 출신 의원들이 여성 인권에 관한 법안을 발의하고 공개발언을 하면 해당 의원실에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기사에는 비방하는 댓글이 이어진다. “페미 X”, “다음에 못 볼 줄 알아라”라는 식이다. 정춘숙 의원실 보좌진은 “전화가 계속 걸려오는데 레퍼토리가 비슷한 편”이라면서 “특정 집단에서 입을 막으려는 의도가 느껴진다. 부정적인 반응을 계속 접하면 위축될 수밖에 없는데다 정치인으로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스스로 더욱 조심하게 된다”고 했다.

여성의 정치 참여를 가로막는 가장 직접적인 백래시는 정치권 내부에서 벌어지는 구조적인 여성 차별이다. 선거를 앞두고 여성 공천 할당 의무를 이행할 것을 촉구하면 “준비된 여성 인재가 없다”고 반발하며 오히려 여성혐오를 확대재생산한다. 이같은 문제는 당 지도부부터 지역당 책임자까지 조직적으로 작동한다.

여성 공천 의무를 당 지도부가 외면하면서 여성 공천을 촉구하는 후보자와 시민단체들이 오히려 역풍을 맞기도 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광역자치단체장 남성 후보 17명을 소개하는 지도를 만들었고 이에 한국여성단체연합이 비판 성명을 내자 악성 댓글이 쏟아졌다. 특히 여성 할당제와 관련해서는 구조적 차별은 무시한 채 “여성들이 노력하지 않고 자리를 차지하려한다”고 주장하면서 “노력해서 당선되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할당제는 ‘기존의 차별로 인한 영향을 없앨 수 있도록 현재의 정치·경제·사회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조치로, 차별로 인한 영향이 없어질 때까지의 잠정적인 조치’라는 의미로 성평등을 위해 법으로 정한 중요한 수단이다.

정치에서 여성을 배제하려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도, 한국 사회만의 문제도 아니다. 공동체가 형성되고 정치 제도가 만들어진 역사와 함께 현재진행형이다. 『젠더정치학』에 따르면 ‘여성은 정치와 무관한 존재’라는 생각의 밑바닥에는 성에 따라 사회적 역할이 분리되어 주어지고 여성은 사적 영역에서, 남성은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존재로 인식돼왔다.

여성의 정치 참여를 주장하다 희생된 프랑스의 여성운동가이자 작가인 올랭프 드 구즈는 정치 영역에서 벌어진 백래시의 대표적인 희생양이다.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공포된 ‘인권선언문’에 평등의 권리가 여성까지 확대되지 않는 것을 보고 이에 빗댄 ‘여권선언문’을 썼다. 여성도 남성과 동일하게 공직에서의 참여권, 자유의사에 의한 결혼 및 재산권 및 상속권을 가진다고 천명한 것이다. 결국 단두대에 오른 그는 처형당하면서 “여성이 사형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 연설 연단 위에 오를 권리도 당연히 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여성·젠더 문제 정책과 제도로 해결할 길이 정치

여성의 정치 참여는 남성의 과잉 대표성으로 야기된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남성과 다른 우선순위로 사회를 보고 여성의 눈으로 문제에 접근함으로써 문제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부대표는 정치권의 백래시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해야 하는 이유로 “의회와 정부는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여성/젠더 문제를 제도적·정책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조직이기 때문에 이들이 여성들의 문제제기에 저항한다는 것은 문제를 해결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며, 일부 남성들의 불만을 이용해 소수 남성의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라고 지적했다.

김은희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위원은 현재 상황에 대해 “장기적으로는 백래시가 극복된다고 하지만 당장 직면한 현실은 답답하다”고 밝혔다. “여성 개인 당사자들이 진화하면서 활동이 확장되는 면은 긍정적이지만 제도 정치권이 어떻게 체감하고 변화하는가에 대한 가시적인 모습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특히 정치권 내 백래시는 곧 본격화될 총선 레이스에서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제21대 총선이 1년 5개월 앞으로 다가왔으며 이미 거대 정당들과 정치인들은 총선을 향해 뛰고 있다. 제도를 결정하는 권력자를 바꾸려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분출하는 만큼 남성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반작용이 더욱 강해질 수 있고, 심지어 성별 갈등을 부추기는 형태로도 표출될 위험이 있다.

권 부대표는 “미국 여성들이 중간선거에 뛰어들었듯이 지금과는 다른 정치를 위해 여성들이 지금부터 현실정치에 적극 개입하고 총선을 준비해야 한다. 여성/젠더 의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 정치인을 적극 지지하는 가시적인 활동도 필요하고, 정당의 당원으로 참여해 성평등한 정당으로 만드는 활동, 나아가 직접 후보로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위원은 “정치권이 변화해야 사회에서 분출하는 목소리를 담을 그릇이 생기는 것이고, 새로운 정치 구조의 변화가 가능해진다”면서 “여성의 활동이 정당과 정치를 바꾸는 흐름으로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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