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두레유에서 열린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과 동거가족들의 간담회에 참석한 동거가족 (사진 왼쪽) 김복남‧권정수씨가 간담회 후 야외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1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두레유에서 열린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과 동거가족들의 간담회에 참석한 동거가족 김복남(왼쪽)‧권정수씨가 간담회 후 야외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가족의 형태가 점점 더 다양하게 분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같이 사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동거가족은 단지 법적인 사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여전히 부정적인 시선과 차별에 시달린다. 동거가족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제도적 장치 또한 거의 없다. 이들을 온전한 가족으로 바라볼 순 없는 걸까? 21일 여성가족부는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다양한 동거 가족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간담회에는 결혼을 선택하지 않고 동거 중인 30대부터 80대 남녀 8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모인 동거가족들은 “사회적인 인식변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 차원의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결혼보단 인연을 택했다 
11년째 동거중인 부부 

김복남(70)씨와 권정수(남·80)씨는 울산시노인복지관에서 만나 11년째 동거 중이다. 은행계통에서 근무했던 권정수씨는 사별 14년차로, 성인이 된 딸 둘과 아들 한 명을 두고 있다. 김복남씨는 복지관에서 일하기 전 의료업계에서 30년 이상 근무했다. 사별 19년차로 성인이 된 딸 두 명과 아들 한 명을 두고 있다.

“그동안 겪은 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동거한다는 이유로 뒤에서 쑥덕거리고 눈초리가 따가울 때가 많았습니다. ‘남편에게 무언가를 바라지 않느냐’는 말을 들었고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복지관을 옮겨야 할 때도 있었죠. 저희처럼 복지관일자리위원회 이목희 부위원장,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강민정 여성노동연구센터장, 육아정책연구소 유해미 여성노동연구센터장, 여성가족부 이건정 여성정책국장,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장윤숙 사무처장 등 정부 부처 관계자들도 마찬가지로 여성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에 인연을 맺게 된 경우가 많은데 전부 숨어 살다 보니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자리가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처음 복지관에서 인연을 맺은 둘은 아직도 손을 꼭 잡고 출퇴근을 함께 한다. 아침에 함께 출근한 뒤 때론 각자의 집으로 퇴근할 때도 있다. 그럴 때일수록 둘은 밥은 잘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서로의 안부를 더욱 살뜰히 챙긴다. 권씨는 그런 아내를 “짝꿍이자 안사람, 친구이자 애인”이라고 표현한다.

권씨의 바람은 앞으로도 아내와 지금처럼 함께 늙어가는 것이다. “같이 산다고 꼭 호적에 올려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녀들 문제도 있고 무엇보다 우린 지금 이대로가 좋습니다.” 이제는 자식들도 둘의 사이를 존중한다. 대학교 강연에 나가 두 사람의 사이를 당당히 밝히고 큰 박수갈채를 받은 적도 있다.

21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두레유에서 열린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과 동거가족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한 방송인 허수경씨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1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두레유에서 열린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과 동거가족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한 방송인 허수경씨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방송인 허수경
“남편과 7년째 동거”

방송인 허수경(52)씨는 대학교수인 남편과 7년째 동거 중이다. 제주도에 거주하고 있는 허씨는 서울에서 일하는 남편과 주말부부로 생활하고 있다. 둘은 엄연한 가족이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다. 11살 딸과 남편의 아들(21)은 각각 자신과 남편의 호적에 올라있다. 온 가족이 한 공간에 모일 때는 설날이나 추석 등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다.

허씨는 동거가정의 가장 큰 문제는 자녀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동거가족이 자녀를 낳게 되면 그 아이는 시작부터 괴로운 환경이 놓이게 돼요. 제 딸은 엄마와 아빠가 다 있는 상황이지만 법적으로 ‘한부모 가정’이다 보니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또래 집단 사이에서 놀림을 받거나 아이가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생깁니다. 부모의 상황이 어떠냐에 따라 자녀가 차별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허씨는 “남편과 7년째 동반자로 함께 지냈지만, 무언가를 할 때마다 사실혼을 증명할 수 있는 각종 증빙 서류를 마련하느라 애쓸 때가 많다”는 고충을 털어놨다. 또 법적인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해 노년기에 둘 중 누군가가 응급실에 실려 가더라도 수술동의서에 사인할 수조차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허씨는 혼인신고 대신 남편과 자신의 이름을 딴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허씨에게 이 나무는 그 어떤 혼인신고보다 강력하고 중요한 징표다.

“의지하고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가 있더라도 자녀들의 반대나 다른 이유로 결혼하지 못하는 부부들이 많아요. 함께 사는 두 사람이 오랜 기간 관계를 유지한다면 ‘동반자’로 인정하고 권리를 보장하고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1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두레유에서 열린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과 동거가족들의 간담회 후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허수경,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박상규, 이라나, 김복남, 권정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1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두레유에서 열린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과 동거가족들의 간담회 후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허수경,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박상규, 이라나, 김복남, 권정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동거커플에게도 휴가를”

30대 민세진(가명·남)씨는 변호사인 아내와 12년째 동거 중이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지만 1년 전 아내와 결혼식을 올렸다.

민씨는 오랜 기간 동거 생활을 해 온 어머니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동거를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민씨가 중학교 때 이혼한 어머니는 현재 민씨와 스무살이 넘게 차이 나는 동생을 키우고 있다. 민씨의 친아버지 또한 두 번의 재혼 후 현재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아내와 살고 있다.

“사실 저와 제 아내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비혼’에 동의하고 동거를 시작한 상태기 때문에 결혼식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번듯한 직장에 취업한 아내가 매일 회사로 데리러 오는 저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을 보고 혼인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결혼식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까지 거부해왔던 제도의 부분들을 어쩔 수 없이 순응해야 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슬펐죠.”

민씨는 자신의 경우 동거한다는 사실을 주변에게 다 밝힌 상황이지만 아내는 부모님에게조차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고 했다.

“처음 동거를 하기 시작한 2006년 정도 주변에 동거한다는 사실을 밝혔더니 ‘좋겠네’ ‘부럽다’ 등의 반응이 나오더라고요. 동거를 통해 성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떠올린 거죠. 그런 질문에 대해 처음에는 웃고 넘어갔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곤란할 때도 많았습니다.”

5년째 동거 중인 박상규(남·43)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는 “동거커플도 결혼하는 커플처럼 축하받을 수 있고 휴가도 주는 사회적, 제도적 분위기가 형성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 직장이 나름대로 진보적인 조직으로 평가를 받는 곳이었습니다. 퇴사 직전 동거 여행을 보내 달라고 농담 식으로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혜택을 받진 못했죠. 한국에서는 노동법상 이성애자와의 결혼만 보장받는 현실입니다.”

21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두레유에서 열린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과 동거가족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한 박상규 기자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1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두레유에서 열린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과 동거가족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한 박상규 기자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동거가족은 정부지원 배제

동거 7년차의 40대 여성 진세연(가명)씨는 남편, 고양이 3마리와 함께 지내고 있다. 진씨는 그동안의 동거 생활을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도망자’같이 지낸 세월이라고 표현했다.

진씨가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는 남편 가족과의 결합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생기는 남편 가족과의 갈등과 상처가 신경 쓰였다. 아이를 낳으려면 혼인신고를 해야 할 것 같아 현재 출산계획도 없다.

“양쪽 가족을 관리하는 부분이 제겐 너무 어려웠어요. 지금까지 제도권에 있는 혜택들을 모두 버리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어 아이를 갖기 힘드니 아이를 포기해버리는 거죠. 어쩌면 사람이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감인데 단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런 선택들이 많이 제한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씨는 어르신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일부러 결혼했다고 거짓말을 한 적도 있다.

“요양보호사로 일할 때 미혼 여성이라고 하면 어르신들이 불안해하세요. 그럴 때 이미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다고 말하는 거죠. 마흔이나 됐는데 결혼을 안 했다고 하면 더더욱 신뢰하지 못하세요. 동거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못 꺼내고요.”

30대 연수진(가명)씨는 6년째 동거 중이다. 독립 가구로 살던 남자친구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같이 살게 됐다.

동거하면서 결혼을 고민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결혼과 동시에 서로의 가족관계가 한꺼번에 들어온다는 사실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가부장적인 문화에 순응하며 문제없이 살 자신이 없었다.

연씨는 동거 가족들이 정부 지원에서 배제되는 현실을 지적했다. “저는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인데 만약 배우자로 인정되면 남편의 피부양자가 돼 부담이 줄어들어요. 사소하지만 자동차 보험료나 주택청약을 할 때도 1인가구로 분류돼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아주 적어요.”

이와 함께 동거를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도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 같은 경우는 결혼하지 않고 동거한다고 했을 때 ‘정상성’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는 시선이 있어요. 저 같은 경우 ‘기둥서방’이랑 같이 산다는 말까지 들었는데 굉장히 모멸감이 들었어요.”

그는 “비혼이라도 자신이 가진 선호라던가 정체성, 가치관에 따라 자유롭게 누군가와 살 수 있고 가구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동거가족에 대한 사회적 포용이 꼭 결혼, 출산으로 가는 경로로 국한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21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두레유에서 동거가족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21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두레유에서 동거가족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딸 낳고 혼인신고한
장애인 부부

장애인 이라나(37)씨는 동거 10개월 만에 딸을 낳으면서 혼인신고를 하게 됐다.

“아이를 낳게 되면서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들어가 보호받게 됐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양육하면서 오히려 어려운 부분도 많이 생겼어요.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 결혼 후 ‘활동보조 독거’에서 탈락했습니다. ‘홈 헬퍼’ 등 장애여성을 위한 양육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이는 오로지 장애여성에게만 양육을 전가하는 현실이 반영된 정책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진선미 장관 “유연한 결합 필요”

진선미 장관은 이날 “남편과 오랜 기간 동거를 해오다 2016년 지난 총선 때 혼인신고를 했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전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2014년에는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닌 동거가족도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한 바 있다.

진 장관은 “혼인신고를 통한 결합만 법적인 보호를 받을 것이 아니라 서로 유연하게 결합한 가족들도 보호를 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만들 것”이라며 “제도권 밖으로 밀려났던 다양한 가족들을 포용하고 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이가 가족 형태와 상관없이 사회구성원으로 동등하게 존중받으며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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