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가족, 편견 거둬라

일상 속 낙인과 차별들

“강간과 같은 성폭력
등으로 임신한 여성”

산부인과서 수차례 입양 권유

미혼모 단체 대표들
“편견·차별 맞설 자립 강화 정책을”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형태를 중심에 둔 가족제도는 이혼 및 재혼의 증가, 혼인율 및 출산율 감소 등으로 인해 갈수록 늘어나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억압하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차별받는 가족 유형인 미혼한부모가족의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들여다봤다.

 

‘미혼모: 합법적이고 정당한 결혼절차 없이 아기를 임신 중이거나 출산한 여성. 혼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여성과 남성의 성교로 혹은 강간과 같은 성폭력 등으로 임신한 여성을 뜻한다.’

미혼모A씨는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검색했다가 경악했다. 첫 화면의 지식백과 코너에서 ‘미혼모’를 ‘강간과 같은 성폭력’ 때문이라고 버젓이 정의했기 때문이다.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이유로 ‘문제가 있는 여자’로 취급받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지금도 이런 편견과 차별적 시선을 접할 때면 움츠러든다. 결혼을 했든 안했든, 아이를 책임지고 키우는 일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지만 사회는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 미혼모를 뜻하는 영어 단어는 싱글맘(single mom)이다. 결혼 여부에 대한 언급이 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과 대비된다.

미혼모 당사자들은 편견과 차별에 맞서고 평등과 존엄을 위해 자조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고 정부도 차별을 개선하기 위한 차별 사례 접수를 받는 등 개선하기 위해 정책을 펴고 있지만 갈 길은 아직도 한참 멀다.

학교·산부인과·어린이집 차별 사례들

미혼모들이 겪는 차별 유형은 다양하다. 위 인터넷 사이트의 정의에 나타나는 것처럼, 미혼모라는 단어(존재)에 대한 낙인과 폄하, 차별을 일상 곳곳에서 맞닥뜨린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가 진행한 전국 6개 시ㆍ도별 미혼모간담회에서 나온 사례에 따르면 이렇다.

한 양육 미혼모는 자녀의 학교에 가족 구성원이 다 기재돼있는 주민등록등본을 제출했지만 아빠가 없다는 이유로 별도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다시 제출할 것을 요구받았다. 그는 “모든 학생들에게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하라는 게 아니라 해당하는 학생만 별도로 제출을 요구해 한부모자녀라는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명백한 문제”라면서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미혼모에게 자녀 입양을 권유하는 행태도 여전히 남아있다. 충남 천안의 한 미혼모는 1년 전 산부인과에 둘째 아이를 출산하러 갔을 때 의사가 입양을 계속 권유했다. 최근엔 첫아이의 어린이집 원장이 둘째까지 어떻게 키울 거냐면서 입양 보내라고 했다. 그나마 가족이 지지해주고 잘 지내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인천시에 거주하는 한 미혼모는 3년 전 아이를 출산할 당시 불쾌감을 떠올렸다. 병원에서 의사가 입양기관 안내 자료를 주면서 상담을 끈질기게 권유했다. 그는 필요 없다고 거절했음에도 의사는 ‘생각해서 권하는 거’라면서 끈질기게 권했다. 이후 제왕절개 수술 후 병실에서 깨어났는데 눈앞에 모르는 남성이 과일바구니를 들고 서있었다. 민간 입양 기관에서 나온 직원이었고 친절하게 입양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설득했으나 결국 거절하자 태도가 돌변해서는 병원을 떠났다고 했다.

어린이집에서는 교사가 수업 중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고 가르쳤다. 아이가 집에 와서 엄마에게 선생님이 아빠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다고 하는데 아빠가 왜 없는지를 물었고, 엄마는 당장 어린이집에 찾아가 교사에게 “사랑해서 낳은 거지, 결혼을 해서 낳은 게 아니다”라고 따졌다고 했다.

직장 면접에서 답변 “남편과 사별”

일자리와 관련한 문제는 비일비재하다. 미혼모들은 채용과정에서 사실대로 말하면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남편에 대해 물으면 ‘사별했다’고 답변하고 만다. 또 “혼자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하면서 아이 양육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일자리가 더 절실하기 때문에 일을 더 열심히 하는데도 일을 못 할 거라고 선을 그으려 든다는 점도 문제”라는 것이 당사자의 말이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미혼모 35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를 보면 임신과 양육 부담으로 직장을 그만둔 경험을 한 미혼모는 각각 59.1%, 47.4%였다. 27.9%는 양육으로 인해 직장에서 권고사직을 강요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영미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고문은 “아이키우기 좋은 사회가 되려면 저출산 정책의 밑바탕부터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비혼이든 기혼이든 임신하고 아이 낳고 기르면 일자리를 잃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보장한다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 고문은 “모든 여성노동자의 임신과 출산이 중요한 일이라는 인식이 전제돼야 하고 출산으로 일을 못할 때는 실업급여도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상가족 기준으로 만든 복지정책서 소외

차별은 가시적이고 직접적으로 발생하기도 하지만, 정상가족 중심의 정책 속에서 역차별의 피해를 입기도 한다. 가령 노동자의 일·생활균형이 정책화 되고 있지만 이 역시 맞벌이 부부 중심이다. 맞벌이 가정에서는 부부가 두명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지만, 한부모가족의 경우 한명만 적용받게 된다. 지난 7월 감사원이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에 한부모 노동자의 육아휴직 이용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개선 방안 마련을 제시한 것도 육아휴직급여 제도가 맞벌이 가정 중심으로 설계돼있다는 맥락에서다.

그러나 부부의 몫을 한부모가 모두 사용할 수 있으면 좋지만 현재의 고용환경에서는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라는 얘기도 나온다. 미혼모가족 당사자 입장에서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한명 몫의 출산·육아휴직조차 쓸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많은 여성들이 계약직이거나 불안정한 일터에서 일하고 있어 임신하면 재계약을 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혼모 단체 대표 “정부는 보수적”

정부의 미혼모 차별 해소 정책에 대한 미혼모 당사자들의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최형숙 인트리 변화된미래를만드는미혼모협회 대표는 “딱히 체감되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국민적 인식개선을 위해서는 공익광고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해 수년 째 정부에 요청하고 있지만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다. 여성가족부는 동의하는데 다른 부처에서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정부의 인식이 여전히 보수적이다”고 비판했다.

최 대표는 공무원과 보육시설·학교 교사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게 급선무라고 했다. 그는 “미혼모들이 출산 전후 가장 먼저 찾아가는 이들이 사회복지 공무원들인데, ‘왜 결혼 안하냐’고 묻기도 한다”면서 “이들이 부정적으로 나올 때 미혼모들이 특히 힘들어 한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 이혼율을 볼 때 학급당 미혼모가족 등을 포함한 한부모가족의 자녀가 최소 30%는 될 것이라면서 “교사 연수에 다양한 가족에 대한 이해가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도경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심지어 미혼모시설과 복지시설 실무자들조차 미혼모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여성가족부가 미혼모 차별 사례를 수집한 것도 알맹이 없는 일방적인 편의주의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단편적인 불편 사항만 듣고 바꾸는 것으로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현금 중심의 1차적인 지원을 넘어서 당사자들이 편견과 차별에 주눅들지 않는 자립 역량을 기르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지역별 당사자 모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