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극단의 ‘사막 속의 흰개미’

외형상 특정 종교 내부의 비리를 들춰내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실은 인간 삶의 보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황정은 작/김광보 연출의 연극 ‘사막 속의 흰개미’(11월 9~25일, 세종S씨어터 개관 기념작)는 마을교회 목사의 집인 100년 된 고택을 배경으로 현재와 과거 이 집과 교회에서 벌어진 일들을 펼쳐 보인다.

관객은 여느 공연처럼 액자식 무대 앞의 객석에 앉는 것이 아니다. 대신, 고택으로 디자인된 무대의 양쪽에 자리 잡게 된다. 양쪽 객석 뒤로는 고택 마당의 자작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관객은 고택으로 설정된 구역 안에 있는 셈이고, 바로 코앞에서 전개되는 이 집안의 내밀한 일들을 훔쳐보듯 모두 목격하게 된다. 무대 연출 자체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셈이다.

'사막 속의 흰개미' 공연 장면 ⓒ서울시 극단 제공
'사막 속의 흰개미' 공연 장면 ⓒ서울시 극단 제공

극의 전개방식도 마찬가지다. 마을교회의 목사직은 여러 대를 걸쳐 세습됐다. 그 과정에서 교회 내부의 비리가 쌓이고, 게다가 그것이 대물림됐음을 극은 주요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초반부터 암시한다. 흥미롭게도 작품에서 구체적인 비리의 실체는 한 가지만 빼고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 하나는 요즘 한국사회에서 이슈화되고 있는 '그루밍 성폭력'이다. 그나마 여성 신도 지한에 대한 성범죄가 현 목사 공석필의 사망한 아버지 목사 공태식에 의해 자행됐음을 관객이 추측하게 할 뿐 구체성을 띤 장면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교회 안에 총체적 비리가 있고, 피해 신도들이 들끓고 있음을 암시하면서도 사건의 실체를 분명히 밝히지 않음으로써 이어지는 장면에 대한 관객의 호기심은 더욱 커진다.

주요 등장인물들에게 자주 오는 전화도 긴박감을 높이는 요소다. 공석필 목사나 그의 어머니 윤현숙에게는 시도 때도 없이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 그런데 관객은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 실체를 끝까지 모른다. 다만, 전화 상대방이 긴박한 상황을 알리거나 위협적인 말을 퍼붓는 사람임은 분명하다는 점만 알 수 있을 뿐이다. 흡사 스릴러 연극처럼 장면이 전개된다.

이 연극이 기독교 개신교 교회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리를 부각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은 내용의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사망한 아버지 목사의 모습으로 무대에 등장하는 공태식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할아버지 목사를 '죽이지' 못했다는 사실을 회한이 어린 어조로 얘기하면서 아들 목사 석필에게 "나를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교회의 총체적 비리를 대물림받은 것에 대해 고통스러워 하던 아들 목사는 결국 흰개미들이 고택의 기둥밑동을 온통 갉아먹어 집이 붕괴되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사막 속의 흰개미' 공연 장면 ⓒ서울시 극단 제공
'사막 속의 흰개미' 공연 장면 ⓒ서울시 극단 제공

 

사실 이 작품이 초점을 맞춘 것은 교회의 잘못이 아니라 오히려 부정과 비리를 보고 주변에서 침묵하는 행위인 듯하다. “지옥 같은” 생활을 했던 성폭행 피해자 지한이 가해자인 아버지 목사 보다 그 사실을 알고도 침묵한 아들 목사가 더 생각이 났다는 대사를 한 것에서 작가의 의도가 읽힌다. 극의 초반에는 공 목사의 고택에 누군가가 '침묵한 집'이라고 쓴 비난의 쪽지를 붙여 놓은 장면도 있다. 아들 목사는 "침묵한 집, 대가를 받으리라."라고 쓰인 쪽지를 누군가로부터 지속적으로 받는다.

작품은 또 단순한 사회문제에서 더 나아가 종교적 구원이나 윤회적 삶을 얘기하고 있다는 인상도 짙게 풍긴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죄의 사슬을 끓고 새 생명을 얻게 되며, 흰개미들은 고택을 붕괴시킴으로써 새로운 삶의 공간을 찾아 나선다.

이 연극은 한국계 곤충학자 에밀리아가 아프리카의 나미비아 사막에서 발견된 불가사의한 원 모양, 즉 페어리서클(Fairy Circle)과 흰개미의 서식 간 상관관계를 연구한 논문을 발표하는 장면으로 막을 여닫는다. 흰개미의 서식 형태와 관련된 이론이 인간의 삶과 연관성을 가지면서 작품 속 이야기를 발전시키는 것이 무척 흥미롭다.

'사막 속의 흰개미' 공연 장면 ⓒ서울시 극단 제공
'사막 속의 흰개미' 공연 장면 ⓒ서울시 극단 제공

에밀리아의 마지막 부분 대사가 희망적 여운을 남긴다.

“평형으로 가는 길은 아주 불안정합니다. 역동적인 불균형을 거쳐야만 자연은 마침내 균형을 획득할 수 있죠. 그럼에도 결국 긴 시간 안에서 지구 위에 존재하는 모든 자연은 무엇이든 결국 자신의 자리를 찾아갑니다.”

강일중 공연 컬럼니스트

언론인으로 연합뉴스 뉴욕특파원을 지냈으며 연극·무용·오페라 등 다양한 공연의 기록가로 활동하고 있다. ringcyc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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