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넘어
-최영미

내가 아니라 우리,
너가 아니라 우리,
싫어도 우리, 라고 말하자

우리가 쓸고 닦고 먹여 살린 세상에서,
우리는 맨 끝에 앉아야 했지.
우리가 쓸고 닦고 먹여 살린 것들이 우리를 배반해도
참아야 했지. 참아야 하느니라,
어머니는 내게 가르쳤다

우리가 먹이고 씻기고 재워준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순종과 봉사의 갑옷을 걸치고
말로 뱉지 못한 말들. 부서진 꿈.
천년의 침묵.

어머니라는,
아내라는 이름으로,
노예 혹은 인형이 되어,
그가, 그들이 우리를 버리기 전에는
절대로 우리가 그들을 저버리지 못하고
그들이 우리를 떠나기 전에, 먼저 떠날 자유도 없었지
아주 오래전이 아니라,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서 어린 소녀들에게 일어나는 일들.

어머니가 아니라,
아내가 아니라,
여성의 이름으로, 우리의 역사를 써야겠다
어머니가 아니라, 아내가 아니라,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그래야, 이 삐뚤어진 세상이 제대로 보인다

머뭇거리던 목소리들이 밖으로 나와
하나의 목소리는 다른 목소리로 이어지고,
함성이 되어 벽을 무너뜨린다.

두려움을 넘어,
내가 우리가 되는 기적.
보석처럼 빛나지는 않지만,
너희들은 서로의 가슴에 별이 되거라.

최영미 시인gabapentin withdrawal message board http://lensbyluca.com/withdrawal/message/board gabapentin withdrawal message board
최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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