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다 일찍 출근, 늦게 퇴근
13년 넘게 ‘숨어 지낸’ 초록씨
3중 잠금, 창문 도어락 설치
호신용품 구비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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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청년여성들에게 집은 ‘불안한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다. 혼자 산다는 이유로 언제 어디서 범죄의 대상이 될지 매순간 불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여성신문은 2030 1인가구 여성들을 인터뷰했다. 청년여성 1인가구의 주거지 안전 문제를 들여다본다.

혼자 산지 13년 차. 초록(가명·33)씨는 15년 전 일을 또렷이 기억한다. 고등학생 때였다. 한 남성이 외부 다용도실에서 주방으로 연결된 문의 유리를 ‘유리 자르는 칼’로 동그랗게 잘라내 그 안으로 손을 넣어 안에 걸려 있던 걸쇠를 풀고 집 안으로 침입했다. 당시 집에 있던 어머니는 “누구냐”고 크게 소리치며 옆집에 살던 작은 아버지를 급히 불렀고 남성은 도망쳤다. 그가 침입하려던 곳은 다름 아닌 초록씨의 ‘침실’이었다.

“그 남자는 평소 이 집에 고등학생 여자애가 살고, 어디에서 자는지 알고 있던 거예요. 그때 엄마가 집에 안 계시고 저 혼자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 일 이후론 절대 혼자 사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스타트업 마케터인 초록씨는 특수목적 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면서 자취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땐 본가와 자취방을 한 달씩 번갈아 머물렀지만 이후 쭉 혼자 살았다.

이후 초록씨는 지금도 ‘없는 사람’처럼 지내고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일찍 출근, 더 늦게 퇴근하고, 배달음식은 절대 시켜 먹지 않는다. 층간소음이 심하게 나도 절대 직접 말하지 않는다. 택배는 근처 편의점에서 나중에 찾아오는 방식을 이용한다. 택배 운송장은 이름, 번호 등 개인정보를 검은 매직으로 칠한 뒤 가위로 잘게 잘라 버린다. 이런 ‘노력’은 무려 13년 넘게 계속됐다. 혼자 사는 것이 밝혀지면 언제라도 누군가 침입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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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여성 1인가구가 불안을 느끼는 원인 1위는 CCTV, 출입구 보안시설, 방범창 등 안전시설 미비(45.3%)인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시 관악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범죄 예방을 위해 'CCTV 녹화중'이라는 문구를 붙여놓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여성신문

비혼, 비출산을 선택하는 여성들이 늘면서 1인가구도 증가하고 있다. 올해 통계청이 발표한 전국 1인가구수는 561만8677개로 전체의 28.6%다. 2015년 기준 서울시 여성 1인가구는 57만 가구로 전체의 51.2%를 차지했다. 이중 특히 청년여성이 비중이 가장 높다.

그런데 2014년 전국 범죄통계에 따르면 강력범죄 피해자 중 87%가 여성이었고 이 중 91.7%는 강간·강제추행 피해자였다. 강간·강제추행 피해자 중 55.6%는 20~30대 ‘청년여성’으로 조사됐다. 여성안전 정책 연구도 이주여성,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여성, 여성노인, 여성청소년에 대한 접근은 이뤄지고 있는데 주거지 안전을 포함한 청년여성 1인가구의 전반적인 안전인식을 다룬 연구는 거의 없다. 경찰청 범죄통계 시스템 또한 여성 1인가구를 대상으로 한 범죄통계를 따로 산출하고 있지 않다.

배달원, 택배 기사 등의 출입을 위해 외부 현관 인터폰에 현관 비밀번호가 적혀있다. ⓒ여성신문
배달원, 택배 기사 등의 출입을 위해 외부 현관 인터폰에 현관 비밀번호가 적혀있다. ⓒ여성신문

취업준비생 황채린(26)씨는 극심한 공포로 최근 창문에 도어락을 하나 더 달았다. 여기에 현관문까지 3중 잠금 상태로 해놨지만 불안한 마음은 여전하다. 본가가 지방이었던 황씨는 수도권에 있는 대학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취를 시작했다. “옥탑방에 거주하는데 사방이 뚫린 곳에 혼자 살려니 두려운 부분이 많아요. 한 번은 아랫집에 살던 남성분이 취해서 중간 문을 막고 자고 있어 집주인한테 신고한 적이 있어요.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려요.”

황씨의 두려움은 일상생활을 지배한다. “만약의 경우 호신용으로 사용하려고 커튼 봉을 버리지 않고 두고 있다. 집 안에서는 꼭 창문 블라인드를 내리고 활동한다. 화장실 창문도 크게 못 열어 놓고 산다. 배달음식을 시켜먹을 땐 안심번호로 전화를 받는다든가 1층 문밖에서 기다려 달라고 한 뒤 직접 내려가서 음식을 가지고 온다.” 수많은 부분에서 불편함, 불안함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다는 토로다.

안전‧보안 문제 때문에 ‘자취’를 선택 사항으로 올리는 것조차 불가능한 여성들도 있다. 대학생 김지연(23)씨는 “혼자 사는 데 두려움이 커서 여성 전용 하숙집에 산다”며 “보안 걱정은 없는 편이지만 하숙집의 특성상 방이 작고 공동생활이다 보니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많고 불편한 점도 많다”고 전했다.

이들은 “혼자 사는 여자들끼린 ‘조심히 가’ ‘가서 연락해’가 마지막 인사말”이라며 “더 이상 어떻게 조심해야 안전하게 살 수 있는지 모르겠다. 여성들이 조심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범죄자들에게 ‘하지 말라’는 말이 먼저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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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준비생 황채린씨의 방. 황씨는 최근 창문에 도어락을 한개 더 달고 현관문을 3중 잠금 상태로 설치했다. ⓒ독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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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김소윤씨의 방. 김씨는 사생활이 노출될까봐 365일 커튼을 내려놓고 있다. ⓒ독자제공

 

365일 블라인드, 커튼
배달음식 못 시켜먹고
추가 ‘안전비용’ 지불해야

이삿짐, 부동산 등
일상 속 불편함 산적한데
“왜 유난이냐” 구박

혼자 사는 청년 여성들이 느끼는 불편은 일상 속 곳곳에 깊숙이 침투해있다. 곽화진(가명)씨는 이전부터도 친구와 함께 있을 때만 배달음식을 시켜먹었다. 하지만 배달원이 지인 집의 인터폰을 누르고 전화를 하는 등 ‘스토킹’하는 것을 본 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포장해서 직접 가지고 온다. 심지어 다리가 부러졌을 때조차 배달음식을 시켜 먹지 않았다. 곽씨는 지금 아버지와 남동생 신발을 현관에 갖다 놨다. 아버지와 남동생 목소리를 녹음해 틀어놓기도 한다.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 거주하는 민지영(가명)씨는 창이 큰 집에 사는 게 로망이었다. 벽 두 면이 창문인 집에 혼자 사는 그는 가끔 블라인드를 살짝 내렸을 뿐 대부분 창을 활짝 열고 살았다. 하지만 요즘은 암막커튼을 365일 내려놓고 산다. “직장 동료 한 사람이 제 집 주변으로 이사했는데, 가족과 자신이 ‘몰카’로 찍힌 사실을 알게 됐어요. 제가 사는 집도 혹시 몰카 대상이 될까봐 커튼을 달았습니다.”

이사 과정에서 혼자 사는 여성이라고 무시를 당하기도 한다. 피아노 연주자로 일하는 한 여성은 “이삿짐센터 부르는 것부터가 스트레스다. 집 주인이 젊은 여성 혼자라는 이유로 인부들이 말을 막 하기도 한다. 악기가 비를 맞으면 안 돼서 조심해달라고 했더니 ‘그렇게 하면 일 못 한다’ ‘나이 어린 여자애가 잔소리 한다’는 식으로 나와 당황했다. 부동산 중개업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직장인 핸(29·가명)씨는 “집에 무언가를 수리해야 하거나 무거운 짐을 옮겨야 할 때 혼자 있다 보니 부담이 된다. 가족, 친구가 아니면 쉽사리 도움을 받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집을 구할 때 여성이라는 이유로 추가로 드는 ‘안전비용’ 또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한 환경을 피하다 보니 거주 환경에 제약이 생겨요. 역과 거리가 먼 곳, 저층, 반지하, 옥탑방, 복도형 집이나 큰 대로변에 있지 않은 집들은 조금 싼 편이지만 위험하기 때문에 피할 수밖에 없어요. 이런 부분을 남자인 친구들에게 털어놨더니 공감을 못하더라고요. 이런 추가적인 안전비용을 여성 개인이 부담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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