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A소령과 B대령이 각각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자, 여성들이 분노하고 있다. 또 인권단체들도 고등군사법원 판결을 비판하며, 피해자 C대위 지원에 나섰다.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은 지난 8일 B대령이 항소심 재판에서 징역 8년을 받은 1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어 19일 A대령 또한 항소심 재판에서 10년을 선고받은 원심을 깨고 무죄 판결을 받았다. 역시 고등군사법원이 내린 판결이었다. 재판부는 두 항소심에서 C대위의 진술 신빙성을 의심하고 강력한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은 점을 들어 A소령과 B대령의 손을 들어줬다. 

군사법원이 군대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해 잇따라 무죄 판결을 내리자, 여성들은 SNS에 ‘#군대_내_교정강간_무죄판결_규탄’ 해시태그 캠페인을 벌이며 판결에 항의하고 있다. 

피해자 C대위를 지원해온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공동대응단위를 꾸리고 C대위와 상고 준비에 나설 예정이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두 가해자의 사건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130명이 탑승하는 함선에 여군이 혼자 근무했고, 성폭행 사실을 발견한 함장이 성폭행에 가세했다. 근무환경 자체가 성폭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며 “이번 항소심에서 물리적인 저항여부를 협소하게 해석했다. 권력관계에 있어 반복적, 물리적 저항여부를 따지게 되면 피해자를 구제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와 한국여성단체연합, 군인권센터는 각각 성명서를 발표하고 무죄 판결을 내린 군사법원을 규탄했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는 20일 성명서에서 “성폭력 가해 군 간부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군사고등법원 재판부는 제3의 가해자다”라며 “이미 1심에서 사건의 심각성과 피해사실이 명백히 드러났으며 가해자들은 군대 내 지위를 이용한 위력을 행사했음이 명확함에도 군사고등법원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것은 피해자에 대한 또 한 번의 중대한 가해일 뿐만 아니라, 군대 내 비리와 비민주성, 폭력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고 재판부를 비판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강간죄의 구성요건인 ‘폭행 및 협박’을 매우 협소하게 해석하고 있으며, 성폭력 범죄의 유일한 증거가 피해자의 증언이라는 특성에 대해서도 몰이해로 일관하고 있어 매우 문제적이다”라며 또 “ 피해자의 성적지향이나 성정체성을 문제삼아 이성애자로 ‘교정’하겠다는 빌미로 성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은 전형적인 혐오범죄의 유형이며, 이는 명백한 성소수자 혐오에 기반한 폭력이라는 점에서 더욱 엄중히 다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군인권센터도 “국방부가 지난 3월부터 달마다 외쳤던 ‘성범죄 척결을 위한 노력’은 피해자에 대한 철저한 보호와 가해자에 대한 엄벌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라며, “군사법원을 반드시 폐지시키고 성범죄를 포함한 일반 형사사건 재판을 민간법원에서 진행하게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C 대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A소령의 항소심 판결을 지켜보는 방청연대를 꾸렸다. 80여명이 모인 방청연대는 19일 항소심 판결을 지켜보고 무죄 판결에 약식 기자회견을 열었다. 방청연대는 재판부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해군 성폭행 사건이 완전히 종료 될 때까지 피해자의 편에 서서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해군 성폭행 사건 방청연대 기자회견 ⓒ여성신문
해군 성폭행 사건 방청연대 기자회견 ⓒ여성신문

군대 내 성폭력 문제는 오랜 기간 지적됐다. ‘2015~2017년 형사공판 사건 성범죄 처리 현황’에 따르면, 2015~17년까지 보통군사법원에서 성범죄로 재판을 받은 군인은 1,729명이었다. 그 중 징역형 선고는 11.57%(148건)에 그쳤다. 

성범죄 처리 과정에 대한 불신도 높다. 군대 내 성폭행 피해자 설문 조사 결과 피해자 가운데 61.9%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답했으며, ‘대응해도 소용없다’는 응답이 다수를 차지했다. (‘군대 내 성폭력 사건 사법처리 및 징계 실태에 대한 직권조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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