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정성’을 화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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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마흔에 등단 20년째를 맞이한 소설가 김인숙이 2003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인 <바다와 나비>에 대해 심사위원인 소설가 최일남 씨는 “세상을 쉽게 살지 못하는, 그래서 상대적으로 늘 진지하고 신중함은 김인숙 소설의 변함없는 본보기다. 가벼운 글쓰기와의 차별화가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바다와 나비>는 남편과의 불화로 아이를 데리고 중국으로 건너온 여자(나)와 미래를 찾아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나이 많은 한 남자와 결혼하러 가는 조선족 여자(채금)의 만남으로 벌어지는 이야기.

지난해 8월부터 딸(조선 15세)과 함께 중국 다롄(大連)에 머물고 있는 김인숙은 이상문학상 수상 때문에 6개월 만에 잠시 귀국했다. 지난 18일 바쁜 일정 탓에 그날 처음 가족과 온전한 식사를 했다는 김인숙은 약간은 피곤이 깃든 안색으로 인터뷰 자리에 나타났다.

- <바다와 나비>는 2002년 실천문학 겨울호에 실린 작품으로 알고 있다. 중국으로 간지 2∼3개월 만에 완성된 작품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글쓰기가 거의 체화됐다는 느낌이 드는데...

“중국에서 살게 되면 그곳에서의 삶이 글쓰기로 표현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중국생활이 어느 정도 지속된 후의 일이길 바랐는데 좀 이른 감이 없지 않다. 솔직히 스스로도 작품에 대한 확신이 없었는데 수상 소식을 듣게 돼 정말 기뻤다. 내가 살고 있는 다롄은 북경보다 위쪽에 위치한 항구 도시다. 인천과는 직항이 열려 있어 조선족을 만나기가 쉬웠고 가자마자 조선족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또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심양을 여행했을 때 받았던 강렬한 느낌과 이미지를 담고 싶다는 욕구가 작품을 빨리 쓰게 만든 것 같다. 얼마를 더 살게 될지 모르지만 중국에서의 생활을 좀 더 오래 삭인 후 새 작품을 쓰고 싶다.”

- 호주에서의 생활이 담긴 작품 <먼길>도 현대문학상을 수상했었다. 여행이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것 같은가.

“한국을 완전히 떠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없다. 내가 여행을 즐기는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혼자 있는 걸 잘하는 편이고 좋아한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소유하고 있는 지금 현실의 장점을 받아들이면 무얼 할 수 있을까? 그랬더니 내가 무척 자유로운 상태라는 사실이 인식됐다. 얽매일 직장도 없고 외국에 나간다고 글을 쓰지 못할 것도 아니고 그래서 한번 나가보자는 생각에 무작정 떠났다. 오래도록 살아온 익숙한 현장을 떠나 낯선 이국 땅에 살게 되면 자극이 막바로 들어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그런 낯설음이 글쓰기에 도움이 됐을 수도...”

- 83년 등단한 이후 20년간 창작집 4권에 장편 7편을 냈다. 왕성한 창작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 말은 김밥 마는 아줌마에게 왜 그렇게 왕성히 김밥을 마느냐는 말과 같다. 가끔 나의 글쓰기 방식을 보고 너무 쉽고 편해 보인다고들 말할 때마다 좀 속상하다. 사실 갈수록 어렵고 힘들다. 어느 분야건 장인이 있는 것처럼 그 단계까지 가는 사람은 흔치 않은 법이다. 그곳을 향해 갈 뿐이다.”

- 작품 중 애착이 가는 작품은.

“<칼날과 사랑>은 시기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80년대를 마음 아프게 산 사람이 그 시대의 질곡을 넘어 맞이한 90년대 삶의 글쓰기라는 점에서 전후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또 다른 의미로 이 작품은 결혼 직후에 쓴 작품이기에 이전의 작품보다 삶이 구체화됐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이 주부로 아내로 또 엄마로 규정지어지는 일상의 사소한 구체성이 드러나기 시작한 경계에 선 작품으로 의미가 깊다면 <79~80 겨울에서 봄 사이>(87년)는 진정한 글쓰기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전의 글쓰기는 글을 잘 모르면서 버둥거리며 쓴 것 같다. 이 작품 이후로 이전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고 안정된 글쓰기가 가능해진 것 같다. 지금 보면 너무 서툴고 날 서 있어서 맘에 안든다.”

- 작품 속 주인공 중 대부분의 여성은 일탈적이고 남성은 부정적으로 그려진 게 많은 것 같다.

“나의 남성관이 부정적인 것은 사실이다. 내 작품을 남자들이 읽기 싫어하는 점도 아마 남자 인물이 멋지게 그려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난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한국 남성의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혐오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여자 주인공의 행동양식이 일탈적이라고 하는데 전면적인 일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성과 제도에 대한 배타와 분노가 일탈로 표출되는 것이지만 일탈의 과정 속에 희망의 목적지는 있다.”

-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화려하게 등단했다. 이 타이틀이 짐이 될 때도 있었을 텐데...

“어린 시절 유명해지는 건 인생의 짐인 것 같다.(카페 천장에 달린 모니터에는 어린 스타가 출연한 뮤직방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대학시절이 그리 즐겁지 않았다. 80년대 시대의 고민과 나의 문학은 큰 차이가 있었고 그 차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내 생이 완전히 달라졌던 것 같다.”

- 리얼리즘 문학을 계속할 생각인가.

“지금의 문학은 리얼리즘에서 상당히 동떨어져 비 리얼리즘이 성행하는 현상을 보인다. 앞으로도 아주 정직한 리얼리즘을 표현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상관없이 보다 시대의 리얼리즘에 천착한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

- 지금 행복한가.

“난 항상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지’ 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일까,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이라면 겪어나갈 이유, 살아야 할 이유가 있지 않을까 늘 설마설마 하며 산다. 요즘 나이 들어 좋은 점은 후회하는 것이 생겼다는 점이다. 10년 전을 돌아보면 그때 왜 그리도 냉소적이고 어리석었을까 다를 수도 있었는데 후회가 많아진다. 앞으로 20년 뒤에는 뭘 보게 될지 모르니 지금 내가 보는 걸 전부라고 믿지 말자고 다짐한다. 글은 지속되는 삶에서 나오지만 글의 완결면에서 사람들은 무언가 결론을 원한다. 나는 그러지 말자다. 이런 ‘유예적인 태도’를 보고 미지근하다고들 하지만 ‘이것은 이거다’라는 말을 아직은 안하고 싶다. 겁난다.”

윤혜숙 객원기자 heasoo21@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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