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논단] 그 함정의 유일한 여군이 될 리 없는 재판부의 무죄 선고
[여성논단] 그 함정의 유일한 여군이 될 리 없는 재판부의 무죄 선고
  •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 승인 2018.11.21 16:02
  • 수정 2018-11-23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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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해군 대위 성폭력 사건
1심 뒤집고 무죄 선고한 재판부
“재판부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판단할
자격이 되는가?”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6년 만에 고발한 성소수자 해군 대위 성폭력 사건에 대해 고등군사법원이 8년, 10년형을 내린 1심을 뒤집고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11월 8일 두 번째 가해자 대령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기억이 왜곡되어 있을 수 있는데 비해 피고인의 기억은 합리적인 것 같다’는 이유를 들어, 11월 19일 첫 번째 가해자 소령에 대해서는 ‘피해자 진술 신빙성은 인정하나, 매 건건이 저항한 흔적이 없어 폭행과 협박이 현저한 정도에 이르지 않았고, 따라서 피고인이 상대에 의사에 반한 것으로 생각지 않았을 수 있다며 ‘범의’ 인정이 되지 않는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120~130여명이 타고 항해하는 해군 함정에서 임관한 지 한 달 만에 한 명 더 있던 여군 선배가 전역하고, 혼자 여군이 된 지 석 달 만에 직속 상사가 접근했을 때 여군 부하는 어떻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소극적 거절, 동의하지 않음, 어쩔 줄 모름, 외면하고 싶어짐 정도에서 동공이 흔들리는 부하 앞에서 그 직속 상사는 행동을 멈추었을까? 다음 행위를 어떻게 강행했을까. 피해자는 어떤 하루하루를 살게 되었을까. 결국 사건이 지속되고, 피해자는 임신에 이르렀다(성폭력 사건에서 임신은 치상 피해로 보아야 마땅하다). 중절 수술을 위해 함장에게 보고했을 때, 함장은 본인의 숙소를 편히 제공한다면서 불렀고, 두 번째 가해를 했다. 직속 상사에 의한 성폭력과 그것을 보고한 함장으로부터의 두 번째 성폭력. 이 연속된 두 개 사건, 두 명 가해자를 보면 함정이라는 공간과 군대라는 조직 안에서 피해자는 애초에 저항하거나 도움을 청하는 게 가능했을까 질문하게 한다.

상대의 의사를 내 뜻에 맞춰 해석하는 것, 상대가 내 지시에 기쁘게 따르고 있다고 퉁치는 것, 상대방이 원하지 않을 가능성 따위는 묻을 필요도 확인할 필요도 없는 것, 무시하고 넘어가는 게 윗사람다운 것이 바로 권력 관계다. 강간과 강제추행에서 폭행과 협박이 문제가 되는 것은 상대방의 의사를 유형력으로 제압하기 때문인데, 상대방의 의사를 훨씬 효과적으로 제압했음에도 불구하고 폭행과 협박을 전통적으로 증명해왔던 ‘피해자의 저항’이 잘 안 보이니 가해자가 폭행과 협박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되고, 그러므로 무죄라는 것은 순환논증 오류이자, 검은 것을 희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번 사건처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다가 6년 만에 상담자가 발견해 고발에 이른 성폭력, 서지현 검사처럼 8년 만에 고발한 상사에 의한 성추행 등 권력 관계와 권력적 환경이 얼마나 피해자를 무력하게 만들고 법과 제도를 유령으로 만드는지 확인하고 있음에도, 피해자가 무력할 수밖에 없던 상황을 가해자 무죄의 근거로 삼는 기막힌 계산법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2심 재판장을 맡은 고등군사법원장은 이 사건을 ‘강간 강제추행’으로 기소하지 말고 ‘위력에 의한 간음, 추행’으로 기소했더라면 유죄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라고 말했다. 그러나 위력에 의한 간음 추행으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건 1심 재판부 서울서부지방법원 제11형사부는 ‘비동의간음죄’였더라면 유죄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결국 폭행과 협박을 좁게 해석하는 최협의설이나, 피해자에 대해 한 치의 의심이 없을 정도까지 의혹을 제기하며, 피고인에게는 한마디도 묻지 않는 피해자 진술 신빙성 문제나 피해자에게서 시선을 되돌려 재판부를 향해야겠다. 재판부는 과연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판단할 자격이 되는가?

판사들도 위계 서열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위계적 조직에서 일어난 위력에 의한 사건을 ‘익숙’하게 생각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법률가들에게 들었다. 그러나 그 위계 서열 경험이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에게 공감하고 귀 기울이는 데로 결코 나아가지 않는다. 남성들 사이의 위계 서열이 나도 언젠가 올라갈 수 있는 열린 구조물이라면, 여성들에게는 진입과 승진이 허용되지 않는, 공적 사적 착취가 난무하고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조직 내 위력이 있고, 젠더 위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조직 위계가 젠더 위계로 직조되어 있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이럴 거면 여군은 왜 뽑았는가”라고 묻는다. 정말 여성은 국민이 아니라고, 동료 시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8년 전, 그 함정의 유일한 여군이 겪은 일에 대해, 평생 그 함정의 유일한 여군이 되어 볼 리 없는 재판부가 가해자는 모두 무죄라고 선고했다. 이것이 법이라고, 우리는 결코 받아들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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