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유니온 설립 1주년
인터뷰 이미지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장

19일 서울 상암동 방송작가유니온 사무실에서 이미지 방송작가유니온 지부장을 만났다.
19일 서울 상암동 방송작가유니온 사무실에서 이미지 방송작가유니온 지부장을 만났다. / 이정실 여성신문 기자

 

‘프리랜서’이라는 이유로 해고가 당연시되던 방송작가들이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만든 전국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이하 방송작가유니온)가 설립 1주년을 맞이했다. 지난해 11월 11일 40여명으로 시작해 현재 265명으로 늘었다.

방송작가는 방송국에서 유령같은 존재다. 그들 없이는 방송이 불가능하지만 종사자 수가 어느 정도인지 업계는 물론 관계 부처에도 파악된 정보가 없다. 방송국에서 그들의 존재는 제작비 속 ‘원고료’로 계상될 뿐이다. 서류상 ‘인건비’로도 표기되지 않았고 그동안 최저임금도, 4대 보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 방송시스템 속에서 철저히 개별화, 파편화된 노동자들을 모아 단일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같다.

방송작가유니온이 설립 1년 동안 이끌어낸 작은 변화들은 그래서 더 의미가 크다. 대구MBC 단체협약과 안동MBC 원고료 협상을 타결했다. 곧 ‘모성보호 실태조사’ 결과도 발표할 예정이다.

19일 서울 상암동 TBS방송국 옆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이미지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장은 올해 TBN방송과는 작가 등급 기준 협상을 진행하고 내년엔 출산휴가 보장 등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모성권 보장에 앞장 설 예정이라고 했다. 특히 TBS의 재단 전환 과정에서 막내 작가들을 직접 고용한 사례를 두고 “다른 방송사에 미칠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지부장에게서 방송작가들이 처한 문제와 해법을 들어봤다. 그는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메인작가로 일하고 있다.

프리랜서들이 한목소리를 낸다는 자체로 변화가 시작됐다.

“조합원이 창립 당시와 비교하면 크게 늘었지만 여전히 적다. 노조가 있다는 걸 모르는 방송작가들이 많다. 업무 특성상 자기가 맡은 프로그램만 담당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기 쉽지 않다. 제가 TBS에서 오전 9시까지 라디오 일을 하니까 9시부터 방송하는 프로그램의 작가 정도는 만날 기회가 있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 개별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있다 보니 불이익을 당해도 말하지 못했던 거다.”

방송사의 부당한 관행은 어떤 게 있나.

“고용 불안이다. PD에 의해 작가의 일자리가 좌지우지된다. 일을 시작할 땐 ‘내일부터 일합시다’라는 PD의 말 한마디가 전부다. 그리고 방송사 정기인사에서 PD가 바뀌면 작가도 바뀌고, 궁합이 안 맞다는 이유로 작가 교체를 당연시한다. ‘딴 데 가서 일하면 되잖아’라는 식이다. 일이 없어진 작가는 새 일을 구할 수도 있지만 쉬기도 한다. 작가 입장에서는 먹고 사는 절박한 문제인데, ‘잠깐 쉬면 된다’는 생각은 크게 잘못됐다. 과연 해고되는 이들의 생존권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을까?”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갖가지 문제가 정상으로 둔갑하는 것 같다.

“원고료를 올려달라는 말도, 노동환경을 개선해달라는 말도 못한다. 내일 그만 두라고 해도 그렇다. 애써 일해서 방송을 만들어도 방송사 사정으로 송출되지 않으면 원고료를 받지 못한다. 작가도 인간, 노동자라는 생각을 한다면 제작비의 일부로 편성해선 안 된다. 특히 레귤러 방송. 막내작가들은 방송국이나 제작사에서 붙박이 노동을 하는 직원 개념이지만 이들의 존재도 제작비 속 원고료일 뿐이다.”

고용을 보장하면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방송국 관계자의 발언도 있었다.

“가령 무한도전 김태호PD는 정규직이다. 그에게 프리랜서를 하라고 하지 않는다. 안정된 환경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나온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현재 정규직이 가진 문제를 비정규직에게 투영한 것이라고 본다. 일선 방송국 정규직이 상당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방송환경이 급변하고 기술도 급변하는데, 그들이 정규직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방송작가 대다수가 여성이다. 모성보호는 되고 있나.

“방송작가들 출산율 조사해보면 낮을 거다. 저는 8살된 아이가 있는데 후배들이 존경한다고 한다. 결혼도 늦고 아이는 엄두도 못 낸다고 한다. 저출산정책에 예산 100조원을 썼다고 하는데 그 예산 다 어디 썼을까. 모순적인 게, 공무원과 일부 정규직을 위한 지원정책이란 생각이 든다. 정부의 아이돌봄서비스를 신청하려면 맞벌이부부라는 걸 입증해야 하는데 프리랜서라 못한다. 여성들이 우리 같은 특수 직종, 열악한 환경에 근무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노동환경을 조금만 개선해주면 크게 나아질 것 같다.”

KBS에 성평등센터가 설립됐다. 기대하는 바는?

“한 지상파 방송에서 남성PD가 여성작가를 성추행했는데, 그걸 문제제기한 작가만 떠나고 남성은 짧은 징계 후 복귀한 사건이 있다. 연예인 성추행 사건은 10년 전 작가가 문제 제기를 했을 때 유명연예인이 떠나는 일이 없다고 해서 작가가 방송을 떠났다. 피해를 입었고 문제를 제기했을 때 방송국에서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 해당 가해자와 일을 하지 않더라도, 다른 PD들이 문제 제기한 방송작가를 쓰지 않을 것이다. 그냥 센터 문열어놓고, ‘당당하게 문제 제기하세요’라고 하는 것만으로는 쉽게 풀릴 수 없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 문제 역시 작가의 고용 방식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PD 개인이 고용하는 게 아니라 사측이 작가를 채용하고 관리하면, 인간적으로 다소 껄끄러운 관계가 되더라도 보호받고 일할 수 있다. 모든 작가를 정규직할 순 없다. 그러나 뉴스나 토론 프로그램 같은 방송을 만드는 보도국처럼 충분히 가능한 방송도 그렇다. 상시적으로 출퇴근을 하고 회사 지시에 따라 아이템을 찾는다. 방송국이 작가를 관리하면 PD들도 프로그램 제작에 전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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