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유치원 비리 밝혀낸
‘정치하는엄마들’
따복어린이집 사업 종료에
제동 건 엄마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최근 사립유치원 비리가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비리 관련 유치원 수와 비리 양상이 상식 수준을 벗어나 광범위하고도 심각한 점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소문으로만 떠돌았던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문서와 숫자로 확인되면서 더 많은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그러한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른바 ‘박용진 3법안’이 지금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이러한 변화의 현장에 ‘정치하는엄마들’이 있다.

사립유치원 비리만큼 폭발력 있는 뉴스거리는 아닐지 모르지만 경기도 ‘따복어린이집’ 관련 소식이 있다. 남경필 지사 시절 경기도에서 ‘경기도형 공보육 어린이집’ 모델을 만들기 위하여 산하 시작한 사업이 ‘따복어린이집’ 운영이다. 그래서 2006년과 2007년에 거쳐 용인·하남·위례시에 따복어린이집 3개소가 문을 열었다. 국공립 형태는 아니지만,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이 기존 민간어린이집을 임차해 높은 수준의 돌봄서비스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함으로써 보육의 공공성을 실현해보겠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사업이다. 그런데 남경필 지사에서 이재명 지사로 이른바 정권이 바뀐 후 따복어린이집 ‘시범사업’ 종료 발표가 있었다. 그런데 2~3년 뒤에 문을 닫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부모는 없다. 시범사업이지만 도에서 보육서비스의 지속성을 담보해 줄 것이라는 정책에 대한 신뢰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도의 결정이 엄마들을 뿔나게 했다. 엄마들이 모임을 조직하고 성명서를 발표하고 정치인, 공무원, 기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어린이집 문 닫기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사회적 관심의 차이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최근 두 움직임은 엄마들이 중심이 된 생활정치가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을 바꾸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정치하는엄마들’이 나서서 집회를 여니까 이런 식으로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나왔다. “할 일 없는 여자들이 정치를 하는구만.”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의식구조에 정치는 ‘한 자리’를 얻으려고 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정치하는엄마들’이 언젠가 ‘한 자리’ 하기를 원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 밖에 할 수 없는 두뇌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정치하는엄마들’은 ‘한 자리하는 정치’가 아니라 생활정치를 하고 있다. 정치적 참여를 통해 우리의 일상을 바꾸는 정치이다. 그래서 머릿속에 온통 ‘한 자리’ 생각만 가득한 이들에게 ‘정치하는엄마들’은 “우리는 본래 정치를 하고 있었다”고 멋지게 한 소리 해줄 수 있었다.

따복어린이집 엄마들의 생활정치는 일인 보스 중심 ‘한 자리 정치’의 민낯을 드러내 주었다. 과거 이명박 정권이 처음 등장할 때 ‘ABR(Anything But Roh. 노무현이 하던 것은 무조건 제외하고)’ 분위기가 강했다. 정책의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을 때 국가체계가 잃게 되는 신뢰의 문제와 관계없이 보스 한 명의 성향에 따라 아랫사람들이 비위를 맞추면서 움직이는 전근대적 정치행태였다. 따복어린이집 문제의 경우에 이재명 지사가 직접 나서서 운영 중단 지시를 내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남경필 지사의 흔적이 묻어 있는 것들은 모두 지워버려야 한다는 도청 관료들의 강박, 이러한 강박을 가능케 하는 은밀한 정치적 분위기가 멀쩡히 운영 잘 하고 있는 공공형 어린이집 운영 중단 결정에 이르게 했을 것이다. 엄마들의 반발이 일단 어린이집 폐쇄를 막았다. 국공립으로의 전환 논의도 있다. 그러나 국가를 믿고 아이를 맡겼던 엄마들이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명확한 해결책 소식은 아직 없다.

지금까지 한국사회를 지배해 온 남성적 정치가 ‘한 자리’를 둘러싼 권위적이면서 폐쇄적 과정의 정치였다면, 엄마들이 시작한 생활정치는 탈권위적이면서 개방적인 대중참여정치의 시작이 될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엄마들의 정치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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