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삶을 바꾼 30대 사건]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
태아성감별로 여아 낙태 심각
여아 100명당 남아 115명 달해
1997년 여성계 양성 쓰기 운동
호주제 폐지·동성동본 금혼 등
남성 중심 사회문화 바꾸기 촉매

 

이이효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가 1997년 3월 9일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 선언을 하는 모습이 담긴 여성신문 1997년 3월 21일자 417호. ©여성신문
이이효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가 1997년 3월 9일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 선언을 하는 모습이 담긴 여성신문 1997년 3월 21일자 417호. ©여성신문

1997년 3월 9일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제13회 한국여성대회 폐회 직전, 여성계 원로인 이효재 대표가 ‘부모 성 함께 쓰기’를 선언했다. 이제까지 써온 ‘이효재’라는 이름 대신 부모 성을 함께 쓴 ‘이이효재’를 자신의 이름으로 삼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를 비롯해 이날 170인이 앞으로 부모의 성씨 2개를 모두 쓰겠다고 나섰다(1997. 3. 21 제417호). 그해 1월 29일 한국여성단체연합과 대한여한의사회가 주최한 ‘남녀출생 성비불균형의 문제와 대안에 관한 토론회’에서 한국의 남존여비, 남아선호의 고질병은 부계혈통제에 원인이 있다고 보고 그것을 깨기 위한 쉬운 방편으로 부모성 함께쓰기라는 문화운동을 채택했고, 이것이 3.8여성대회 선언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이효재 대표는 선언문에서 “태아 성감별에 의한 여아 낙태로 인간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는 현실을 통탄하면서 남아선호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 부모 성 함께 쓰기 선언을 채택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는 “호주제와 동성동본 금혼을 명시한 가족법의 개정과 여성의 정치 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한 운동을 지속하는 한 방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이효재, 조한혜정, 고은광순, 김신명숙 등 여성계에서 170명이 동참했다.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은 태아 성감별에 의한 여아 낙태의 심각성을 통탄하며 남아선호 사상을 깨고 호주제를 폐지하며 여성의 정치·경제적 지위를 향상하기 위한 상징적이고 대안적인 문화운동이었다. 여성신문은 418호에 김신명숙의 ‘초등생 수준의 딴죽 걸기’, 420호에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의 ‘모계를 공식적인 부모로 살려내자’, 423호에 이효재 대표의 ‘종손원죄 아들종교에 볼모잡힌 한국의 성씨 제도’ 등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릴레이 칼럼을 싣는 등이 운동의 새롭고 대안적인 성격을 널리 알리는 데 주력했다. 특히 운동의 출범을 알린 417호 기사부터 여성신문 기자들도 부모 성 함께 쓰기를 실천했다. 이후 여성신문 기자들은 기명 기사에 부모 성을 함께 쓴 자신의 4자 이름을 표기했다. 이런 편집국 전통은 후에 ‘한겨레21’ 등 각 언론매체에 보도됐고, 특히 대학가에서 부모 성 함께 쓰기가 퍼지는 데 일조했다.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에 동참한 인사들의 명함과 뱃지 ©여성신문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에 동참한 인사들의 명함과 뱃지 ©여성신문

 

당시 ‘호주제 폐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여성계의 대안문화 운동 및 연대투쟁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했다. 단체 구성원의 성향과 지향점이 달라 냉전을 거듭하던 여성단체들도 하나가 돼 호주제 폐지를 외치며 길거리에 나섰다. 여성신문 역시 한국여성대회장에서 선언된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에 동참하는 한편, 1998년 9월 여성·시민사회 단체와 함께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 발족에 참여하고 2000년엔 관련 단체들과 공동 캠페인을 전개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부모 성 2개를 함께 쓰는 것은 여성운동계를 중심으로 호주제 폐지를 위한 상징적이고 대안적인 문화 운동으로 시작됐지만,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은 가족관계등록제 이후 성·본 변경의 봇물이 터지는 단초가 됐다.

여성신문 972호(2008. 3. 21)는 부모 성씨를 모두 쓰기 위해 낸 이름 변경 신청이 기각돼 논란이 일고 있는 법정 소식을 보도한다. 서울 남부지법은 노모씨가 “일상생활에서 부·모 또는 친·외가의 구분이 없는 진정한 남녀평등을 아이들에게 보이고 싶다”며 개명 신청을 기각했다. 노씨는 아이의 이름을 ‘노○○’에 서 ‘노최○○’으로 개명하는 신청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결정문을 통해 “우리나라의 성씨 중 ‘노최’씨가 없기 때문에 신청인의 성이 최씨인지 노씨인지 쉽게 알 수 없으며, 8세 아이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주위에서 놀림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법원은 또한 “이 사건 개명은 전적으로 부모의 뜻이지 신청인의 의사가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없다”면서 “양성평등은 이름과 같은 형식적인 것보다는 자라나는 신청인에게 행동으로 양성평등의 모범을 보이고, 그와 같은 확고한 인식을 가지도록 훈육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40대 남성 변 모씨가 자신의 성 때문에 초등학생 자녀들이 놀림을 받고 있다며 아내의 성으로 바꿔달라고 신청하자 울산지법이 이를 받아들인 경우도 있었다. 놀림의 대상이 된다는 이유로 성과 본 변경 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은 변씨의 신청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경우 자녀가 친구들에게 ‘변’이라는 성에서 연상되는 여러 별명으로 불리는 등 많은 놀림을 받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자녀의 복리를 위해 성·본을 변경할 필요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여성신문은 ‘부모성 함께 쓰기는 NO, 놀림 받는다면 YES’라는 말로 법원의 성 변경 허용 논리에 일침을 가했다.

 

부모 성 함께 쓰기 선언

우리는 태아성감별에 의한 여아낙태로 인간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는 현실을 통탄하면서 남아선호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 '부모성(姓) 함께 쓰기 선언'을 채택하게 되었다.

신생아의 여남 성비가 여아 100명당 남아 115명(1994년)이 될 정도로 우리 사회의 남아 선호는 고질병이 되어버렸다. 일년에 3만여명의 여자태아가 부모에 의해 살해당하는 반 인륜적, 반인권적 상황이 부끄럽게도 바로 이 한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는 우리사회가 얼마나 남성중심의 불평등 사회인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의 가정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가부장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아들, 손자, 딸 순 으로 승계되는 호주제, 부계 혈통만을 중시한 동성동본제도, 여성이 남성의 집안에 시집 가도록 되어 있는 부가(夫家)입적제도, 아들이 제사를 모시는 관습, 자녀는 원칙적으로 아버지 성을 따르도록 되어 있는 제도는 ‘아들을 낳아야 대를 이을 수 있다’라는 강고한 가부장적 의식구조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가족제도의 불평등은 사회에서의 남녀불평등의 기반이 되고 있다. 여성을 남편 의 피부양자로밖에 취급하지 않는 사회 보장 제도, 여성을 임시직, 보조직 등 주변부 노 동력으로 이용하는 노동시장의 구조, 명백한 사회적 재생산이라 할 수 있는 임신, 육아 의 부담을 개별여성, 개별가정의 부담으로 돌리는 사회제도 등이 모두 남성중심의 가족 관, 가족제도에 기반을 두고 형성된 것이다.

우리 사회는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다가오는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라고 한다. 사회 변화에 맞추어 남성 중심의 가족제도와 성차별적인 사회제도, 관습, 태도 등이 변해야 한다. 가장 먼저 수백년 동안 지속되어온 남성 중심의 가족제도가 변해야만 여아 태아를 살해하는 행위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성차별적인 생명관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여아낙태의 부끄러운 현실을 타파 하기 위해 호주제와 동성동본금혼을 명시한 가족법을 개정하고, 여성의 정치, 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한 운동을 지속할 것이다. 그리고 종래의 가족관과 관습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타파하기 위한 일을 시작하고자 한다. 하나의 방법으로 성씨제도의 민주화를 우리는 주창한다. 남녀의 평등한 참여와 합의에 의해 성을 정할 수 있어야 한다. 우선 아버지 성만을 써온 우리 세대부터 부모성을 함께 사용해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자 한다. 우리의 이 운동이 여자이기 때문에 태어나기도 전에 부모에 의해 살해당하는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여남평등 사회를 향한 의식개혁의 한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1997년 3월 9일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13회 한국여성대회에서
부모성(姓)함께 쓰기 선언자 일동 대표선언자 이이효재외 17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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