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위안부 피해 공개 증언 52명 모두 사망" 남북 연대 제안

김영 작가, 북한 '위안부' 할머니 증언 발표
북한 위안부 피해 신고자 219명
공개 증언자 52명 모두 사망

재일 르포작가인 김영씨가 16일 개최된 '정대협 창립 28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조선 경흥위안소와 위안부 피해자의 기억'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 채윤정기자 ⓒⓒ 채윤정기자
재일 르포작가인 김영씨가 16일 개최된 '정대협 창립 28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조선 경흥위안소와 위안부 피해자의 기억'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 채윤정기자

 

북한에서 일본 위안부에 대해 증언한 김도연 할머니는 “군인이 왼팔에 ‘스미노(위안부 주인의 성으로 추정)’라는 먹물을 넣으려고 해서 이에 저항했다. 그러자 총으로 왼쪽 눈을 쏘아 실명이 됐고 그 일로 위안부에서 풀려났다”고 말했다.

재일조선인 2.5세로 르포작가인 김영씨는 16일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열린 '정대협 창립 28주년 심포지엄'에서 ‘조선 경흥 위안소와 위안부 피해자의 기억’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이같은 사례를 소개했다.

김 할머니는 만 16살인 1939년 군부대에서 빨래를 하는 일이 있다는 순사의 말에 속아 중국 봉천에 끌려갔다. 그러나 그는 위안소에서 풀려난 이후에도 “돈도 벌지 못하는 데다 더러운 몸이 되었는데 어떻게 고향에 갈 수 있겠느냐고 생각해 가라후토 위안소에 갔다가 몇 년 후 해방이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북측에서 1992년 첫 증언을 했던 리경생 할머니는 “12살 때인 1929년 지주와 마을 군장이 공장에서 돈을 벌 수 있다면서 차에 태웠다”며 “그러나 몇 달 후 위안부 일을 강요당했는데 2평방미터 정도 크기 방에 여자들을 한명씩 넣었다”고 설명했다.

리 할머니는 “16살 때 임신을 하자 태아를 꺼내고 더 이상 임신하지 않도록 자궁도 드러냈다”고 증언했다.

김영씨는 북한에서 위안부 피해를 신고한 사람은 219명이고 위안부 피해를 공개적으로 증언한 사람은 총 52명인데 현재는 모두 숨졌다고 소개했다.

김씨는 “북측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셨다고 위안부 문제가 끝난 게 아니다. 일본 정부가 바라고 있는 일이겠이지만 이 문제는 결코 끝나지 않으며 계속 그 일을 기억해 정리하는 작업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북측에서는 남측과 달리 위안부 증언에 대해 공감자들을 만나기 어렵고 연대할 사람이 없어 증언에 나서기를 꺼려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이와 함께 방북 조사를 통해 방진위안소를 답사했는데 1935년 설치돼 군이 배치된 후 군 전용 위안소로 사용된 곳으로 현재는 병원으로 사용 중이라고 밝혔다. 또 경흥위안소는 두 번째로 위치가 확인된 곳으로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경흥위안소를 목격한 나카무라 도미에씨는 “1944년 말 골목에 군인들이 각반을 풀어놓고 줄을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가 ‘음매하는 곳’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곳 여자들은 일본 사람들은 몸빼를 입고 조선 사람들도 소박하게 옷을 입는 상황에서 화려한 한복을 입고 다녀 못된 짓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불쌍한 여자들이라고 말했으며 군의가 성병 검사를 한다는 말도 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은 이날 행사를 위해 북한의 ‘조선일본군성노예 및 강제련행피해자문제대책위원회’(조대위)가 축전을 보내왔다고 소개했다. 정대협은 최근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과 통합돼 정의연으로 재편된 바 있다.

조대위는 축전을 통해 “우리는 전대미문의 과거범죄 행위를 전면 부정하며 사죄와 보상을 회피하는 일본의 행위를 절대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며 "거족적인 반일 투쟁으로 우리 민족이 당한 모든 불행과 고통, 손실의 대가를 반드시 받아내야 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또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윤미향 정의연 대표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 연대’에 대한 주제 발표를 통해 28년 전인 1990년 11월16일 한국의 진보적인 여성단체 37개 대표들이 모여 정대협을 출범시킨 후 현재까지의 활동들을 소개했다.

윤 대표는 이 자리에서 “당시 13~15살에 위안부가 돼 북이 고향이었던 피해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못 했다”며 “이산가족 문제와 남북 분단, 통일 문제는 28년의 역사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