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촌 여성들의 일상을 담고 싶었다”
“기지촌 여성들의 일상을 담고 싶었다”
  • 김진수 기자
  • 승인 2018.11.16 11:22
  • 수정 2018-11-16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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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이태원'
감독 강유가람,
격동의 이태원서 살아온 기지촌 여성의 이야기
영화 '이태원'의 한 장면. ⓒ강유가람 감독 제공
영화 '이태원'의 한 장면. ⓒ강유가람 감독 제공

70대인 삼숙은 이태원 술집 그랜드올아프리의 오랜 주인이다. 30년 넘게 이태원의 후커힐(미군을 상대하는 유흥업소가 몰린 언덕)에 자리 잡고 일하고 있다. 또래 나키는 1970년대부터 이태원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했다. 지금은 몸이 아파 주방 보조를 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다. 50대이자 화교인 영화는 19살 때부터 이태원에서 웨이트리스를 하다 20년 전 미군과 결혼했다. 미국에 건너갔으나 1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조카를 돌보며 혼자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이태원’(2016)은 기지촌에서 일하면서 이태원에서 살아온 세 여성의 일상을 들려준다. 이태원의 오래 머물렀음에도 환영받지 못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삼손은 미국인 남편과 길을 걷다가 ‘양갈보’라는 여성 비하 발언을 듣는다. 이태원에 가자고 하면 택시 기사가 위아래를 훑어보기도 한다. 이런 편견 속에서 여성들은 이태원을 떠나지 않았다. 지금 이태원은 ‘땅이 꺼질 정도로’ 인파가 몰리는 곳이지만 세 여성이 기쁜 건 아니다. 옛날보다 불편해진 몸을 이끌고 각자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다큐멘터리는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이태원의 단면을 비추기도 한다. 재개발 구역이 되면서 슬럼가로 변한 이태원의 일부 지역(우사단로)은 오히려 집값이 싸져 젊은 예술가들을 불러들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몰리면서 집값이 높아지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난다. 기껏 동네를 활성화했지만 환영받지 못했다는 부분에서 삼숙과 나키, 영화가 겹쳐진다.

강유가람 감독 ⓒ본인 제공
강유가람 감독 ⓒ본인 제공

‘이태원’은 최근 인디스페이스 독립영화 여성감독전을 통해 상영했다. 작품을 연출한 강유가람 감독을 12일 만났다. 그는 “2009년 용산 참사 후 도시공간에 대한 워크숍에서 젠더시각에서 재개발을 바라보자는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과 전쟁박물관에서 이태원을 걸어가 봤다. 공간에 대해 다루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풀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2014년 후커힐과 우사단로 청년들을 찍던 강 감독은 지인 소개로 나키를 만났다. 나키의 소개로 삼숙과 영화를 만났다. 강 감독은 그들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담기로 결심한다. 일주일 동안 2~3번 삼숙과 나키, 영화를 따로 만났다. 촬영 회차만 200회가 넘었다. 삼손이 운영하는 그랜드올아프리 앞 건물 지하에 조금만 사무실을 꾸리기도 했다. 그렇게 2년 반을 찍은 다음에 내놓은 작품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셋은 한편으로는 억세게 보이기도 한다. 이태원에서 버틴 ‘격동의 시간’이 얼굴에 담겨 있다. 강 감독은 “삼숙은 혼자 가족을 꾸렸다. 남편이랑 결혼까지 전까지 마흔 살 넘게 외국인을 상대로 클럽을 운영했다. 스스로 강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음이 여린 모습도 있다. 다른 두 분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국가에 대한 불신도 엿보인다. 기지촌을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 개인사로 인한 남성들을 향한 불신이다. 다큐멘터리에서 “클럽에서 일한 사람들은 나라의 국보다”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강 감독은 “기지촌은 과거 국가 주도의 성산업이었다. 그곳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심하다. 그 부분에 대한 방어가 각자 있을 것 같다. ‘양갈보’라고 비하를 받은 것도 트라우마였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태원’ 오프닝은 독특하다. 소독차가 지나가면서 생긴 흰 연기가 스크린을 감싸면서 제목이 등장한다. 강 감독은 “의도한 건 아니었다. 메르스가 한창 일 때라 소독차가 지나가는 장면을 얻었다. 관객으로 하여금 연기를 통해 이태원의 모호함을 상상할 수 있게 했다”고 했다.

영화 '이태원'의 한 장면. ⓒ강유가람 제공
영화 '이태원'의 한 장면. ⓒ강유가람 제공

여성의 시각이 담긴 영화를 연출하는 강 감독은 뒤늦게 영화에 뛰어들었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해 교사를 꿈꾸기도 했다. 교양 수업으로 여성학에 대해 흥미를 느낀 그는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전공했다. 이후 여성국극을 다룬 ‘왕자가 된 소녀’에서 조연출을 맡으면서 영화 연출과 편집 등을 배웠다. 2008년 선배들과 함께 만든 문화기획집단 ‘영희야 놀자’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곳 멤버들과 여성들을 중심으로 하는 작품을 고민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지난 정권 촛불 시위 때 광장에서 일어난 여성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시국페미’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는 앞으로도 공간과 여성의 시각이 담긴 작품을 만들 예정이다. 지금 준비 중인 작품도 여성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과거 페미니스트 활동을 하셨던 분들이 시간이 흐른 지금 각자 삶의 영역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그분들의 일상과 생각을 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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