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경 칼럼] “남자라고 나만 취직돼서 미안해요”
[정진경 칼럼] “남자라고 나만 취직돼서 미안해요”
  • 정진경 사회심리학자
  • 승인 2018.11.18 15:44
  • 수정 2018-11-18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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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경 사회심리학자

 

여자로 살면서 내가 성차별을 제일 심각하게 느낀 것은 취직할 때였다. 유학에서 돌아와 시간강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우리말로 가르치는 것도 신나고 학생들도 예뻐서 매일이 즐거웠다. 그런데 학기가 자꾸 지나가도 시간강의만 들어오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도 취직이 되지 않았다. “정선생, 강의 열심히 하나 봐. 학생들이 좋아하던데”하고 칭찬한 한 교수는 “그런데 알다시피 우리는 남자부터 필요해서...”라며 다음 말을 흐렸다. 한 대학에 이력서를 냈다가, "다 좋은데, 여자라"라는 소리도 들었다. 이력서를 냈던 또 한 대학에서는 응모한 여자 박사들을 죄다 떨어뜨리고 남자 박사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당시에는 대학 정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석사만 받아도 취직이 잘 되었으니, 취직이 되지 않은 남자 박사가 없었던 모양이다. 국내 유명대학에서 석사를 받은 후 박사과정 시험에 떨어져서 학업을 중단하고 있던 남자를 찾아다 교수로 임용했다는 후문을 들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차별당할 수가! 성차별이 부수기 힘든 벽처럼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좌절하고 분노하고 방법을 찾아보려 애써도 강고한 편견에 가로막혀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즈음 유학 시절의 친구를 만났다. 가끔 모여 우리말로 실컷 수다도 떨고 김치찌개도 해먹고 타향살이의 스트레스를 풀며 가깝게 지내던 친구 중 하나였다. 그는 진지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내가 존경하는 나보다 훌륭한 여성 셋, 내 아내, 재희씨, 진경씨가 아무도 대학에 취직이 되지 않았는데, 남자라고 나만 되어서 미안해요." 그는 미국에서 오면서 바로 교수가 되었다. 수많은 남자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그는 미안해할 줄 알았다. 별별 성차별적 말을 다 들어가며 취직의 전망이 흐릴 때, 그의 말은 위로가 되었다. 차별을 당해도 자아존중감은 지켜야 했으니까.

돌아온지 3년 만에 나는 교수가 되었다. 당시 우리 학교의 여교수 비율은 6%였으니, 하늘의 별을 딴 것이다. 친구가 존경하는, 능력이 탁월하고 인품도 훌륭해서 나도 존경하는, 다른 두 여자 박사는 취직의 어려움을 더 오래 겪었지만, 대학 밖에서도 자기의 일을 멋지게 개척해 나갔다. 그런 여자 박사들을 유감스럽게도 나는 너무 많이 안다.

그 친구가 존경하는 아내가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새 정부의 외교부 장관이 되었다. 국제기구를 포함해 수많은 곳에서 일하며 실력을 쌓아온 그가 마침내 경험과 능력에 걸맞는 일을 만난 것이다. 남북의 평화공존을 비롯하여 중대한 외교 사안이 폭발적으로 대두하고 있는 요즘, 그의 실력이 빛을 발하는 것을 나는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시험 봐서 성적순으로 들어가는 곳에서는 여성의 진출이 이미 눈부시다. 다만 실력으로 들어가도 고위직으로 올라가려면 차별의 벽이 엄존한다. 지명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 아니냐고 드러내놓고 차별하는 것은 유리천장이 아니라 철근 콘크리트 천장이다. 점차 균열이 생기며 부서지고는 있으나, 시간이 한없이 오래 걸려서 그 과정에서 겪는 여성의 억울함이 너무 크다.

내가 취업에 성차별을 당한 것은 이제 30년도 더 되었다. 그런데 지금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부끄러운 줄 알고 미안해할 줄 아는 개명한 남자들과 세상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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