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공단에 성폭력 산업재해 신청
"성폭력 소송으로 교수직에서 물러나,
가해자가 책임지는 2차 피해 문제 심각"
"이번 산재 신청이 후배자들에게
좋은 선례 남기는 계기 되길"

남정숙 전 성균관대 교수가 9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한 카페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정숙 전 성균관대 교수가 9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한 카페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실 사진기자

 

“직장 내 성폭력 문제는 결국 갑과 을의 문제입니다. 갑의 성폭력으로 인해 을인 피해자가 이를 신고하면 결국 초점은 피해자에게 맞춰져 사회의 질타를 받고 직장에서 쫓겨난다든가 하는 2차 피해까지 입게 됩니다. 갑을 관계 속에서 일어난 권력형 성폭력으로 지금까지는 피해자가 책임을 져 왔습니다. 이번에 저의 산업재해 신청으로 직장이라는 조직에서 잘못한 가해자에게 그 피해를 묻기를 희망합니다. 성폭력, 성희롱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조직과 국가의 문제이며 이러한 사태를 예방하지 못한 조직과 국가에 책임이 있습니다.”

남정숙 전 성균관대 교수(전국 미투생존자연대 대표)는 9일 서울 혜화동에서 가진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근로복지공단 서울지역 본부에 산재신청서를 낸 이유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남 전 교수는 올해 초 성균관대에 비전임 교수로 재직 중이던 2014년 당시 이경현 성균관대 문화융합대학원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며, ‘미투’ 선언에 동참했다. 그는 "대학에서 근무 중 일어났던 성폭력으로 육체적·정신적 상해를 입었다"며 지난 8일 공단에 산재 신청서를 제출했다.  

다음은 남 전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

 

-이번에 근로복지공단에 성폭행에 대해 산재신청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성폭력 이후 공황장애 등으로 심각하게 고통을 받아 왔습니다. 인터뷰 장소에 나오기 전에도 약을 복용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산재신청 인정이 신체적인 상해만 해당되고 정신적인 상해는 안 되는 것이 말이 안 됩니다. 2011년부터 성희롱, 성폭력에 대한 산재신청이 인정됐지만 그 건수는 미미합니다. 2017년 전체 산재 중 정신적 상해에 대한 산재는 10건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번에 제가 먼저 산재신청을 해 결과가 언제 나올지는 모르지만 산재를 인정받아 직장 내 성폭력, 성희롱 문제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저를 따라 산재인정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전 원장에 대한 학교의 대응은 어떠했나요? 그리고 남 전 교수님께서 이 일로 학교 교수직을 그만두게 되셨는데 어떤 이유에서였나요?

“이 전 원장은 저 뿐 아니라 다른 여교수와 대학원생들까지 성추행을 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대학원생들은 그의 성추행을 2015년 2월 성상담센터에 투서했고 저와 다른 교수 또한 피해자라고 투서에 기재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여교수들은 다시 원장과 일을 해야 하니 교수 성추행 건은 없었던 것으로 하고 학생들에게 국한된 것으로 하자고 저희를 설득했습니다. 이에 처음에는 조용히 넘어가려 했지만 저에 대해 원장직을 노리고 이러한 일을 계획했다는 등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 데 분개해 2015년 5월에 강제 성추행 혐의로 그를 형사 고소하게 됐습니다. 학교측은 제가 대우 전임강사로 비정규직이었는데 처음 대학원 설립 당시부터 멤버로 무려 12년을 근무했고 교수 평가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었던 저를 부적격 판정이라는 이유를 달고 재계약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2016년 2월까지 계약이 돼 있었기 때문에 월급을 주기는 했지만 형사 고소 이후 강의를 주지 않았습니다. 교수가 강의를 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지 짐작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또한 이후에 저는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비난도 들어야 했습니다.”

-이 전 원장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하셨는데 그 과정에서 힘든 일은 없으셨나요.

“그를 상대로 한 민사와 형사 1심 모두 승소했습니다. 그러나 1심 재판에만 무려 2년 6개월이 흘렀습니다. 가해자는 민사 판결이 난 이후에야 해고가 아닌 사직서를 제출해 학교를 떠났습니다. (이 전 원장은 결국 항소심에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 8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명령을 선고받았다.) 이 소송을 진행하는 동안 원스톱 상담센터가 없어 저는 한번 얘기해도 고통스러운 얘기를 수십 번 다시 반복 진술해야 해 엄청난 고통을 받았습니다. 또 저는 문화예술 분에서만 30년을 일했으며 문화부장관상까지 받았던 사람인 데도 이후로 일이 끊겨 제가 좋아하는 일 조차 오랫동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최근에야 문화계 일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제는 비록 다음날 사표를 쓰더라도 제가 몸담았던 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싶으며 이를 위한 싸움을 계속 할 계획입니다.”

-이후 ‘전국미투생존자연대’ 대표를 맡아오고 있는데 어떻게 연대를 시작하게 됐습니까.

“저는 교수를 지냈기 때문에 서지현 검사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전문직 여성도 성추행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케이스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제가 피해자로서 큰 일을 겪었고 전문직의 지위상 다른 피해자보다 나은 상황에 있기 때문에 피해사례와 해결과정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성폭력 사례를 분석해보면 성폭력 발생 상황과 이후 2차 가해, 피해자에 대한 낙인, 법원에서의 힘겨운 싸움 등 과정이 거의 비슷합니다. 이에 대해 정보를 공유해 다른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습니다. 같은 일을 당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상담을 하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 떠올라 매우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대응을 다 해갈 것이며 저의 사례가 후배들에게 좋은 선례로 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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