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렌즈로 본 유럽 복지] ①저출산 벗어난 스웨덴의 비법
스웨덴 합계출산율 1.89명
출산율 반등 요인은 ‘평등’
여성친화 제도 만들고
‘남성육아’ 당연한 문화로
성별 분업 구조 해체도

0명대 출산율 한국은
‘출산율’ 목표로 세우고
‘여성’만의 일·가정 양립으로
성별 분업 오히려 강조

스톡홀름 거리 곳곳에서 유아차를 미는 ‘라테파파’를 흔하게 만날 수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연수기자단
스톡홀름 거리 곳곳에서 유아차를 끄는 ‘라테파파’를 흔하게 만날 수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연수기자단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의 수인 ‘합계출산율’이 올해 1.0명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출산율 0명대는 세계 최하위다. 정부가 지난 12년간 저출산 대응에 126조원을 쏟아부었지만 출산율은 곤두박질 쳤다. 반면, 스웨덴은 1.89명(2017년 기준)대 출산율을 유지한다. 세계 최상위권이다. 출산율 1.3명 미만 국가를 일컫는 ‘초저출산국’ 한국과 저출산 극복 국가로 꼽히는 스웨덴은 저출산 대응 방향부터 차이가 분명했다.

<여성신문>은 지난달 한국언론진흥재단 사회보장제도 연수 과정에 참여해 스웨덴 스톡홀름을 찾았다. 스톡홀름 거리 곳곳에서 유아차(유모차)를 끄는 ‘라테파파(latte papa)’를 흔하게 만났다. 라테파파는 한 손에는 유아차를, 또 다른 손에는 카페라떼를 든 스웨덴 아빠를 뜻하는 말로, ‘평등육아’를 실천하는 남성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스웨덴 정부는 직접적인 출산율 제고에 중점을 두는 정책을 펴지 않았다.” 군나르 안데르손 스톡홀름대학교 인구통계학과 교수의 말이다. 그는 “성평등에 먼저 집중했고, 여성이 노동시장에 오랫동안 머물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저출산 해소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곳에서 보건복지부에서 파견돼 저출산 문제를 연구 중인 한두희 사무관도 “우리나라는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가 저출산 해소를 목표로 정책을 만드는데, 스웨덴은 여성과 남성 모두 일과 육아를 함께 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목표로 정책을 추진한다”고 말했다. 또 “일·가정 양립 정책과 돌봄의 공공성 강화, 성평등정책을 중심에 두는 정책을 동시에 펼쳐 (저출산 해소에) 효과를 봤다”고 설명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2.4명에 달했던 스웨덴 출산율은 1969년부터 2.0명 아래로 떨어졌고, 1999년 1.5명으로 바닥을 찍었다. 그러다가 2003년부터 다시 오르기 시작해 2000년대 중반 이후 20년간 1.9명 수준에서 큰 변동 없이 유지하고 있다.

스웨덴이 저출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성평등 관점을 녹인 가족정책이 있다. 1974년까지 도입한 ‘부모보험’이 대표적이다. 여성만 쓸 수 있던 출산휴가를 없애고 남성도 육아휴직 할 수 있도록 제도의 틀을 바꿨다. 그러나 의무가 아닌 권고사항이다보니 육아휴직을 쓰는 남성들은 자신에게 할당된 휴가를 여성에게 떠넘겼다. 그래서 등장한 제도가 ‘아빠 할당제’다. 1991년 정부는 전체 480일의 육아휴직 기간 중 남성만 쓸 수 있도록 30일 할당했다. 만약 이 기간을 아빠가 쓰지 않아도 엄마에게 양도할 수 없다. 2002년에는 60일, 그 이후에는 90일로 할당일을 늘렸다. 그러자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이 빠르게 늘었다. 현재 스웨덴 여성 고용률은 80%가 넘고, 아빠 육아휴직 참여율도 25%에 이른다.

남성이 전통적 성역할에서 벗어나 육아에 참여하도록 제도의 패러다임을 바꿔 성별 분업을 해체하자, 문화도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니클라스 뢰프그렌 사회보험청 대변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력 수요가 증가하고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출이 늘었다. 여성에게 일·육아 부담이 가중되자 ‘왜 여성만 희생해야 하느냐’는 저항이 시작됐다”면서 “1960년대부터 노동조합과 사용자조합이 성별 불평등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고 그후 20여년 동안 불평등을 줄이는 데에서 큰 진전을 이뤘다”고 말했다.

독일 연방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에서 인구 문제를 총괄하는 스벤올라프 옵스트 박사 역시 보육서비스와 같은 구조,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 일하는 여성을 향한 사회적 인식이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야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저출산을 막을 수는 없다”면서도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부부가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일·가정 양립과 여성과 남성이 육아를 함께 한다는 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호숫가에서 한 남성이 아이를 돌보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호숫가에서 한 남성이 아이를 돌보고 있다.

 

3차 저출산 기본계획 ‘성평등’ 목표로

그동안 저출산을 ‘인구 문제’로만 보던 우리 정부는 저출산 해소를 위해 정책 목표를 ‘출산율’로 잡고 정책을 추진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12월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가 만든 ‘대한민국 출산지도’ 사이트다. 지역별 가임 여성의 수와 그 순위를 보여주는 통계를 공개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지자체별 경쟁을 유도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여성을 아이 낳는 도구로 보느냐’는 비판 여론이 일었고, 사이트는 곧 폐쇄됐다. “한국 저출산의 원인은 돌봄 책임을 여성에게 전담시키는 등 여성이 안심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일·가정 양립 정책의 주 정책 대상도 ‘워킹맘’이었다. 직장에서 일도 하면서 무임금 가사노동과 돌봄까지 여성의 몫이 되자, 출산과 육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둬야 경력단절 현상이 확산됐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성별 임금격차와 끊임없이 발생하는 직장 내 성희롱도 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하지 않는 주요 원인이다. 한국 여성에게 결혼이나 출산은 더이상 행복이 아닌 ‘위기’ 다.

최근 우리 정부도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 발표를 앞두고 정책 목표를 대폭 수정하고 있다. 이미 실패한 ‘출산율 회복’을 최우선 과제에서 지우고 ‘삶의 질 제고’를 올려 놓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저출산 대책 전면에 성평등 관점을 담아야 한다는 전문가 제언도 호응을 얻고 있다. 최근엔 스웨덴식 ‘부모보험’과 ‘자동 육아휴직’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중요한 것은 저출산은 몇몇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성차별을 극복하고 ‘성평등한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해결할 수 있는 사회 현상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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