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삶을 바꾼 30대 사건] 인천 폭력남편 사건
‘고문’ 수준 폭력 일삼던 남편
아내 목숨가지 위협 ‘경악’
이웃 “남의 집안일”로 여겨

가정폭력특별법 제정 20년
피해자 10명 중 7명 ‘아내’
법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들
가정폭력에 무방비
처벌법 개정 등 이뤄져야

 

‘여성폭력 피해자 추모 및 여성폭력 근절을 위한 공동행동’이 6월 2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연 긴급 기자회견에서 정춘숙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남윤인순·진선미 의원, 권미혁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왼쪽부터)가 가정폭력 112 신고를 묵살한 경찰을 규탄하고 있다. ⓒ홍효식 / 여성신문 사진기자 yesphoto@womennews.co.kr
2012년 6월 25일 ‘여성폭력 피해자 추모 및 여성폭력 근절을 위한 공동행동’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연 긴급 기자회견에서 가정폭력 112 신고를 묵살한 경찰을 규탄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춘숙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현 국회의원), 남인순 국회의원,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권미혁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현 국회의원). ⓒ여성신문

 

2000년 가정의 달에 터져나온 가정폭력 기사는 우리 사회를 경악시켰다. 평소 의처증이 심한 폭력 남편 정모씨가 자녀들을 아예 이웃에 맡겨놓고 아내 김모씨에게 ‘고문’ 수준의 폭력을 행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해 4월 8일 발생한 ‘인천 폭력남편 사건’은 가정폭력을 사회문제가 아닌 ‘남의 집안일’로 여기는 사회분위기에 경종을 울렸다.

당시 정씨는 끓는 물을 아내의 온몸에 붓고 칼로 얼굴을 그었다. 전선으로 전기고문을 가하는가 하면 생이빨을 펜치로 뽑는 등 폭력의 심각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게다가 정씨는 아내의 소장을 천공시킨 상태에서 방치했다. 3시간이 지난 뒤 119에 신고하면서 사건이 드러난다. 당시 구급대원이 경찰에 신고하고, 정씨는 가정폭력방지법에 의해 기소됐다. 인천여성의전화는 사건 직후 김씨를 위한 모금운동을 벌이고 ‘법정 최고형’ 등 가해자 엄중 처벌을 촉구하는 인터넷 서명운동을 전개, 5월 초 이미 8000여명의 서명을 확보하기에 이른다.

여성신문은 특히 그 같은 잔인무도한 폭력행위가 가능한 것은 아내를 자신의 소유물로 간주하는 가부장 의식 때문이란 것을 제목에서 드러낸 “내 아내니까 인두로 지지고 생이빨 뽑는다”(2000. 5. 12. 575호) 기사로 전한다.

또 피해자의 비명을 듣고도 “단순히 부부싸움인 줄 알고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웃의 말을 빌려 “가정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이 같은 범죄를 방치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재차 지적한다.

가정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뒤에도 범죄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가정폭력사범이 4만7549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016. 9. 23. 1407호). 이는 5년 전보다 6.5배나 늘어난 수치다. 하루 평균 130명 이상이 가정폭력으로 검거된 셈인데, 폭력 피해자의 70%는 아내다. 5년(2011~2015년)간 가정폭력을 저질러 검거된 인원은 총 10만 832명에 달했다.

대검찰청 자료도 마찬가지로 가정폭력사범의 증가를 나타내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출받은 가정폭력사범 현황에 따르면, 가정폭력 범죄로 입건된 인원은 2012년 3156명에서 2013년 1만7195명, 2014년 2만3529명, 2015년 4만7011명으로 꾸준히 늘어 2016년 5만 4191명을 기록했다. 가정폭력사범 중 과거 5년 이내 가정폭력으로 기소유예 이상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는 인원도 2012년 218명, 2013년 512명, 2014년 1092명, 2015년 2,219명으로 해마다 2배 이상 늘어 2016년 4257명을 기록했다(2017. 10. 19. 1460호). 4년간 가정폭력사범 인원이 17배 이상 늘었고, 가정폭력 재범 인원도 20배 이상 폭증했다.

여성단체 등 전문가들은 가정폭력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과 피해자 보호, 가정폭력에 대한 사법기관 관련자와 전 국민에 대한 의식 교육이 반드시 체계적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강서구 가정폭력 살인사건 유가족이 30일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우산을 가린 채 참고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여성신문 진주원 기자
강서구 가정폭력 살인사건 유가족이 10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우산을 가린 채 참고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여성신문

1998년 7월 1일 가정폭력특별법이 시행됐다. 특별법은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약칭 가정폭력 처벌법)’과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약칭 가정폭력 방지법)’으로 마련됐다. 2018년 가정폭력특별법 시행 20년이 흘렀지만 문제는 되풀이된다.

최근 서울 강서구 등촌동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발생한 여성 살해사건이 가정폭력에서 비롯된 사건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25년 간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여성은 결국 전 남편 김모씨에게 살해 당했다. 이혼 후에도 김씨는 아내 차량에 위치추적장치를 설치해 미행하고 가발을 쓰고 접근하는 등으로 지속적으로 이씨를 스토킹했다. “죽이겠다”는 위협은 결국 현실이 됐다.

다른 범죄와 달리 가정폭력과 데이트폭력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범죄의 양상은 뚜렷하다. 협박과 보복이 반복되면서 심각한 피해로 이어질 위험도 높다는 점이다. 사법당국의 처벌이 미미하다보니 피해자는 두려워서 신고를 하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가정폭력 처벌법 개정과 스토킹처벌법 제정으로 이 문제를 풀자고 제안하고 있다(2018. 11. 8. 1513호).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당선 직후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에서도 불평등한 성별 관계에서 발생하는 신체적·성적·정서적 폭력을 ‘젠더폭력’으로 규정하고 젠더폭력방지기본법 제정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당정은 스토킹범죄처벌특별법을 정부안으로 발의하겠다는 계획을 지난 2월 마련했으나 법안은 당초 취지에서 많이 후퇴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처벌법 제정이 이뤄지면 스토킹 피해자 법적근거와 데이트폭력 처벌 강화를 위한 사건처리기준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기 때문에 실시를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이같은 상황에서 최근 여성신문은 21년간 남편에게 폭행당한 여성 A씨의 주민등록번호 변경 신청이 받아들여진 소식을 보도한다(2017. 8. 24. 1453호). 사실혼 관계의 남편으로부터 상습 폭행 당하던 A씨는 폭력을 피해 딸과 같이 숨어 살았으나, 남편의 지속적인 스토킹으로 타지역으로 계속 거주지를 옮겨야 했다. 이에 주민등록번호 변경 신청을 낸 것이다.

1968년 주민등록번호가 처음 부여된 후 약 50년 만에 처음으로 나온 주민등록번호 변경 결정이다. 그러나 변경제도가 친족 간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의 피해자에겐 무용지물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가해자가 부모일 경우 피해자가 변경한 번호를 알아낼 수 있어서다. 피해자가 가족관계증명서 교부 제한을 신청할 수 있는 보완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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