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애국심을 불러 일으킨다 . 하계·동계 올림픽, FIFA월드컵 열리면 '대.한.민.국'을 외친다. 남녀노소 하나가 된다. 생활체육 보급률은 선진국 척도 중 하나다. 직접 참여를 하든, 눈과 귀로 즐기든 스포츠는 일상이 되고 있다. 스포츠의 미래 가치는 크다. 한국 스포츠를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스포츠 속 '여성이슈'는 무엇일까. 여성신문은 '한국 스포츠를 키우는 인물들(스.키.인)' 연재를 통해 한국 스포츠의 과거와 미래를 만나본다 . [편집자 주]

테니스인 주원홍 서울시체육회 부회장

한국 테니스 중흥기 이끌어

여성, 장애인 스포츠 저변 확대에도 관심

국가대표팀 감독 후임에 여성 사령탑 앉히기도

"여성 체육인, 존재감 드러나는 역할 해야"

"국민들에게 스포츠 미치는 영향 크다"

주원홍 서울시체육회 부회장이 6일 서울시청 앞에서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주원홍 서울시체육회 부회장이 6일 서울시청 앞에서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기자

지난 1월 세계 테니스계가 놀랐다. 만 21세인 정현이 호주오픈에서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를 꺾고 4강에 올랐기 때문이다. 한국 테니스 사상 최초 메이저대회 4강 진출이었다. 정현의 뛰어난 성적 뒤에는 그를 발굴한 지도자가 있었다. 주원홍 서울시체육회 부회장이다. 그는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다. 원석을 발굴해 세계적 선수로 키워낸 지도자로서의 탁월한 능력 덕분이다. 선수 생활은 짧았다. 그러나 은퇴 후 미국 유학을 다녀와 세계 테니스계의 흐름에 눈을 떴다. 국내로 돌아와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대 때 제일생명 실업팀 감독을 시작으로 국가대표 사령탑까지 지내면서 한국 테니스 성장에 힘을 보탰다.

아시아테니스연맹 부회장, 대한테니스협회장 회장, 대한장애인테니스협회 회장, 한국실업테니스연맹 부회장 등 화려한 수식어는 주원홍 부회장이 쉴 틈 없이 달려온 길을 설명한다. 그는 왜 이토록 쉬지 않고 테니스를 위해 달려왔을까. 그리고 테니스를 넘어 한국 체육계를 위해 뛰는 그의 스포츠 철학이 궁금했다. 지난 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대한장애인테니스협회에서 그를 만났다.

-서울시체육회 부회장에 임명됐다. 내년 100회 전국체전 준비에 한창이다.

“임명된 지 두 달 정도 됐다. 체육회 전반에 걸쳐 조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국체전 준비 시민위원회장도 맡고 있다. 늦게 오니 이미 결정된 것들이 많다. 이미 알려졌지만 전국체전 수영을 올림픽공원 수영장에서 못 치르고 인천에서 한다. 서울에서 33년 만에 전국체전이 열리는데, 올림픽을 치른 수영장에서 전국체전을 못 한다는 게 아쉽다. 서울시가 체육시설을 많이 확보 못 한 것도 문제다.”

-2012년에도 서울시체육회에서 실무부회장을 맡은 적이 있다. 그 당시 운동선수가 공부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고 취임사를 밝혔다.

“당시 체육회부회장을 한 배경 중에는 2002년 ‘체육시민연대’라는 단체에서 NGO(비정부기구) 한 것이 영향을 끼친게 아닌가 생각한다. 당시 한 중학생 수영선수(장희진)가 국가대표로 뽑혔는데 시험 때문에 태릉선수촌에 입촌하지 않으면 대한수영연맹에서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했다. 그 때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체육계 인사 200여명이 시민연대를 발족했다.”

“나는 평소 ‘공부를 잘하면 부모가 행복하지만 운동을 잘하면 본인이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선수들에게도 공부하라고 한다. 제자인 박성희 선수도 은퇴 후 이화여대에서 스포츠 심리학을 전공했다. 이후 영국에서 유학해 박사학위를 땄다. 선수들도 공부해야 큰 선수가 될 수 있다.”

-학교에서 체육이 잘 안 되는 게 현실이다.

“학부모들이 체육을 과외 시킨다. 대학 입시에도 반영되는 부분이 있다. 정부에서도 공부하는 학생들이 운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려고 한다. 일반 학생들도 운동을 많이 할 수 있도록 전문가를 학교에 파견해 활성화해야 한다. 서울시체육회도 이제 클럽스포츠를 활성화하고 기존 체육시설을 리모델링 해서 많은 시민이 이용할 수 있게 하려 한다.”

-대한장애인테니스협회에서 회장을 맡았다. 장애인 스포츠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1993년 지인이 휠체어테니스에 대한 제안을 했다. 제가 미국 유학 생활 때 세계챔피언 휠체어테니스 선수와 아카데미를 다닌 적이 있다. 이후 대한장애인테니스협회를 창설하고 장애인테니스 팀 초대 감독도 했다. 장애인이 재활하는데 스포츠만큼 좋은 게 없다. 경제적으로 여건이 되는 사람만 할 수 있다는 점은 아쉽다. 지금은 동호회도 많다. 자카르타 장애인 아시안게임에서 메달도 땄다(금메달 2개·은메달 4개).”

“나도 장애인 체육을 보면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 사람들도 일반인들도 휠체어테니스를 보면서 감동한다. 국내에서는 관심이 떨어지는 게 아쉽다. 2012년 런던 패럴림픽 때 코치와 함께 갔었는데 관중석 매진이 돼서 놀랐다. 선진국은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관심도 많다. 그런데 한국은 올림픽을 치른 경기장에도 장애인들이 사용하기 힘들다. 장애인 전국체전도 걱정이다.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다행히 정부에서 관심이 보여 고무적이다.”

주 부회장은 2012년 세계휠체어테니스대회를 유치했다. 국내 뿐 아니라 아시아최초였다. 테니스 여건이 어려운 국내에서 일궈낸 또 하나의 성과였다. 여성 스포츠인 발굴에도 능하다.

 

주원홍 서울시체육회 부회장이 6일 서울시청 앞에서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주원홍 서울시체육회 부회장이 6일 서울시청 앞에서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기자

-서울시 실무부회장을 하면서 여성 이슈에도 나선 적이 있다. 여성 체육인들의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예전에 삼성증권 감독을 그만둘 때 여자 코치를 사령탑으로 임명했다. 김일순 감독이다. 능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남자팀을 여성 감독이 맡은 것은 아마 처음일 거다. 당시 테니스계가 놀랐을 거다. 모두 그런 건 아니겠지만 여성 감독들은 제자들을 동생처럼 따뜻한 게 대하는 걸 자주 봤다."

“사실 여성들이 스포츠에서 위축될 수 있는 요소가 많다. 당장 학교만 보더라도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운동이 많이 없다. 피구 정도일 거다. 남자 애들을 (프로나 실업쪽으로) 운동시키는 것도 저조한데 여자도 적다. 출산율도 떨어지고 있다. 원래 여성들이 체육을 더 잘했다. 과거 아시안게임 등에서도 금메달을 많이 땄다. 여성 체육인들도 스스로 자기 권리를 주장하거나 존재감을 드러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포츠계에서는 성폭력 문제가 수면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다른 곳과 달리 스포츠계가 워낙 선후배 또는 감독 제자 간의 관계가 권위적이라 그런 부분이 있다. 당한 사람도 말 못 하는 분위기가 있다. 스포츠계가 풀어야 할 과제다.”

주 부회장은 중학교 1학년 때 친구를 따라 테니스부에 들어갔다. 부모님의 반대로 학교 앞 라면집에 신발과 라켓을 맡겨놓고 테니스를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부모님 허락이 떨어졌다. 이후 성균관대 체육특기자로 입학했다. 졸업 후 실업팀에서 잠깐 뛰다 20대 후반 은퇴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1년간 코칭스쿨 등을 다니며 선진화된 테니스 가르치는 교육방식을 배웠다.

그는 유학 때 “테니스는 국내에서 서로 경쟁할 종목이 아니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국내에 돌아와 1985년 제일생명 여자테니스 팀 감독을 했다. 팀은 1989년 해체됐지만 그 사이 중학교 1학년이던 박성희를 만났다. 1992년 대기업을 돌아다니며 테니스 후원을 요청했고 삼성물산(현 삼성증권)의 후원을 이끌어냈다. 박성희는 든든한 지원 속에 1996년 프랑스오픈, 1997년 호주오픈, 1998년 호주오픈 혼합복식에서 16강에 오르는 등 이름을 알렸다.

남자테니스의 간판 윤용일, 이형택도 주 부회장의 안목에서 나왔다. 어릴 때 재능은 있었지만 대학생 때 슬럼프에 빠졌던 둘에게 운동하자고 권유했다. 결국 윤용일은 1995년 후쿠오카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우승했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이형택과 단체전 금메달을 따냈다. 이형택은 2000년 한국 남자 테니스 최초로 메이저대회인 US오픈 16강에 올랐다. 올해는 정현이 호주오픈에서 4강에 오르면서 한국 테니스의 역사를 세웠다. 오랜만에 테니스 열풍도 불었다.

-정현 선수는 언제 처음 만났나.

“삼성에 주니어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고 한 적이 있다. 유망주를 미리 키워내자는 뜻이었다. 정현도 혜택을 봤다. 어릴 때 너무 잘해서 미국 아카데미에 갔다가 몸이 망가져서 돌아왔다. 정현 아버지 부탁으로 정현이 중학교 3학년 때 만났다. 5분 이야기했나. 배포도 있고 대답도 잘해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부정교합이 있어 척추에 무리가 갈 수 있는데 잘해주고 있다.”

-직접 대기업을 다니면서 지원을 얻어내고 선수들도 발굴했다. 단체장을 맡으며 평생 스포츠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이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

“나는 테니스를 잠깐 했지만 재미있었다. 유학은 1년이었지만 테니스에 더 빠졌다. 장애인 스포츠도 그렇게 시작 했다. 체육인으로서 국민들이나 아이들에게 스포츠가 미치는 영향은 크다고 생각한다. 선진국에서 체육을 바라보는 시각과 우리나라가 바라보는 게 차이가 있다. 이것을 좁혀나가야 한다. 메달을 따는 것도 좋지만 메달이 우선이 되는 정책은 그만해야 한다. 내가 체육인으로서, 경기인 출신으로서 목소리를 내서 그 부분을 바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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