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보 법원행정처 차장
김창보 법원행정처 차장

 

국회 법사위 법안 심사 회의 
자기 신체 촬영물 유포죄 신설 논의

김창보 법원행정처 차장
“음란물 배포와 똑같다” 난색

2·3차 유포자 성범죄자화 우려

자기 신체를 직접 촬영한 촬영물이 동의없이 유포되는 피해가 심각해지면서 국회가 법 개정에 착수했다. 그러나 법 개정 회의에서 문제가 되는 영상물에 대해 ‘음란물’이라는 인식을 드러내는가 하면 2·3차 유포자를 성폭력범죄자로 처벌하는 것은 과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영상 유포에 따른 피해의 심각성은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이같은 상황이 개인의 자질 문제와 함께 법안 심사에서 남성들로만 이루어진 구조적 문제도 보인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법안심사1소위가 지난 9월 13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 14조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조항 개정안을 심사하는 자리에서 믿기 어려운 발언이 이어졌다.

이날 회의 참석자는 법안심사1소위 위원장인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위원인 주광덕·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 법사위 강병훈 전문위원, 법무부 김오수 차관, 등으로 모두 남성이다. 이들은 해당 조항과 디지털 성폭력 문제에 대한 이해 부족을 드러냈다.

이날 안건으로 올라온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은 본인이 본인의 신체를 촬영한 촬영물을 본인의 동의없이 유포한 경우도 처벌할 수 있도록 법조항을 신설하는 것이다. 제20대 국회가 개원 직후인 2016년 6월부터 진선미·김삼화·이주영·남인순·정춘숙·신용현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했으나 디지털성범죄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나서야 개정에 착수했다. 현재 성폭력처벌법 제14조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거나, 촬영물을 유포한 자, 촬영대상자가 촬영에는 동의하더라도 사후 유포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유포한 자만 처벌할 수 있다.

참석자들 사이에는 자신의 신체를 직접 촬영물을 동의에 반해 유포하는 행위에 처벌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러나 논의가 구체화될수록 난색을 표했다.

문제는 특히 법원을 대표해 의견을 낸 김창보 법원행정처차장의 발언이다. 처벌에 동의를 하면서도 2·3유포자까지 처벌대상이 되는 것에 수 차례 우려를 제기했다.

김 차장은 “이 유형 범죄는 몰카 범죄를 처벌하는 법조항”이라면서 “그런데 그게 어떤 문제가 생기냐면 그걸 2차·3차 유포할 때 그 사람들이 다 처벌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음란물을 배포하는 것과 똑같다”고 했다. 이어 “ 그게 누구 것인지 그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2차․3차 배포될 때까지 다 그걸 이 조항으로 해서 처벌하게 되면...”이라고 재검토 의견을 냈다.

이에 김오수 차관은 “여성들 중에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했고, 주광덕 의원은 “2차, 3차 유포자에 대한 처벌이 가혹하다는 건 어떤 취지냐”고 물었다.

답변에 나선 김 차장은 “그것은 그냥 음란물이거든요...(중략) 그걸 자기가 받았는데 그 과정을 모르고 동의해서 찍었는지 어쩐지는 모르지 않느냐”라고 반문하면서 “이게 성폭력으로 가면 신상정보를 등록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까지 다 신상정보 등록하게 하는 건 좀 과한 것 아닌가, 다른 조항으로 처벌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되는 것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의원들은 ‘자기 신체 촬영’의 개념 조차 이해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보인다. “셀카에 한정되는 것 아닙니까 지금 추가된 게?(조응천)” “그건 아닌 걸로 보이는데(주광덕)” “아니, 셀카에 준하는 거지요, 마찬가지로 같이 찍은 거니까(송기헌)” “뭔 말인지 모르겠다(조응천)” 등의 대화가 이어지기도 한다.

이에 대해 여성계 관계자는 “유포자의 신상공개와 피해자의 영상 노출을 대등한 관계에 놓고 비교하는 인식을 이해할 수 없다. 영상물을 보는 사람의 입장인지 피해자의 입장인지 누구의 입장을 대변하는지 알 수 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범죄라는 인식이 있다면 2, 3차 유포까지 처벌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발언 대신에, 이것을 처벌하고 피해자의 일상을 지켜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발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동의에 의한 촬영물’이라면 그것을 전달해 받았을 때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은 배제한 채 ‘음란물’로 인식된다고 전제하는 것도 문제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이효린 팀장은 “피해 촬영물이 온라인 공간에서 성적으로 소비되고 낙인찍히고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야동’처럼 소비되는 것을 주체적으로 원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면서 유포에 동의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즉 음란물은 소수인 반면 불법촬영물과 피해촬영물이 대다수인 것이다.

또 다른 여성주의 활동가는 “현실적으로 유포자들에 대한 체포가 어려운 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너무 만연해 있고 그게 일상이 될 때까지 국가가 방치했으니 국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번 법 개정 논의를 통해 유포가 범죄임을 국가가 책임지고 분명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해당 법개정안은 오는 14일 재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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