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경 칼럼] 그 할머니가 당한 가정폭력
[정진경 칼럼] 그 할머니가 당한 가정폭력
  • 정진경 사회심리학자
  • 승인 2018.11.06 14:47
  • 수정 2018-11-06 1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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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경 사회심리학자 

 

시내에 일 보러 나갔다가 시간이 남아 잠시 나무 밑 벤치에 앉아 기다리는데, 칠십대로 보이는 자그마한 할머니가 옆자리에 와서 앉았다. 상가 앞 매대에 걸어 놓은 화사한 아동복을 보고 혼잣말처럼 두어 마디 하신다.

“차~암, 애들 옷도 이쁘기도 하네. 옛날엔 저런 게 어디 있어. 기냥 교복을 오래 입게 큰 거 사 입히고, 아래 애들은 위 애들 꺼 물려 입히고 그랬지.”

이쯤 되면 혼잣말처럼 해도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신호인지라 걸어오는 말을 받았다.

“옛날엔 어느 집이나 다 그랬죠.”

“차~암, 애들 엉터리로 키웠지. 뭘 제대로 해 준 게 있나. 그래 지금도 애들보고 나한테 잘하라 할 수가 없어요.”

“그땐 다 사정이 그랬으니까요. 그래도 최선을 다해 키우셨겠죠.”

“우리 집 애들 아버지가 술만 먹고 소리만 질러서.... 에휴.”

“아이구 고생 많으셨겠네요.”

“술 먹고 골목 어귀에 들어서면, 동네 사람들이 몰래 달려와서 애들 데리고 어서 피하라고 알려줬어요. 오죽하믄.”

구체적으로 말을 안 해도 가정폭력이 심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한지 이삼 분 만에 듣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사연이었다. 다 풀리지 않은 마음의 응어리를 안전한 사람에게 털어놓아 해소하고 싶은 마음, 그 고생스러웠던 삶을 누군가 공감하고 위로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으리라. 그래서 어차피 기다리는 시간에 나도 적극 이야기에 참여했다. 할머니는 힘들었던 사연을 술술 털어놓았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그렇게 못 할 짓을 하더니 죽을 때가 되니까 미안하다 사랑한다고 하더란다. 폭력 남편들의 전형적인 언사다. 원래는 상당히 고왔을 듯한 할머니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패어 있었다. 어떻게든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그런데도 씩씩하게 사셨나 봐요. 고생 하나도 안 한 분처럼 고우신데요!”

“에이구, 곱긴 뭐가 고와요, 다 늙은 얼굴이.”

그래도 싫지 않은 듯 씩 웃으셨다.

가정폭력은 생각보다 많다. 우리나라의 가정폭력 발생률은 대체로 30-50%로 보고되어있다. 놀라운 수치 아닌가! 한두 집 건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는 심각한 경우도 많다. 가정폭력에 오래 시달리다 이혼한 아내를 전남편이 찾아와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딸이 아버지에게 사형을 내려달라고 청원했다. 아버지의 폭력이 어떠했길래 딸이 이런 청원을 할까. 그 폭력을 사회가 조기에 막아주어 이 불행을 면하게 해 줄 수는 없었을까.

가정폭력을 신고해도 기소하기 어렵고 구속률은 1%도 안 된다고 한다. 이 수치를 보고 기가 막혔다. 이쯤 되면 피해자는 신고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서 절망하게 된다. 반면 가해자는 폭력을 써도 별일 없다고 생각해서 다시 폭력을 쓰게 된다. 게다가 현재 가정폭력은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한다. 피해자가 처벌하지 말아 달라고 하면 처벌하지 않는 범죄인 것이다. 처벌 여부를 피해자가 정하게 되어 있으면, 보복의 우려 때문에 처벌하라고 결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과연 가정폭력이 그렇게 가벼운 일인가? 가장 가까운 사람이어야 할 남편이 사정없이 때릴 때, 맞고 있는 그 아내의 절망의 깊이는 어디쯤일까? 가정폭력은 몸과 마음을 파괴한다. 아내를 때리는 사람은 아이들도 때리는 경우가 많고, 어머니가 맞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아이들도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피해자들은 몸의 상처에 더해, 장기간의 불안과 우울은 물론 심하면 공황장애나 자살생각까지 겪게 된다.

사회심리학 시간에 가정폭력에 대해 강의하고 자료 비디오를 보여주면, 연구실로 찾아와 상담을 청하면서 괴로운 마음을 토로하며 우는 학생이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얼마나 힘들었냐고 위로하고 상담기관을 알려주면서 격려도 했으나,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너무 제한적이라 마음이 아팠다. 어느 날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릴까 두려워, 가끔 연구실로 불러 괜히 일도 시키고 이야기도 나누고 밥도 먹으러 가곤 했다.

심리학의 시각에서는, 가해자도 알고 보면 애처로운 사람일 수 있다. 행복한 사람이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는다. 불행한 가정에서 사랑 없이 자랐을 수도 있고, 어려서 가정폭력을 경험했을 수도 있고, 심한 좌절과 불안에 빠져있을 수도 있다. 폭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처벌을 가볍게 할 수는 없다. 가정폭력은 인간을 참담하게 파괴하는 중대 범죄이기 때문이다. 격리, 구속, 처벌, 교육을 강화하여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교화해야 한다. 제도를 잘 마련한 외국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대책은 미비하기 그지없다. 신고가 들어가면 경찰이 출동하고 가정폭력을 확인하면 초범이라 해도 바로 구속하는 곳도 있다. 언제고 재발할 수 있기 때문에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일단 구속되면 실형을 받지 않더라도 장기간의 교육을 받아야만 풀려날 수 있다. 가정폭력이라는 범죄의 무게에 대한 인식이 다른 것이다.

그날 할머니와 헤어져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그 얼굴과 사연이 자꾸 떠올랐다. 애들한테 해 준 게 없어서 지금도 나한테 잘하라 할 수가 없다는 그 말, 미안함과 회한이 가득 서린 그 말 뒤의 사연이 단지 좋은 옷을 사주지 못한 것뿐일까. 그 가족은 지금도 가정폭력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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