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적 성인식은 개방적 현실은 폐쇄 혹은 수동적

‘그날 종두는 공주의 집을 무단으로 침입했다. 다짜고짜 공주의 발이 예쁘다며 만지기 시작해 얼굴을 쓰다듬고, 가슴에 손을 넣어 더듬기 시작한다. 자신의 바지를 벗어 내리면서 뒤틀린 몸으로 완강히 거부의 몸짓을 하는 그녀를 붙들고 “잠깐만, 이쁘지, 이쁘지”라며 어린애 달래듯 다루다 “잠깐만 있어봐, 씨발년아”라고 언어적, 성적 폭력을 가한다. 결국 기절한 공주의 모습을 보고 놀라 행위를 멈춘다. 낯선 침입자 종두에게 공주는 먼저 전화를 걸어 초대하고, 이 사건 후에 그들의 로맨스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장애여성, 그대의 당당한 성을 말하라

장애는 성생활에 아무런 지장 주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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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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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에게 이동권은 기본권리이자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영화 〈오아시스〉로 이창동 감독은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거머쥐었지만 장애여성들은 이 영화로 또 한번의 사회적 폭력을 맛봐야 했다. 결국 장애여성은 본인의 의지에 따른 적극적이거나 섬세한 감정 표현과 행동이 아닌 폭력을 통해 ‘성’에 눈뜨게 된다는 사회적 편견을 떨쳐버리기 위한 기초작업으로 ‘장애여성공감’에서는 지난 27일 국가인권위에서 ‘장애여성 성인식 실태조사 결과발표 워크숍’을 열었다.

이날 주제 발표자로 나선 서강대 사회학 박사과정 이희연씨는 장애여성들의 성에 대한 인식들을 알아내고, 그들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이 확보될 수 있는 성문화 정착 프로그램을 마련하기 위해 이같은 조사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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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기간은 지난해 6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며, 응답자는 총 165명으로 주로 서울시내에 거주하는 장애여성들이다. 하지만 응답자 가운데 50% 정도는 시설이나 교육기관을 이용하며, 나머지 50%는 장애여성공감에서 활동하는 회원 및 타 장애인단체에서 활동하는 장애여성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설문내용과 결과가 사회의 정보나 인식과는 일정 정도 차단돼 있는 ‘재가 장애여성’의 입장이나 생각이 반영되지 못했다는 점이 이번 조사가 갖는 한계점으로 지적됐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27.4%가 성에 대한 일반지식 및 정보를 대중매체인 TV나 영화를 통해 얻는다고 응답해 장애여성들이 성에 대한 정확한 정보나 교육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씨는 “대중매체에 나타난 성은 올바른 지식보다 조작된 형태의 성이 많기 때문에 더욱 더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폭력 경험 및 조치에 있어서는 응답자의 20%가 남성의 강요나 위협에 의한 성관계 경험이 있었으며, 59.9%가 성희롱 피해 경험이 있어 장애여성들의 성희롱 노출이 위험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성폭력과 성희롱 모두 그 대응 방법이 ‘참거나 친구들에게 도움을 구한다’가 50%를 넘는 것으로 밝혀져 성폭력 피해를 당한 장애여성이 도움을 청할 만한 기관이나 상담소의 비율이 낮고 그 홍보도 매우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씨는 “장애여성들에게 성폭력은 확실하게 대처해야 할 범죄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면서 “장애여성을 전문으로 하는 성폭력 상담소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10~20대 45.5%, 30대 64.9%, 40대 31.6%가 자신의 장애가 성생활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임신이 성관계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응답이 10~20대는 32.9%, 30대 61.4%, 40대 55.6%로 확인돼 장애여성들 스스로 장애와 성생활의 관계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결혼과 관계없이 성관계를 해도 괜찮냐’는 질문에 대해 연령별, 장애종류별, 직업별로 각각 60% 이상이 ‘그렇다’고 응답해 장애여성들의 성에 대한 인식이 개방적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성경험이 없는 상태로 자신의 장애에서 오는 성생활의 제약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관념적 답변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배복주 소장은 장애여성들의 개방적 성인식과 현실의 차이에 대해 “전체의 43.7%가 ‘파트너를 만날 기회가 없어서’라고 대답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며 “이는 결국 장애가 성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주는 것인만큼 그것이 장애가 있는 몸에 대한 본인의 생각 혹은 타인의 생각 때문인지, 몸의 기능과 관련이 있는지, 이동권의 문제인지 등 구체적인 접근을 통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씨 역시 19.7%가 결혼하지 않아 성경험이 없었다는 대답에 대해 “장애여성들이 관념적으로나 추상적인 상황에는 개방적이고 자유롭지만 막상 그것이 자신의 일로 구체화돼 나타나면 폐쇄적이고 수동적인 경향을 지닌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장애여성에게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성교육과 성문화의 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공유산 경험(1회)에 대한 질문에서는 동거중인 응답자의 100%, 결혼한 상태에서는 85.7%, 이혼한 상태에서는 66.7%, 결혼하지 않은 상태는 50.0%인 것으로 나타나 장애여성들에 대한 피임 교육과 피임기구 보급이 시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씨는 실태조사 결과에 대해 설문조사가 조사대상, 조사과정에 있어 몇가지 한계점을 노정하고 있음에도 그 동안 소외됐던 장애여성의 성을 담론화했다는 점이 큰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토론에 참가한 장애여성공감 운영회원인 박주희씨는 “당연하면서도 언급되지 않은 장애여성의 ‘성’을 논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장애여성들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박씨는 비장애여성에게는 여성으로서 당연한 현상이지만 장애여성에게는 아무런 쓸모 없는 짐과 같은 취급을 받은 ‘월경’을 예로 들면서 “축복받아야 할 초경의 순간에도 가족들로부터 ‘여자 구실도 못할텐데 저 몸으로 무슨 생리냐’라는 식의 멸시를 받기도 한다”며 자신의 여성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무성적 존재로 묻혀 살아온 장애여성의 아픔을 이야기했다.

아울러 그는 이번 설문에 장애여성의 월경에 대한 문항이 빠졌음을 지적하며 장애여성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월경에 대한 인식과 가족이나 주변인들에 의해 느끼게 되는 자신의 월경에 대한 인식 등을 알아볼 수 있는 문항 등이 포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박씨는 장애여성들에게 여성으로서 성은 소중한 것이며 결코 짐이 아니기에 이제 그 당당한 성을 실천하는 장애여성들이 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라는 주제로 토론 발제를 맡은 숭실대 사회사업학과 박지주(2002년 한국장애인 인권상 수상자)씨는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며 만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한 비장애 남성활동가가 지나듯 ‘장애가 없었으면 남자 깨나 울렸겠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며 진보적 의식을 가졌다는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장애여성은 무성의 존재라고 말했다. 박씨는 “성은 즐거운 것이고 밥을 먹는 것처럼 일상화된 생활이며 삶의 본능”이라면서, 장애여성들이 장애를 이유로 스스로 여성성을 포기하지 말고 성적 주체성을 갖고 사회적 삶의 기본인 성을 즐기기를 당부했다.

동성혜 기자dong@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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