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이 곧 지나간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똑같은 하루가 또 지나가는 것인데 굳이 연말이라는 것에 의미를 둘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번 주엔 갑자기 기분이 묘해지면서 허둥지둥 앞만 보고 뛰어왔던 시간을 돌이켜 보게 된다.

올해엔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얻은 것도 잃은 것도 부끄러울 정도로 많은 실수도 슬픈 일도, 그리고 가슴 뿌듯하게 여겼던 일도 많았음을. 남은 학위 논문만 마무리하면 어쩌면 바로 한국을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한국을 더욱 많이 느끼고 배우자는 조급함도 있었다.

그래서 한국을 체험하는 일을 행동에 옮겼던 한 해인 것 같다.

올해엔 다른 때와 달리 한국의 산천을 보기 위해 유난히 등산을 많이 갔다. 연초 청계산 산행에서 처음 본 돼지머리를 놓고 하는 시산제! 시산제가 끝나고 먹은 돼지머리 고기는 뜻밖에 너무 맛있었다. 봄여름에 간 북한산과 오대산은 살아 숨쉬는 왕성한 생명력을 느낄 만큼 좋았다.

가을에는 명성산에 가서 각양각색으로 물든 단풍잎들을 보며 그 아름다움에 진한 감동을 느꼈다.

각기 다른 개성들이 모여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겨울에 간 청계산은 황량해 좀 아쉬움이 있었지만 새로운 준비를 위해 장고에 들어간 위엄을 본 듯했다.

한 때는 한국이 답답하다고 느꼈지만 가까운 곳에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한국적인 것에 더 매료됐던 건 바로 임권택 감독의 작품이다. 내가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텔레비전에서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를 봤는데 그 뒤부터 우리 전통음악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올해는 그가 장승업의 일대기를 엮은 ‘취화선’을 보고 주인공 장승업의 캐릭터에도 매료됐다.

특히 ‘취화선’에 나온 조선시대의 배경 화면 하나하나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장승업이 유랑을 하는 동안 함께 나온 자연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워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내 마음에 와 닿았던 전통음악, 판소리와 단소를 배우고 싶은 열망을 품게 됐다.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는 한국 생활이지만 한국적인 것에 더욱 많은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

한국적인 것을 찾아내 체험해 보려고 요즘에도 학교 문화공간 게시판에 자주 들어가서 살피고 있다. 한국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감동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김홍매/ 서강대 대학원 박사과정(조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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