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계 위상 높인 2002년 정치참여 새 지평 열었다

다사다난했던 2002년 한 해가 저물었다. 지난 한 해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선거, 여중생 궤도차량 압사사건, 월드컵 등 굵직굵직한 사안들이 우리들 입에 오르내렸다. 여성들은 수많은 뉴스 가운데 어떤 것들에 가장 많은 관심을 쏟았을까. 여성신문은 올해 이슈화된 뉴스 가운데 여성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10대 뉴스를 간추려 보았다. 곱씹어 보면 유난히 여성들에게는 성과가 많은 한 해였다.문제는 개개인이 채감하는 여성인권의 현주소가 그리 밝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그를 현실화 시켜내는 것이 올 2003년의 과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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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성계 위상 높인 범 여성계 주최 대선 TV토론

지난 한해 역시 여성계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였다. 지난 2002년 여성계는 대선여성연대 발족, 대선후보 초청 TV토론이라는 뚜렷한 성과를 얻어냄으로써 한국정치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100여개 여성단체로 이뤄진 대선여성연대는 여성 유권자들을 상대로 ‘여성정책, 꼼꼼히 따져보고 선택합시다’ 캠페인을 개최하는 등 활발한 활동으로 온 국민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지난해 여성계가 이룬 가장 큰 성과는 78개 여성단체가 함께 개최한 대선후보 초청 여성정책 토론회라고 할 수 있다. 이 토론을 통해 여성계는 호주제 폐지, 보육제도 확보, 여성할당제 등 그동안 주장해 온 주요 현안을 공중파 방송을 통해 전국민적으로 공론화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대선후보들에게 여성문제를 치밀하게 공부하고 정리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했다는 평가다. 여성계 관계자는 “그동안 여성들의 투표율이 낮았던 이유는 여성들이 정치에 무관심했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계가 여성들의 삶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라며 “이번 대선후보 초청 여성정책 토론회는 여성들에게 정치에 전면적으로 참여할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2. SOFA 개정운동 촉발한 여중생 사망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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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궤도차량에 의해 우리의 어린 딸 효순, 미선양이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측은 무죄평결을 통해 책임을 회피했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불합리성만 재확인한 채 묻힐 뻔한 이 사건은 ‘앙마’라는 ID를 가진 평범한 네티즌이 언론사 게시판에 올린 촛불시위 제안을 통해 불과 1개월 여만에 수만명의 촛불시위 군단을 모이게 하는 사건으로 재점화됐다. 처음의 시위는 대낮에 궤도차량에 의해 압사 당한 여중생을 추모하는 행사의 일환으로 시작됐지만, 곧 불평등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SOFA 개정운동으로 번졌다. 그리고 이제는 이 땅에서 사람들끼리 총부리를 겨누는 전쟁을 없애야 한다는 평화운동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일부 정치권에서 반미운동을 부추기는 세력이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촛불시위 참가자들은 형사재판권의 한국 이양, 불평등한 주한미군지위협정의 전면 재개정, 미국의 공식 사과 등 가시적인 성과를 이뤄내기 전까지 이 행사를 멈추지 않을 예정이다.

3. 장상 여성총리 지명자 인준 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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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이 여성으로서는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국무총리서리에 지명됐으나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함으로써 안타깝게 낙마했다. 여성계는 성명서까지 내면서 대대적으로 환영했지만 결국 좌절감만 맛봐야 했다. 이 사건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남성 위주의 정치계와 언론계는 장남의 미국국적과 부동산 투기 및 학력 허위 기재 등에서 보여지듯 도덕성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당연한 결과라고 말한 반면, 여성계는 여성 고위공직자에 대한 일방적인 마녀사냥이라고 반발했던 것이다. 장상 지명자에겐 그토록 고압적이던 국회의원과 언론이 김석수 지명자에게 필요 이상의 배려를 보인 사실만 해도 여성계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여성계 관계자는 “여성 공무원들은 그동안 남성들에 비해 인사 불이익을 받는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왔는데 장상 지명자의 인준 부결을 통해 그 박탈감이 한층 커졌다”고 말했다.

4. 분단후 첫 남북여성통일대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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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57년만에 처음으로 남북 각 분야 여성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8월 16일 열린 남북통일대회. 불과 1시간 남짓 되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여성들이 통일운동에 주체적으로 나서자는 합의와 한민족 여성이라는 자매애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남북통일대회 사흘째를 맞아 열린 여성대표단 상봉모임에는 여원구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 의장 등 북측 대표 6명과 이현숙 8·15 공동행사 여성위원장 등 남쪽 대표 20여명이 참여했다. 여성계는 남북통일대회는 통일운동 과정에서 소외됐던 남북 여성들이 하나됨을 확인하며 향후 통일과정에서 한반도 평화 실현에 여성이 기여할 수 있는 계기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는 평. 양측은 지난 10월 16일부터 17일까지 금강산에서 ‘남북 여성통일대회’를 개최, 6·15 선언의 실천과 통일운동에 힘을 합쳐 나가기로 했다.

5. 세계 최저 기록한 한국 가임여성 출산율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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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은 지난 8월 한국 가임여성 1명이 낳는 평균 자녀수가 1.3명이라고 발표했다. 미국의 2.1명과 프랑스의 1.9명보다 낮은 이 수치는 출산억제 구호를 구시대적 유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여성계는 이를 출산과 육아로 인한 부담이 여성에게 집중되는 사회적 현실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했다. 아이를 봐줄 사람도 없고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만한 곳도 없어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여성들은 혼자서 아이 키우기를 도맡아야 한다는 억울함과 아이를 키운 후에는 사회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에 출산을 기피하고 있다. 3개월 유급휴직만으로도 회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여성들에게 2년 간의 육아휴직은 그야말로 꿈에 불과하다. 그나마 여성 노동자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3개월 유급 휴직마저도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으로 한국의 보육현실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잘 반영하고 있다.

6. 국회상임위 여성위원회 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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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4월 국회에 상임위로 여성위원회가 신설된 것도 올해 여성계가 거둬들인 큰 수확이다. 1994년 국회 안에서 여성관련 안건을 단독으로 심의하기 위해 처음 탄생한 여성특별위원회는 그동안 법률안 제안권 및 의결권, 국정감사·조사권, 예·결산 예비심사권 등 실질적 권한이 없었다. 또 여성부가 발족한 뒤에도 전담 상임위가 없어 정무위원회나 운영위원회에서 여성부에 대한 국정감사를 벌여왔다. 그러나 여성위원회가 탄생함으로써 법률안 제안·의결, 국정감사·조사, 예산 결산 심사 등이 가능하게 됐다. 올 여성부 국감에서 주요 이슈는 호주제와 여성취업, 성폭력 등이었다. 여성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호주제 폐지에 여성부가 지나치게 소극적이라고 추궁했으며, 공무원 채용시 군가산점 제도 역시 즉시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성계는 선진국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안이 주요 이슈로 등장한 현실은 여전히 서글프지만, 그나마 여성위원회가 신설됨으로써 국회에서 여성계의 주장을 공론화할 수 있게 됐다는 평이다.

7. 성매매방지법 국회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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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의원발의됐던 성매매알선등 행위의 처벌 및 방지에 관한 법률안이 철회되고 대신 두 개의 법률안으로 나뉘어 지난 9월 다시 발의됐다. 성매매 피해자가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 이들 성매매 피해자들에 대한 보호 및 성매매방지 정책은 여성의 시각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여성부에서 다루고 성매매 알선행위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실효성 제고를 위해 법무부에서 집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두 개의 법안으로 분리된 것. 국회 계류중인 성매매방지법은 우리 정부에 외국인 성매매 여성의 특별보호와 국제적 성매매 방지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이 법안은 ‘윤락녀’, ‘매춘여성’이라는 기존 용어 대신 ‘성매매된 사람’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성매매된 사람은 ‘피해자’로서 국가가 보호·지원해야 할 대상이며, 성매매 피해를 입은 외국인 여성은 수사를 받거나 형사소송을 하는 동안 강제출국이 미뤄지고, 체류기간에는 내국인과 같은 복지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그러나 여성해방연대 등은 “성매매 피해여성을 범죄자로 처벌하고 외국인 여성에 대한 특별조항이 구체적이지 않은 등 문제점이 많다”고 지적하면서 “피해여성에 대한 처벌조항을 삭제한 상태에서 성매매방지법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8. 월드컵 성공 일등공신 ‘여성참여’ 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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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월드컵은 축구가 남성들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확실하게 깼다. 거리응원이 벌어졌던 어느 곳에서나 붉은 옷을 입고 태극기를 든 채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치고 두 손을 마주했던 여성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월드컵 대회에서의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여성계는 이번 월드컵이 그동안 사회적 약자로서 억압을 받아온 여성들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사회의 구성원들과 함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한다. 수십만 인파로 북적였던 광화문은 단순한 응원장이 아니라 여성들의 억압된 감정을 푸는 ‘해방의 장소’였다는 것. 목이 쉬도록 대한민국을 외쳤던 여성들은 이번 월드컵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데 대한 일등공신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수많은 인파들이 한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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