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법칙에 여성들은 제외된다

나는 남자 선배들과의 술자리를 싫어한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기분이 썩 유쾌하질 않기 때문이다. 어제 종강파티 술자리가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고갈비에 소주라 흥분하며 뛰어갔는데 언제나처럼 기분이 나빠지고 말았다.

참석 인원은 남자 12명, 여자 3명해서 총 15명. 동기들 모임에서 4학년 아줌마들은 찬밥인데 반해 복학생 선배들 사이에서 신입은 신입대로 공주 취급받고 아줌마들은 경력(?)을 인정받아 술자리에 낄 수 있다. 어제도 신입생 두 명이 지겨워질 때쯤이었는지 나는 가자마자 노땅 신분으로 환영을 받았다. 여기저기 환호의 함성과 함께 중앙 테이블, 그것도 가장 나이 많은 복학생 선배들 자리에 안내 받았다. (남자들이 많은 술자리에 가면 자기네들이 알아서 대 선배에게 여자 동기나 후배들을 안내하곤 한다.)

더 웃기는 것은 대 선배들은 또 그렇게 모셔온 여자를 위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꽃들을 피우며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그날도 아니나 다를까, 주제는 그리 유쾌하지 않은 군대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1학년 여자 후배들은 깔깔 웃어줬나 보다. 그에 반해 별 반응 없던 나는 ‘여자는 역시 늙으면 맛이 없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내 경험에 의하면 남자 선배들은 여자후배를 ‘딸’ 혹은 ‘애인/마누라’로 구분한다. 딸로 생각하는 경우에는 귀여워하고 해달라는 것을 다 해주려고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의 짓궂은 장난으로부터 보호해준다. 그러나 어린애 취급을 하면서 중요한 의사결정에서는 제외시킨다. 또 이런 혜택(?)은 ‘자신의 뜻을 거슬리지 않을 때’만 제공한다. 이에 반해 애인/마누라로 생각하는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그 여자 후배를 무시하거나 창피 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단 둘이 있을 때에는 돌변해 자신의 개인적인 고민을 얘기하며 상대방을 아주 중요한 사람인양 대우한다.

내가 가기 전 술자리 분위기가 어땠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여자 후배들이 ‘술자리의 꽃’으로 남자들의 술맛을 더 좋게 하는 데 일조했을 거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내가 술자리에 들어간 후 여자 후배들이 잠시 조용해지자 그곳에 있던 남자들이 동시에 하는 말, “네가 와서 남자들 관심을 모두 빼앗아 갔어. 그래서 질투하는 거야. 저 봐, 갑자기 조용해져서는 말도 안하고 있네.” 그 순간 우리 여자 세 명은 동시에 희롱을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남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여자들끼리 질투를 하며 싸운다’는 남자들의 생각은 도대체 누구로부터 전해 받은 것일까. 그러나 아쉽게도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믿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남성들의 게임법칙이 적용되는 세상에서 여성들은 고달프다. 처음 게임법칙을 정할 때 여성들은 그 자리에서 제외됐다. ‘여자 후배는 남자 선배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적당히 웃어야 하고 화장이 뜨지 않게 신경 써야 한다, 여성들은 남자를 독차지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라는 법칙은 남성들이 만들었다. 그 법칙을 강요하는 남성 우월주의는 여성들에 의해 깨져야 하지 않을까. 고스톱 판에서 정하지 않은 규칙을 적용하는 법 봤는가!

김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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