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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살 때 난 태권도를 동경했다. 같은 반 남학생과 싸우다 그 아이의 발차기에 손가락이 부러지는 일이 있은 후 부터였던 거 같다. 그날 난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워 조용히 울었다. 나와 같은 방향에 살던 친구는 소녀의 몸으로 검은 띠를 매고 도장에 다녔다. 난 그녀에게 도장에 다니고 싶음을 천명하고 우리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그만두고 도장에 다니게 해 줄 것을 종용했다.

“엄마 나 태권도 학원 다닐래…”

이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엄마의 눈초리가 무서워진다.

“시끄러!”

난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엄마에게 허락 받으면 같이 도장에 다니자고 약속했다.

“안녕하세요, 은영이가 같이 도장에 다니자고 해서요. 도장에 여자 애들 많은데 같이 다니게 해주세요.”

“여자가 다리를 찢으면 처녀막이 터진다. 여자가 무슨 운동이니. 태권도학원 다니지 말고 피아노를 배우든지 공부를 해야지.”

엄마는 이렇게 당시 열한 살이었던 나와 내 친구에게 ‘처녀막’이라는 거대담론을 늘어놓으며 나의 친구마저 도장을 그만두게 했다.

시간이 흐르고 성인이 돼 스스로 돈을 벌게 되고 난 후 나는 태권도는 아니지만 검도 도장에 등록했다. 운동신경이나 지구력, 근력은 좀 떨어지지만 남부럽지 않은 유연함으로 준비운동 시간에 관장님을 놀라게 했다. 나이가 든 지금도 내 두 다리는 양옆으로 잘 벌어진다. 상쾌하고 가뿐하다. 처녀막이 찢어지는 느낌이 이럴까?

어렸을 때 운동을 못한 한을 풀어주는 나의 애마가 있다. MTB용 자전거 ‘BC(브랜드이므로 직접 언급을 피하겠다)’다. 기분 내키면 하루 60km도 달린다.

내가 자전거를 탄다고 할 때 기어코 만류하던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거 여자한테 안 좋아. 골반 동맥에 무리가 간단 말이야.”

의대생이었던 그가 아는 의학적 상식은 거기까지였을까? 아님 영화 ‘걸스 온 탑<사진>’에서처럼 자전거가 한 가지 용도만으로 쓰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일까. 아님 그도 오래 전 나의 엄마처럼 내 처녀막을 걱정했던 것일까.

김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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