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jpg

<밀애>를 봤다. 괜찮은 영화였다. 그것은 ‘여성’을 보여주었지만 그에 앞서 여성, 그가 ‘인간’임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인간이란 자신뿐 아니라 타인과 세계와 그리고 그 안의 가치와 편견들에 옭아매져 있는 존재이다. 따라서 한 여성으로서 인간, 즉 자기자신을 추구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는 한걸음 내딛고 나면 결코 되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파괴된다 하더라도.

내가 미흔(여주인공)이 되어 영화를 보았다. 매 상황마다 미흔이 됐던 나는 ‘나쁜 여자’라는 세상의 잣대는 제쳐두고라도 나 스스로에 대한 이중적인 판단에 처하게 됐다. 나의 이런 행위는 과연 사랑이고 나의 아름다운 욕망인가. 아니면 성적 중독인가. 너무나도 참을 수 없는 나의 이 성적욕구들은 나의 육체성을 찾아나가는 것인가, 아니면 탐욕인가. 내가 그(인규)와 맺는 이 계약은 과연 동등한 계약이며 사랑인가. 나는 그와의 사랑(섹스)에서 나의 자유와 욕구를 누린다지만 혹시 나는 인규의 욕구충족을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결국 사랑이었지만)

그러나 혹 그렇다 하더라도 상처를 입는다 하더라도 나는 어쩔 수 없다. 그것까지도 감수하고 나를 찾고자 하며 나를 추구하고 싶다. 내 욕망이 곧 자유이며 ‘나’일 것이다.

인규는 말한다. 너그럽고 착한 사람들이 사랑이 더 많다는 것은 거짓이라고. 오히려 너무나도 약하고 상처받고 모자란 사람들이 사랑 없이는 살 수도 없고, 또 더 끈질기게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그래, 맞아. 난 ‘구멍’이 뚫린 나약한 인간이기에 그를, 그리고 나의 이런 욕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난 ‘경계선’에 처한다. 매번. 너무도 어렵다 선택은. 나의 욕망과 자유, 이 보잘 것 없을지도 모르는 것은 나에게서 ‘전부’를 앗아가고 있다. 더욱 공포스러운 것은 어쩌면 이 욕망조차 허구는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다. 자유는 불안이다. 어쩌면 나의 이런 욕망은 욕망이 아니라 중독에 다름아닌 ‘병균’일 수도 있다. 나의 착각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자유(사랑, 그리고 욕망)를 선택할 것이다. 불안을 선택할 것이고 그리고 고독을 선택할 것이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것들의 교환들로, 나의 소유의 덧셈뺄셈으로 구성된 존재가 아니다. 자유는 질적인 것이므로 나의 자유와 열정이 극에 달하기 전까지 난 이런 것들을 셈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자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은혜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sumatriptan patch http://sumatriptannow.com/patch sumatriptan patch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