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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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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원기 기자>

8일 오후 2시. 인천시 부평역 앞은 썰렁했다. 쌀쌀한 날씨 탓일까. ‘한나라 이회창 기호1번, 이회창을 믿어요.’ 경쾌한 개사곡만이 주변을 울렸다. 근처에서 어묵을 팔던 한 젊은 여성은 “선거에 관심 없다. 당연히 특별히 지지하는 곳도 없다. 뭘 그런 걸 다 묻느냐”며 얼른 계산하고 가라는 눈치다.

어느새 노무현 후보 운동원들이 유세 준비를 마쳤다. 갑자기 선거유세차 주변에서 실랑이가 일었다. 모범택시 기사 박아무개(42)씨는 “부평은 주차난이 심한 편이라 자리싸움이 일어난다”면서도 “노무현을 지지한다”고 귀띔했다.

유세 주최자인 민주당 정인상 부평갑선대위 부위원장은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혈기가 왕성한 것 같다”며 머쓱해 했다. “부평은 전통적으로 야당이 우세했던 지역이다. 지난 대선·총선에서 모두 민주당이 우세했다. 사람들도 될 사람을 뽑아주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노 후보의 승리를 자신한다” 정씨의 자신감이다.

실제 민주당은 이 곳에서 승리를 점치고 있지만 변수가 없는 건 아니다. 우선 박상규 의원(부평갑)의 민주당 탈당이 감표 요인이고, 대우자동차 등 대규모 공단 노동자들의 권영길 지지세를 무시할 수 없는 탓이다.

40대 이상은 한나라당 지지계층

민주노동당 부평을지구당 이병길 사무국장은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부평에서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높은 득표를 했다”며 “특히 텔레비전 토론 뒤 지지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으며 선거운동에 대우자동차를 비롯한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고 설명했다.

오후가 되자 진눈깨비는 함박눈으로 돌변, 우산을 써야 했다. 부개역 앞에서 계란빵을 팔고 있는 푸근한 인상의 아주머니 이아무개(45)씨. “내가 뭐 아는 게 있어야죠”라며 지지하는 후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지방선거 할 때는 유세하는 사람들이 많더니만 대통령 선거인데도 운동원들을 볼 수가 없다. 너무 조용하다”는 이씨의 말.

한나라당 부평갑지구당 이익성 국장은 “부평갑 지역구에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허락된 인원이 12명 밖에 안 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 선거는 기존 선거와는 분위기가 달라서 민심을 읽기가 어렵다. 전통적으로 야당이 강한 지역이지만 한나라당은 여당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어 낡은 정치를 청산해야 한다는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이 되레 한나라당 쪽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 이 국장의 선거판세 분석이다.

이 국장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40대 이상이 한나라당의 지지계층”이라며 “이 계층은 실제로 투표에 임하는 실수요자들과 일치하며, 부평은 전국에서 투표율이 낮기로 유명한만큼 투표에 참여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후 4시께 텅 빈 마을버스 기사 김 아무개(48)씨를 버스 안에서 만났다. “백화점에 수영장, 음식점이 다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개인 빚은 늘어간다는데 놀고 먹는 사람들은 넘치니 교통은 교통대로 막히고, 참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운전기사답게 대통령한테 바라는 첫 번째 문제는 교통난 해소란다. “버스가 전용차선을 제대로 다닐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 서민들이 대중교통을 잘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김씨는 그러나 지지후보를 묻자, “요새 누가 그런 거 말하냐”며 답변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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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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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마이뉴스 이종호>

서민 화두 ‘경제회생'

저녁 6시께 날이 저물었다. 채소가게에 모여있던 네 명의 아주머니들. “박정희 같은 사람 나오면 당장 찍겠다”고 큰소리로 말한다. “새마을 운동 같은 거 해낼 후보 어디 없냐”고 묻는다. 곁에서 그들의 대화를 들어봤다.

“TV도 잘 안 봐서 대통령 후보들이 뭔 이야기를 하는지 잘 몰라요.” 한 아주머니의 말에 “그래도 볼 건 다 보지. 마음속에 지지하는 사람이야 다 있지 않겠냐. 말을 안 해서 그렇지”라며 옆에서 조용히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대답한다. 갑자기 열이 오른 한 아주머니, “IMF며 가계빛이며 다 이놈의 정부가 경제를 말아먹었기 때문이다. 신문에 내라고 하는 소리”라며 열변을 토했다.

김치영업소를 하는 김영수(48)씨가 말을 잘랐다. “젊고 패기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나라 일으킬 사람은 노무현뿐이다. 병역비리부터 여러가지로 이회창은 잘못된 게 많은 사람이다.” 또다른 이가 다시 딴죽을 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

채소가게를 건너 한 반찬가게 안쪽에서 아저씨들이 김치전에 소주잔을 들고 있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한 노인(65). “대통령의 제1조건은 서민을 위하는 자세”라며 “나이 든 사람들은 나라를 발전시킬 지도자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회창은 반듯하고 자기관리 잘하는 사람으로, 노무현은 좀 흐릿한 느낌을 주는 사람으로 보인다”고 했다가 이번엔 “군인 시절 향수 때문인지 장세동씨도 왠지 믿음이 간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노인은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며 주위 사람들한테 면박을 당했다.

부평시장을 조금 벗어나면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번화가가 나온다. 한 주막술집을 들어가 봤다. 세 여성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정몽준을 지지했는데 단일화가 돼서 너무 속상했어요. 지금요? 당연히 노무현이죠. 이회창은 안돼요.” 20대 후반 박씨의 말이다.

한 대학생은 “누가 돼든지 관심 없어요. 선거 날 아침에 포스터 보고 결정하면 되겠죠”라며 무관심의 극치를 드러낸다. 민망했는지 김보은(23)씨가 덧붙인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도 뒤탈이 없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조혜원 기자nanca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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