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대선 민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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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1위로 등극시켜 ‘극적인 이변’을 연출한 광주시민들은 자부심이 대단하다. 연고까지 안고 있어 당연히 1위를 할 것으로 예상됐던 ‘DJ 후계자’ 한화갑 후보와 대세론을 업고 있었던 이인제 후보 대신 노무현 후보를 선택, 결과적으로 노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하는 결과를 연출함으로써 민주당이나 5명의 후보, 그리고 취재기자들의 예상을 보기좋게 빗나가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선 때의 지지율이 지금까지 이어져 노무현 후보는 광주·전남 지역에서 이회창 후보를 압도적인 차이로 따돌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김대중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대결했던 지난 15대 대선 때와는 사뭇 다른 양상도 눈에 띄고 있어 주목된다. 특정 당과 후보를 향한 결속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사실이 그렇다. 지난 8, 9일 광주의 민심 속으로 들어가봤다.<사진·오마이뉴스 권우성>

각종 언론사의 분석대로 광주·전남 지역은 노무현 후보가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노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여론조사 공표금지 직전인 지난달 28일 마지막으로 한 지역여론 조사결과(82.5%)보다도 더욱 높아졌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며 “득표율 높이기보다는 투표율 높이기에 힘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나라당도 광주·전남에서만큼은 크게 힘을 쏟지 않고 있다”며 “지지율을 더욱 높이기 위해 투표율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투표하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15대 대선 때의 투표율은 광주가 89.9%, 전남이 87.3%였다.

“노무현 찍어야지”

노무현 후보의 인기는 젊은층에서 두드러진 현상이다.

안성후(21)씨는 “젊고 개혁적이라는 점에서 노무현 후보를 찍을 것”이라며 “대다수 대학생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채수원(20)씨는 “적어도 학생들 사이에서는 노무현 지지가 대세인 것 같다”며 자신 역시 “경선에서 노 후보를 선택한 광주·전남의 자존심을 지키고 보수우익 세력인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서라도 노무현 후보를 택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남대와 조선대 등에서 만난 학생들은 노 후보를 선택한 이유로 ‘개혁적이기 때문에’‘젊어서’‘보수적인 한나라당이 싫어서’ 등을 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당선 가능성만으로 투표할 때는 지났다며 권영길 후보를 미는 학생들도 많았다. 고재대(25)씨는 “노 후보의 정직성과 개혁성을 나름대로 평가하지만 이미 그 한계를 드러낸 민주당에서 과연 그 공약을 제대로 펴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지역감정과 부패 등에서 자유로운 민노당의 권영길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젊은층이 노무현 후보에 대한 애정을 공공연히 표현하고 있는 데 반해 40대 이상 유권자들은 조심스럽다.

양동시장에서 청과상을 운영하는 박말자(48)씨는 “뭘 그런 걸 물어보느냐”며 대답을 한사코 회피했다. 박씨는 “그럼 투표하지 않을 거냐”고 묻는 기자에게 “하긴 해야지, 노무현 찍어야지”하고 말했다.

노무현 후보를 찍겠다고 말한 택시 운전기사 박수태(54)씨는 “왜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왜? 잡아갈려구 그래?”라면서, “서민들의 마음은 서민 후보가 더 잘 알 것 같아서 노 후보를 찍겠다는 것일 뿐 한나라당이 무조건 미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광주·전남 지역에서는 노무현 후보의 일방적인 우세가 점쳐진다. 그러나 그 결속력은 예전만 못하다.

나철환(64)씨는 “김대중이 빠진 후 선거에 김이 빠졌다”고 분위기를 전한 후 “원래는 정몽준 후보를 찍으려고 했는데 단일화가 돼서 노무현을 찍을려고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 대선 때와는 달리 유권자들의 결속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체감

하고 있다”며 “아마도 17대 대선 때는 지역감정에 기반한 선거운동은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또 지난 6일 도청 앞에서 4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 소파개정 촉구집회에서 유권자들은 대통령 후보와 현 정권에게 ‘자존심 지키는’ 후보와 정권이 되기를 소리높여 외쳤다.

도청 앞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대선을 앞두고 소파개정을 요구하는 평화적인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며 “국민들의 요구를 받아 미국 등 강국에 무조건 머리 조아리는 후보말고 소신있게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강조해 광주시민들의 마음을 반영했다.

“솥뚜껑 보고 놀란 가슴” 지역감정 경계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광주·전남 방문을 하루 앞둔 지난 5일 민주당 전남도선대본부와 전남지방경찰청은 일순 긴장감에 휩싸였다.

이 후보의 유세장에 계란이 투척될 것이라는 괴소문이 나돌았던 것. 경찰 관계자는 “폭력사태가 발생해 지긋지긋한 지역감정 싸움에 불씨를 댕길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노 후보 때보다도 훨씬 긴장했던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6일 이회창 후보의 유세장인 광주공원 주변에는 경찰 150여 명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삼엄한 경계를 폈다. 다행히 이 회창 후보의 유세장에서 불미스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같은 사례는 광주·전남 지역민들이 얼마나 지역감정이라는 문제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광주·전남 지역민들이 지역감정이라는 보이지 않는 적에게 갖고 있는 두려움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지난 5일 밤 MBC 100분 토론에서 이회창 후보의 지지자로 나선 강혜련 이화여대 교수가 “호남에서 노 후보 지지가 97%에 이른다”며 “호남에서의 이런 지지는 마치 이라크에서 후세인을 지지하는 것과 같은 몽매한 태도다”는 내용의 발언을 한 바 있다. 객관적 자료에 근거한 것도 아닌 ‘막말’이었고 ‘경상도도 표를 몰아줘야 한다’는 속셈이 담긴 악의적인 발언이었지만 상당수 광주·전남 지역민들은 화를 내지 않았다.

<전남매일> 정치부 박재일 기자는 “개인적으로는 생방송 토론회에서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교수가 해서는 안될 발언을 했다는 사실에 개탄을 금치 못했다”고 전제한 후 “주위 사람들 중 상당수가 근거없는 발언이 미치게 될 파장을 더 우려하는 모습을 보여 놀랐다”고 말했다.

박 기자는 “아마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솥뚜껑을 보고도 놀란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는 광주·전남 지역민들의 지역감정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언론도 조심스럽긴 마찬가지

언론도 지역감정 문제에 조심스럽긴 마찬가지다.

다음은 지난달 11일 <광주일보>에 게재된 ‘또 지역감정 불씨 지필 것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이다. ‘특히 한나라당은 노무현 후보의 호남 지지율이 90% 이상 치솟고 있는 상황에서 부산에서마저도 50%를 가져가려 하는데 이렇게 되면 97년 대선실패의 우(愚)를 반복하게 된다면서 부산 유권자들의 전폭 지지를 당부, 지역정서를 부추겼다.

노 후보도 부산 유세에서 자신이 당선되면 김대중 호남정권이 아니라 노무현 정권이라고 강조한 뒤 고향에 온 것이 실감난다며 지역정서를 자극했다.’

같은 날 <전남일보> 역시 ‘지역감정 조장 언제까지’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한나라당에 비해 강도는 덜하지만 민주당도 어느 정도 지역감정에 기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영남권 표심을 공략하고 있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29일 포항 죽도시장 유세에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김대중 정권이 아니라 노무현 정권”이라며 지역정서에 호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광주일보 기현호 기자는 “유력 후보들이 모두 출생지와 연고가 다른 상황이 자연스럽게 상대측의 지역감정 의존 선거전략을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빚고 있는 데 안도감을 느끼지만 지역감정이 언제 막판 변수로 불거질지 모르기 때문에 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아령 기자arshi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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