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가 너희를 대신해 한을 풀어주마”

~7-1.jpg

◀신현수(왼쪽)씨와 심수보씨. <사진·민원기 기자>

“열 네 번째 생일 떡도 못 먹이고 먼저 보낸 내 딸…”

아버지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그렇다고 눈물도 흘리지 못한다. 미군 장갑차에 너무도 허무하게 딸들을 보내버린 아버지 신현수(47)씨와 심수보(47)씨는 항의서한조차 미 대사관에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치겠어. 내가…. 자식을 먼저 보낸 아비가 무슨 말로 표현하겠어.”

기자는 취재하는 것 마저 송구스러웠다. ‘가해자 없는’딸의 죽음 앞에 통곡도 할 수 없고 눈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조차 떨어뜨릴 수 없는 아버지들에게 더 이상 무엇을 말하랴. 미군장갑차에 압사한 여중생 심미선양과 신효순양의 아버지 신씨와 심씨는 미처 피지 못하고 져버린 딸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심씨는 “뭐가 기쁜 일이고 슬픈 일인지 아무 감정이 없다”며 “이번에 수능을 본 아들놈에게는 아예 신경쓰지 못했다”고 한숨을 쉰다. 막내딸을 보내고 가슴으로 울던 지난 5개월은 그 누가 짐작을 할 수 있었겠는가.

“부시가 사과를 했다고 하는데 나는 들은 바 없고 사람 둘씩이나 죽여놓고‘미안하다’면 다 해결보는 나라인가 보지? 미국은? 무죄판결 났을 때 드럼통을 들고 가서 불이라도 내고 싶었던 마음을 얼마나 참았는데…”

월드컵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지난 6월 14일은 신씨의 둘째딸 효순이의 생일이었다. 친구와 생일잔치를 같이 하겠다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나선 딸의 그 길이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저승길이 될줄은 차마 몰랐다. 그래서 아직도 그 일은 실감이 나질 않는다.

“‘대한민국’응원구호소리가 나에게는 못이 되어 박힌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축구공에 쏠려 있을 때 내 딸은 50톤 무게의 장갑차에 눌려 ‘엄마’하는 소리한번 못해보고 그대로…” 그러나 그 장갑차의 무게는 이제 ‘소파개정’의 절대절명의 숙제가 돼 서울 한복판에서 수만의 촛불이 되어 흔들거리고 있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만 보면 내새끼같아. 너무 불안해. 언제 어디서 그런 일이 또 일어날지 모를 일이니까.”

집을 새로 지으면 혼자 쓸 수 있는 방을 만들어 주겠다던 딸과의 약속은 ‘재판을 다시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래야 제 넋이라도 떠돌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생전에 마련해주지 못한 딸의 방을 아버지는 가보지 못한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을 딸에게 편히 잠들 수 있는 영혼의 안식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내 딸을 죽인 살인자, 무덤 앞에서 꼭 속죄케 하리라’다짐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이들은 결코 외롭지 않다. 미선이와 효순이의 넋을 위로하는 촛불이 한반도 전역을 뜨겁게 달구고 있기 때문이다.

14일을 ‘주권회복의 날’로 정한 시민들은 소파개정을 통해 미군들을 반드시 한국법정에 세워 ‘미선이, 효순이의 한을 풀겠다’고 선포했다. 또 올해 마지막날인 31일은 전국 100여 곳에서 동시에 집회를 진행키로 했다. 그러나 두 여중생의 아버지들은 오늘도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딸들을 향해 외치고 있다.

“내 딸아, 아빠는 너를 잊지 않고 가슴에 품었단다. 너를 아프게 짓밞은 이 땅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는 아비가 내 딸을 대신해서 너의 한을 풀어주마”고.

신아령 기자arshin@womennews.co.kr

sumatriptan patch http://sumatriptannow.com/patch sumatriptan patch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