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이 20여 일도 채 남지 않았다. 여느 해 같으면 거리마다 각종 버전으로 편집된 캐롤들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띄우고 있을 시기인데 대선 때문인지 경기침체 탓인지 올 12월은 썰렁하기만 하다. 또다시 한 해를 보내야 한다는 쓸쓸함으로 처진 어깨가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춥게 만든다. 우리 마음의 온도계만은 포인세티아(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붉은 꽃)처럼 따뜻하게 불태워보자. 그리움, 간절함, 소망, 사랑이 담겨있는 크리스마스 영화가 당신의 붉은 유년의 꿈을 되살려줄지도 모르니 말이다. <편집자 주>

그에 대한 불신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보이지 않는 존재, 산타클로스. 그의 편안하고 너그러운 웃음 앞에서 어떤 미움도 사라지게 만들고 마는 마법사. 그의 존재는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시험당하고 의심받는다.

크리스마스 영화의 대명사처럼 된 <34번가의 기적>에서 산타 크리스 크링클은 영화 속에서 실제 존재하는 산타클로스다. 주소가 북극이라고 주장하는 늙은 배불뚝이 할아버지를 이용해 백화점 매출을 올리려는 도라는 사랑이나 상상 따위는 믿지 않는 극히 현실적인 직업여성. 그런 그녀는 여섯 살난 딸 수잔에게도 현실만을 강조한다. 현실주의적인 가치관과 무미건조한 도라의 생활방식에 끼어든 크리스는 진정한 사랑은 믿음으로부터 시작됨을 깨우쳐준다. 산타를 믿는 것은 곧 사랑을 믿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는 약속과 시련의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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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는 역시 연인들에게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호다. 그러나 고백의 순간을 맞이하기까지 많은 시간의 망설임과 방해의 벽을 넘어야 한다.

모든 연인들의 러브스토리가 된 <러브 어페어>에는 이런 엇갈린 약속과 시련의 순간이 안타깝게 그려져 있다. 워렌 비티와 아네트 베닝의 클래식한 사랑의 모습에서 사랑에도 품위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약혼녀가 있는 플레이보이와 미녀와의 만남,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풋볼 쿼터백 스타 미아크 갬브릴은 유명한 토크쇼 진행자와 약혼한 사이, 우연히 비행기에서 만난 미모의 테리 맥켄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들이 탄 비행기는 갑작스런 엔진고장으로 작은 섬에 비상착륙하게 된다. 둘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서로의 감정이 변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고 3개월 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지만 테리는 약속 장소로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걷지 못하게 되고 둘은 만나지 못하게 된다. 드디어 크리스마스 날. 테리를 잊지 못해 그녀를 찾은 마이크는 비로소 테리의 진실을 알게 된다. 진실한 사랑은 결국 자기희생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영화다.

인생의 반전이 준비돼 있는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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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맨>의 주인공 잭 캠벨은 월 스트리트의 잘 나가는 투자 전문 벤처기업가다. 오직 성공만을 위해 달려온 그는 크리스마스 전날 복권을 바꾸러 갔다가 인생이 뒤바뀌는 사고를 당한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 캐롤 소리에 잠이 깬 잭은 자신이 13년 전 약속을 어기고 떠났던 케이트와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녀를 선택했을 때의 인생을 경험하게 된다. 마치 몇 년 전 코미디에서 유행했던 두 가지 인생살이와 비슷한 소재다. 화려한 뉴욕과는 동떨어진 뉴저지의 소시민적 삶에 적응하기 어려운 잭은 그러나 케이트를 진정 사랑하게 되면서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참다운 가족애를 느끼게 된다.

새로 쓴 크리스마스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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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영화의 이단자 팀 버튼이 제작한 영화 <크리스마스 악몽>은 본격 크리스마스 영화의 틀을 과감히 파괴한 애니메이션이자 ‘새로 쓴 크리스마스 전설’이다. 악몽이라는 제목 그대로 크리스마스 이미지를 대표하는 따뜻하고 사랑스런 이미지는 뒤로 밀려나고 기괴하고 흉물스런 괴물들이 주인공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오페라나 뮤지컬을 능가하는 더없이 아름다운 노래들과 음악이 전편을 흐른다. 모든 아이러니와 패러디를 비벼놓은 듯한 팀 버튼식 크리스마스에는 어둡고 음침하며 무시무시한 귀신들의 할로윈 마을이 놓여있다.

매년 할로윈 축제를 위해 고민하는 해골 귀신 잭(또 잭이다)은 똑같은 할로윈 축제에 흥미를 잃어가고 그의 가슴은 공허함만이 가득하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나선 잭은 우연히 크리스마스 마을로 가게 되고, 그곳의 흥겹고 따스한 분위기에 반해 할로윈 마을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기로 한다. 잭의 지시대로 귀신들은 샌디칼날손(산타클로스)을 납치하고 잭이 산타를 대신하여 어린이들에게 거미, 뱀, 해골 등의 선물을 나누어주어 인간 마을의 크리스마스는 엉망이 되고 만다. 헛된 호기심은 재앙의 시초라는 박사의 말처럼 잭의 선물이 인간마을을 공포와 혼란에 빠뜨릴 뿐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고, 잭은 다시 자기 자리에서 사랑과 행복을 되찾는다.

지금 12월 극장가는 초대형 블록버스터로 포장된 화려한 볼거리의 판타지 영화들이 우리의 오감을 강력히 자극한다. 그러나 12월만큼은 멀미나는 속도에서 잠깐 내려 지나간 것들의 흔적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최고의 식탁은 아니더라도 따뜻한 불빛 아래서 일상을 함께 해 온 가족들과 정을 나누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다.

윤혜숙 객원기자 heasoo21@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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