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여성이 ‘캐스팅보트’… 각 후보 여성조직 총동원

@10-1.jpg

▶오는 19일 열리는 제16대 대통령 선거의 당락을 결정할 과반수의 여성표를 잡기 위해 각 당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대선 유세 첫날인 지난달 27일 오후 명동에서 열린 한 대선후보 유세장. <사진·이기태>

이회창 “어차피 조직싸움, 대세다”

노무현 “PK서 35% 얻으면 이긴다”

“40대 여성을 잡아라.”

제16대 대통령 선거전이 중반으로 치달으면서 주요 대선 후보들이‘여심잡기’에 불꽃튀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여성 유권자가 전체(3501만여명)의 절반이 넘는 1781만여 명(50.9%)으로 남성보다도 60만여명 많아 당락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직 지지후보를 정하지 못한 유권자가 760만여 명(전체의 21%)에 달하는 40대에 몰려있는 것으로 추정되자 각 후보 진영은 이들을 공략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 40대는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은 뒤 80∼90년대 민주화 과정을 몸으로 겪거나 지켜보면서 정신적 갈등을 겪은 세대로, 이른바 ‘낀 세대’로 불리기도 한다.

40대 여성 유권자는 375만명(전체의 10%)으로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이회창 후보를 39만표차로 누른 것을 감안할 때 무시할 수 없는‘세력’이다. 각 대선 후보들은 이들 40대 여성 유권자를 핵심공략 대상으로 삼고 공식 유세는 물론 치열한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회창 후보가 지난달 여성정책 TV 토론회와 잇따른 방송토론에서 여성표를 다소 잃었다는 당 안팎의 지적에 따라 여성표 관리에 비상이 걸린 상태. 당내 미디어대책반을 강화해 여성 여론을 끌어들이는 한편, 전국의 관련조직을 총동원해 여심잡기에 나서고 있다.

민주당은 노무현 후보가 단일화 뒤 번지고 있는 ‘노풍’을 잘 유지하고 있고, 여성 유권자들에게도 호감을 넓혀가고 있다는 판단이다. 방송토론과 인터넷 등 미디어를 최대한 활용해 한나라당한테 밀리는 ‘조직력’을 보완한다는 계획이다.

한나라, 자신감 속 위기감 확대

▲한나라당= 한 당직자는 “텔레비전 토론회 뒤 20∼30대 젊은층과 확고부동한 지지층이라 여겼던 중장년 여성 지지자들이 흔들리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오고 있다”며 “일시적인 노풍 현상으로 보지만 방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대세론’이 위협받고 있다는 위기감이 당내에도 퍼져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현장에서 뛰고 있는 여성의원들 쪽에서도 비슷한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지원유세를 위해 대구·경북지역에 ‘급파’된 한 의원쪽 관계자는 “공식 비공식 통로를 통해 이 후보를 심정적으로 지지했던 여성표가 많이 떨어지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오고 있다”며 “지역에선 비상이 걸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여의도 주변 정보 분석가들도 여성은 물론 전체 유권자들의 표심이 미세한 차이긴 하지만 노 후보쪽으로 몰리고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가에도 이같은 정세분석이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

겉으로는 느긋하던 중앙당도 최근 배우 김을동씨를 영입하고, 여성조직을 풀가동 하는 등 중장년 여성표를 직접 챙기고 있다. 여성국 우윤명 부국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역 조직들이 차분히 대선을 준비해온만큼 이변은 없을 것”이라며 “기존 당원들과 입당 단체들이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들어간 상태”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우선 그간 활동을 자제해 왔던 이 후보 부인 한인옥씨를 여성표 잡기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한씨는 1일 이 후보 부산유세에 동행한 것을 시작으로 본지 부부합동 인터뷰, 4일 경남 양산 통도사 법회 참가 등 독자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꽃예술협회 등 40여 개 입당 여성직능단체들도 지원사격에 나서고 있다. 중앙당이 이들 단체 관계자들과 일일이 간담회를 갖고, 단체 회원들을 중심으로 연고자 추천, 이메일 추천 방식으로 세를 모으고 있다. 각 단체를 돌며 여성공약설명회를 열고, 특표활동 요령 등을 숙지시키고 있다.

전국의 지구당과 지구당이 관리하는 여성 기간조직들도 움직이고 있다. 중앙당 여성국이 중심이 돼 지방을 돌며 공약설명회를 열고, 관련 기간조직의 선거대응 상황을 점검하고 독려한다는 계획이다. 한나라당은 또 ‘여성 사이버 활동’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젊은 여성들을 상대로 여고동창 찾기 이메일을 보낸다거나,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전화로 지지를 호소하는 방식이다.

한나라당은 이같은 본격 선거운동을 시작한 뒤 자체 여론조사에서 40∼50대는 물론 20∼30대 여성들까지 이 후보 지지로 돌아서고 있다는 판단이다. 최근 여성국에선 ‘진인사대천명’이란 말이 ‘대세론’을 대신해 돌고 있다.

한나라당은 그러나 여성표 잡기에 나서면서 전형적인 ‘네거티브 선거전술’을 쓰고 있어 시대를 거스르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11월말 노 후보의 수필집 내용을 빌미로 ‘여성관이 의심된다’는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는 것. 여성국은 문제가 된 노 후보의 수필집을 일부 발췌, 복사본 소책자로 만들어 뿌리기도 했다.

▲민주당= 이번 대선에서 최대의 격전지로 꼽히고 있는 PK(부산·경남)에서 노풍을 계속 몰아간다는 방침이다. 공식 선거운동 첫 방문지로 부산을 택한 노 후보는 현지에서 상당한 바람을 일으켰다는 반응이다.

한나라당쪽에서도 ‘이회창 열기가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실제로 이 후보는 노 후보가 부산을 다녀가면 바로 부산으로 달려가 ‘진화’하고 있다. 이 후보 스스로도 “노풍이 이는 곳이 있으면 바로 달려가 불을 끈다”고 말하고 있다.

노 후보 부인 권양숙씨는 한인옥씨와 달리 선거전에 직접 뛰어들어 여성표를 관리하고 있다. 권씨는 1일 거리유세를 시작으로 대전·부산 등을 도는 강행군을 매일 하고 있다. 5일엔 마산·창원에서 노 후보 지지를 호소했다.

권씨는 마산어시장, 부산진시장, 정릉시장 등 재래시장과 서민 밀집지역을 주로 다니면서 노 후보의 서민대통령 이미지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직장 여성 등 전문직 종사자와 대한노인회·여성유권자연맹 등 취약계층도 함께 맡고 있다.

권씨가 PK에 집중하는 것은 최근 이 지역에서 노 후보 지지율이 30%를 넘어서고 있다는 자체 조사에 따른 것. 민주당이 PK에서 20%이상 지지를 얻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만큼 30%대의 지지율은 놀랄만한 수치다.

유승희 여성국장은 “최대 부동층인 40대 여성을 집중공략, 선거전 종반에 부산 경남에서 35%만 얻으면 노 후보가 반드시 이긴다”며 “조직력이 상대보다 취약한 만큼 후보 부인도 직접 현장을 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발족한 ‘희망어머니유세단’이 권씨의 러닝메이트 격으로 뛰면서 취약층인 40대 여성을 공략하고 있다. 권씨와 희망유세단이 사실상 여성표 몰이를 전담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나라당에 뒤지는 조직력을 ‘몸으로 뛰어’막고 노풍을 선거일까지 유지하겠다는 전술이다.

지역에선 주부통신원이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29일 주부통신원 지역본부장단 회의를 연 뒤 4일부터 권역별로 여성표 잡기에 나서고 있다. 통신원들은 선거운동 지침을 숙지한 뒤 현지에서 일일이 유권자들을 만나 1대1 운동을 벌인다는 방침이다. 선거일까지 날마다 지역본부 회의를 잡아 일일점검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들이 뛰고 있는 현장엔 이 후보쪽과 달리 청중이 많이 모이지는 않는다는 평이지만, ‘자발적인’ 젊은이와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경남 선대위 발족식엔 예상 인원을 500명으로 잡았다가 2500여명이 몰려와 즐거운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민주, 상승세 타고 총력전

▲민주노동당=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지세를 넓혀가고 있다. 당선보다 득표율 쪽으로 옮겨가는 분위기. 당 안팎에선 3일 텔레비전 합동토론 뒤 권 후보를 지지하는 여성들이 크게 늘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전태일 열사 어머니 이소선 여사, 심재옥 서울시 의원, 작가 공선옥씨 등 당내 인사와 여성계 인사 7000여명이 4일 권영길 지지선언을 했다. 이들은 ▲무상 보육·교육 ▲신자유주의 철폐 ▲미국 반대 등을 권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로 꼽았다.

최근 꾸려진 여성유세단(공동단장 윤혜숙·김원정)은 현장 유세를 맡고 있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와 자주여성회, 각 대학 총여학생회, 중앙당 여성위원회가 함께 선거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이들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와 간담회를 갖고, 여성사업장 등을 찾아가 진보진영 후보의 세력 확대를 역설할 방침이다. 주요 지하철역, 대형 할인점과 백화점을 위주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기타 후보= ‘사회주의 대통령’을 기치로 내건 사회당 김영규(기호5) 후보는 호주제 즉각 폐지(1인1적제), 공적영역 여성 50% 할당제 의무화 등 혁신적인 공약을 내놓고, 사회주의 이념의 대중화를 꾀하고 있다. 가사노동과 육아비용을 전액 국가가 책임지고, 성폭력을 엄하게 처벌하는 등의 공약도 내놓은 상태.

무소속 장세동 후보(기호7)는 최근 대구에서 일부 유권자들의 호응을 얻어 고무된 눈치라는 전언. 국태민안호국당(기호6) 김길수 후보는 동안거(겨울철 칩거 수행)가 끝나는 6일 뒤에나 공약을 발표할 예정이다.

배영환 기자ddarijoa@womennews.co.kr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