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인동 47번지 이회창 후보의 집은 2층 벽돌양옥이었는데, 한옥 기와집같은 정취가 났다. 구기동 ‘호화빌라’ 때문에 겪은 고초 탓인지, 집도 비좁고 집 안에도 별스런 치장은 없었다. 2일 낮 3시 30분께 들어선 1층 접견실은 보좌진과 취재진들로 북적였다. 방 3개 가운데 2개를 접견실, 나머지를 보좌진들이 쓰니 집 한 층을 객들에게 모두 내준 셈이었다.

3시 45분께 이 후보 부인 한인옥씨가 옥색 한복 차림으로 내려왔다. 하루전 이 후보와 ‘격전지’ 부산을 돈 뒤, 이날 아침 상경한 참이었다. 방송사 인터뷰도 2개나 했다. 피곤한 기색은 없어 보였다. 본지 김경혜 부국장이 그를 먼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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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원기 기자>

- 매우 바쁘신 걸로 압니다. 대통령 부인이 되면 가장 먼저 하시고 싶은 일이 뭔가요.

“우선은 잠깐이라도 쉬고 싶어요.(웃음) 5년 전에 한 번 해봤지만, 너무 힘든 일상의 연속이거든요.”

- 부산을 다녀오셨는데 반응이 어땠습니까.

“참 좋았어요. 부산 지역민들이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어요.”

- 지원유세도 좀 하셨습니까.

“제가 나설 일이 있겠나요? 그냥 돕는 정도였죠.”

(3시 50분께 이회창 후보가 예상보다 빨리 내려왔다.)

- 얼마전 여성계가 주최한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고전하신 것으로 압니다.

“잘 못한 것으로 소문이 났군요.(웃음) 말만 잘 한다고 다 잘 하는 건 아니지요. 여성문제는 정부가 시혜를 베푸는 게 아니라 양성평등을 위해 각계의 노력으로 풀어가야 합니다. 열심히 했습니다.”

- 대통령이 되시면 가장 먼저 하고자 하는 일은 무엇인지요.

“제일 중요한 것은 국가의 기본 틀을 잡는 일입니다.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 장래를 예측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죠. 깨끗하고 신뢰받는 정부라야 국정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서민 경제를 활성화해 국민통합과 화해를 이루는 일도 중요합니다.”

- 이유가 무엇입니까.

“임기가 다 되신 김대중 대통령을 언급하고 싶진 않지만, 그 분이 가장 강조했던 동서화해는 여태 안됐습니다. 되레 더 심화됐다고 봐요. 소수 정권이 특정기반 위에서 다수를 지배하려니 잘 안된 것입니다. 특히 인사에선 신뢰를 많이 잃었어요. 이런 것을 바로 세우자는 얘깁니다.”

- 특정 기반을 거론하셔서 드리는 말씀인데, 일정을 바꿔서 황급히 부산에 다녀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후보 자신도 그쪽 기반에 의존하기 때문은 아닌가요.

“사실 급해서 갔습니다.(웃음) 노무현 후보가 부산에서 바람을 일으킨다고 해서 급히 갔지요. 가서 불을 끄고 왔습니다.(웃음)”

-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사건 때문에 국민의 분노가 큽니다.

“후보 가운데 가장 실질적이고 강력한 경고를 보낸 게 바로 접니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국익입니다.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는 일이지요. 한미주둔군지위협정(소파)은 당연히 개정을 요구해야 합니다.”

- 어떤 경고를 보내셨습니까.

“우리 한나라당이 사과를 요구한 다음날 부시 대통령이 사과 뜻을 밝혔습니다. 이렇게 실질적으로 접근합니다.”

- 미군 쪽의 무죄 평결 무효화를 요구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재판이 부당하다는 의견을 보냈습니다.”

- 부드러운 화제로 돌려보겠습니다. 왜 꼭 대통령이 되시고자 하는지... 혹 어릴 적 꿈이 대통령이셨습니까.

“어릴 땐 아니었죠. 그건 후보 등록할 때 꾼 꿈입니다.(웃음) 농담입니다. 제가 늘 추구하는 가치를 지키겠다는 굳은 기약 때문에 대통령에 나온 것입니다. 원칙이 지켜지고 정상적인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죠. 정치권에 와서도 개인의 존엄을 지키는 공동체를 만들려는 신념과 의지를 지켜왔습니다.”

- 한 여사님께는 잘 해 주시는지요.

“아니라고 합디까?(웃음)”

- 남편으로서 이 후보는 어떤 분이신가요?

한 여사= “처음 만났을 때 외모가 맘에 들었어요. 속도 좋았고요. 키가 작은 게 좀 아쉬웠지만...(웃음)

- 두 분께서 손 한 번 잡아주시죠.

(사진 촬영을 위해 이 후보 부부가 손을 맞잡았다. 한 여사가 부끄럼을 많이 타자, 이 후보는 “수십 년을 바라본 사인데...”라며 웃었다.)

한 여사= “저도 <여성신문> 팬입니다. 여성들을 이해하고 돕겠습니다. 이런 뜻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빡빡한 일정 탓에 두 사람은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자리를 떴다. 다음날 있을 텔레비전 토론회 등 일정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아래 인터뷰는 이 후보 부부를 만나기 전 미리 마친 서면 질의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 노무현 후보가 단일후보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대세론’에 지장이 없을까요.

“단일후보라고 해서 선거전략이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과반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이 나올 수 있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단, 후보단일화의 동기와 과정, 내용이 5년전 디제이와 제이피 두 분간의 권력나눠먹기와 다를 것이 없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분명히 알리고자 합니다.”

- 이 후보께선 합동토론을 사실상 거부해 오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거부한 게 아닙니다. 몇 달째 민주당은 재신임이다, 재경선이다 해서 후보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가 계속됐지 않습니까. 후보가 유동적인 상황에서 합동토론회를 하는 건 의미가 없지요. ”

- 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대북 화해협력과 포용정책은 계속돼야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화해협력을 이루느냐죠. 저자세로 선심이나 쓴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교류협력은 물론 당연하지만, 군사적 긴장완화도 함께 추진해서 진정한 평화를 이뤄야 합니다. 인도적 지원과 자발적인 민간교류는 계속돼야 하지만, 현금지급은 핵개발 자금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핵문제 해결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마땅히 중단돼야 한다고 봅니다.”

- 여성문제를 짚어보죠. 젊은 층과 여성들에게 인기가 덜 하다는 지적인데요.

“글쎄, 젊은층은 몰라도 여성들에게 인기가 떨어진다는 것은 수긍하기 힘든데요. 만약 그렇다면 좀 섭섭하지요.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웃음) 투표일이 가까이 와서 진정으로 나라를 살리고 자녀에게 희망을 줄 대통령감이 누군지 생각할 시점이 되면 ‘역시 이회창’이란 판단을 하실 겁니다.”

- 여성단체들이 공약을 평가한 결과를 보면, 이 후보의 공약이 가장 보수적이란 평을 받았습니다.

“호주제를 즉각 폐지하겠다는 약속을 안했기 때문에 그런건가요? 그러나 여성 일자리 창출에선 우리가 타 당에 비해 훨씬 좋은 평가를 받았던데요. 보육정책과 가족정책 등도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고요. 정치권과 공직 여성할당제도 뒤질 게 없습니다. 저와 우리 당은 형식상 여성 지위 향상보다 철저히 여성들의 실질적 권익을 보장하는 내용이라고 자부합니다. 외형보다 여성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선택하고 그것에 집중할 겁니다.”

- 일하는 여성들의 고통은 보육문제입니다. 대책이 있으신지요.

“소크라테스는 국가란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고 했습니다. 3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우선 정부 지원을 대폭 확대, 보육비 부담을 완화하고 둘째, 2세미만 영아시설 등 보육서비스를 다양화하겠습니다. 셋째, 보육서비스의 질을 높여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게 하겠습니다.”

- 이 후보께선 <여성신문>의 논조를 어떻게 보셨습니까.

“솔직히 자주 보진 못했습니다만, 어려운 여건에도 여성의 권익향상에 기여를 하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런데 논조가 우리에게 썩 호의적이었던 것 같지는 않아서 뭐랄까...짝사랑하는 기분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 이 후보께선 댁에서 한 여사님을 어떻게 부르시나요.

“그냥 여보라고 부릅니다. 신혼 첫날부터 여보였지요. 가끔 술먹고 기분 좋으면 연애시절 생각에 인옥아라고도 부릅니다.”

- 두 아드님의 병역문제로 고충을 겪으셨습니다. 독자들에게 진실을 알려 주신다면요.

한 여사= “너무 속상해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단 한 점의 의혹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국민 여러분께는 너무 송구합니다. 이 추운 날씨에 자식을 군대 보내고 마음 졸이시는 어머님들을 생각하면 제가 원죄를 지었구나 싶어요.”

- 양심적 병역거부운동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 여사= “한 국가를 지탱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허용은 곤란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 며느리의 원정출산에 대해 해명하신다면요.

“99년부터 큰아들 내외가 미국에서 근무했는데, 중간에 직장을 옮기는 과정에서 한 달 정도 서울에 다녀갔습니다. 그러고는 돌아가서 출산을 했습니다 일부러 미국 국적을 얻으려고 나간 건 아니라고 말씀 드리고요. 본의 아니게 여러분들에게 심려 끼쳐드려 면목이 없습니다.”

- 한여사께 묻겠습니다. 이 후보의 귀족적 이미지 어떻게 벗어나야 한다고 보시나요.

한 여사= “제가 볼 땐 그런 분이 아니에요. 소박하고 겸손하게 살아오셨어요. 항상 어려운 사람을 걱정하고,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오신 분이에요.”

- 이번 대선 유권자 가운데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습니다. 이들 여성 유권자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후보= “우리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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