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소수자가 죄인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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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이태원 일대의 퀴어문화제 참가자.<사진·유영민>

교회를 다니는 나는 어느 곳보다도 교회가 자신과 다른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냉혹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여전히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이들의 판단은 참으로 쉬우면서도 정말 폭력적이다. 더군다나 이들은 ‘주님 앞에 우리 모두는 죄인’이란 기본 개념을 갖고 성적 소수자들을 죄인이라고 아주 쉽게 결정한다. 예수님의 ‘죄 없는 자 돌로 치라’는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교회는 너무 쉽게 죄인을 분류하곤 한다.

이번 주 교회의 소식지에는 트랜스젠더에 관한 칼럼이 실렸었다. 칼럼은 “트랜스젠더는 동성애자와는 다르고, 한 순간도 자신의 타고난 성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천적 장애가 있는 장님이나 앉은뱅이처럼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라서 우리는 그들을 장애인 품듯 이해하고 품어서 그들이 정신적인 성과 신체적인 성의 일치를 이루고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도록 도와야 한다”라고 결론지으면서 결국에는 트랜스젠더가 창조 질서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타락의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내용의 전반적 이해를 위해 링크를 제공한다. (www.kccc.org/korean/cccltr/200106/ltra-02.htm)

요즘은 교회도 디지털 시대에 발 빠르게 적응하려고 애를 많이 쓰고 있다. 사회 이슈에 대해 민감해지고 대중문화에 조금씩 다가가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초점을 잘못 짚고 있다. 위 칼럼의 논리를 거꾸로 생각해보면 죄인은 죄인이지만 동성애자가 아니기 때문에 장애인이고, 장애인이기 때문에 불쌍히 여겨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나는 트랜스젠더는 아니지만 트랜스젠더라는 현상이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해 있는 겉모습에 집착한 관음증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내가 여자이든 남자이든 보여지는 것이 중심이 아니라 나의 생각이 제일 우선시돼야 할 것인데, 내가 예쁜 치마를 입고 힐을 신고 화장을 하고 거리를 나서서 내가 남자라고 하면 사람들은 다 미쳤다고 할 것이다. 아직도 사람들은 화장과 치마는 여자의 것, 용기와 패기는 남자의 것, 그리고 여자는 언제나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 등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 잘못된 사고의 결과가 트랜스젠더로 나타나는 게 아닐까?

나는 그들이 어떻든 간에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만 보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이자 최대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트랜스젠더든 아니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아닌가.

이제 교회는 성적 소수자에 대한 직접적 탄압을 넘어 이제는 이해한다는 명분 아래 불쌍히 여겨 은혜까지 베풀려고 한다. 이런 것들이 사람들을 점점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기독교는 배타적이라는 편견을 만들어내는 소지가 된다고 생각한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코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는 의사소통을 시도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도를 넘어 상대방에 대한 탄압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문제시돼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잘못된 논리를 전파하는 기독교는 다시 한번 자신의 입장을 정리할 때가 아닐까.

김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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