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미친 듯이 자연을 탐했다.

자연을 탐했다고는 하지만 고작 산나물을 뜯는 수준이다. ‘먹고잽이’니 그 식탐이야 어디 가겠느냐마는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그 때의 기분은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복잡한 서울에서 살다가 남한산성 아래로 이사를 간 후의 생활은 날마다 하이든의 놀람교향곡이었다.

눈뜬 아침이면 남한산성으로 달려가 땀을 훔치며 쑥과 냉이를 캐서 아침을 지어 먹었다. 매일 아침마다 차가운 바람을 쐬며 그날그날 먹을 양만큼 캐 된장찌개나 냉이무침을 해먹는 맛이 너무 황홀했다. 어떤 날은 원정을 떠나 한 보따리 두 보따리씩 캐다 주변에 나눠주는 맛도 큰 즐거움이었다.

신선놀음이 별다를까.

꽃이 피는지 새가 우는지 모르고 살다가 이 무슨 횡재냐 싶기도 했다. 봄볕에 그을린 얼굴로 내심 행복한 웃음을 짓고 ‘인생은 정말 살만하다’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다가 용인으로 이사 왔다. 용인이라고 하지만 내가 사는 곳은 수지다. 용인이든 수지든 이 곳으로 이사 온 서울내기들은 자연스레 작은 농사의 기쁨을 맛본다. 비록 내가 짓는 농사는 아니어도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야채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파트 주변에 널려 있는 땅에 무, 배추, 깻잎, 토마토, 고추같은 야채를 키우고 더러 닭이나 토끼, 오리같은 가축도 키운다. 덕분에 청정무공해 푸성귀를 얻어먹는 행운을 누리기도 한다. 나같이 게으른 사람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어떤 이는 이번 농사로 김장을 한다고 하니 대단하다.

자급자족으로 담그는 김장이니 얼마나 뿌듯할까.

땅이 좋아서 그런지 전문농사꾼이 지은 것 못잖게 튼실해 보인다. 오가며 채소밭을 바라보는 마음도 꽃밭을 보는 양 흐믓하다. 가을은 천고마비라고 말로만 듣던 일들이 요즘 현관문 손잡이나 우편함에서 벌어지고 있다. 여름에는 심심찮게 상추나 깻잎, 토마토같은 야채를 얻어먹는 일이 생기더니 이제는 밤이나 감, 은행알이 늦가을을 알린다.

간단한 메모라도 있는 경우는 인사를 하는데 문제는 메모도 없이 우편함이나 현관손잡이에 걸려 있는 봉지를 보면 주인을 잘못 찾아온 건 아닐까, 하면서도 반갑다. 어제는 저녁뉴스를 보면서 은행알을 까는 수고를 했다. 냄새를 맡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보니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은행열매 냄새 고약한 거 다들 아시지요?

마음 한편으로는 이렇게 계속 얻어먹기만 하면 언제 이 빚을 갚고 세상 떠날까, 걱정도 든다. 해마다 ‘내년에는 나도 공터농사를 지어야지’마음만 스치다가 끝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내가 사는 아파트 앞 공터에 아파트를 짓는 소리가 뚝딱뚝딱 요란스럽다. 아~휴, 나같이 게으른 사람은 언제나 이렇듯 ‘내년에는, 다음에는’ 하다가 세월만 간다.

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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