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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간 연극배우로서 무대에 섰던 배우 한영애. 그가 올 4월 내림굿을 받고 새롭게 받아들인 무녀로서의 삶은 어떤 것일까. 평범한 한 여자에서 배우로, 그리고 무녀가 되기까지 삶의 곡절을 풀어낸 모노 퍼포먼스 ‘Color in life’가 홍대 씨어터 제로에서 지난 10일부터 3일간 펼쳐졌다.

전통굿과 퍼포먼스의 만남

공연 이틀째 찾아간 극장은 여느 소극장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으나 몇몇 젊은이들 사이로 나이든 남성도 두서넛 보였다. 무녀가 된 배우의 모노 퍼포먼스라는 점에서 무언가 색다른 것이 준비돼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여기저기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무대에는 오방색(청색, 노란색, 빨간색, 하얀색, 녹색)의 긴 천이 세 개의 검은 벽 아래로 길게 펼쳐져 있었고, 조금 후 등장한 흰 종이두루마기 차림의 배우 한영애는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하얀 나비처럼 춤추기 시작했다.

‘난 꽃일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난 나비일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바람일는지도... 그래서일까, 내 속에 다른 그 무엇이 숨어 있었다. 난 이렇게 여전히 나인데, 내 속에 내가 아닌 내가 자꾸만 나오려 한다. 나와서 같이 놀자고 한다.’

사랑도 슬픔도 기쁨도 고통도 먼지도 나조차도 없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여자의 땅을 그는 무녀의 땅이라 이름짓고 그 땅에서 노래하고 춤추리라고 고백한다.

이번 모노 퍼포먼스는 한영애 자신의 살풀이 씻김굿과 다름없다. 무녀가 되기 이전, 또 무녀가 되고 나서의 자신의 인생 역정을 그려내는 독특한 형식의 굿 퍼포먼스다. 그러나 기존 전통굿의 형식과는 다르게 모노드라마 형식을 취했고, 음악도 전통악기가 아닌 팝송과 대중가요를 취해, 일반 관객이 느낄 수도 있는 위화감을 줄이려 애쓴 흔적이 보였다.

모노드라마는 우리 연극계의 대부인 고 추송웅 씨의 ‘빨간피터의 고백’으로 우리에게 익숙해진 연극형식이다. 그 동안 박정자, 윤석화, 김혜자와 같은 여배우들의 유명세(?) 덕에 모노드라마가 한때 세인의 인기를 독차지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모노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한 인간의 내적 긴장감이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낸 것이라는 점에서 한영애의 이번 작업은, 기존 모노드라마의 장점을 퍼포먼스라는 장르에 결합시켜 최대의 효과를 이끌어냈다는 평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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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서 마음의 질병을 치유하는 무녀가 되길

“저는 세습무예요. 내림굿을 받을 때 알게 됐어요. 세 살 이후 헤어져 돌아가신 것도 몰랐던 아버지와 조상신이 몸에 실린 거예요. 그때서야 어머니께서 알려주셨어요, 아버지가 무당이었다는 사실을.”

남편이 무당인 사실을 알고 이혼한 어머니는 그를 친정에 맡기고 다시 재가해야 했다. 바로 그 날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을 모두 사주고, 홀로 두고 떠나야 하는 딸아이 앞에서 수건으로 입을 막고 오열하셨던 어머니. 초등학교 1학년 때쯤인가 학교 앞에서 그를 기다리던 한 남자는 예쁜 옷을 한 벌 사주었고 그 옷은 어머니의 손에 의해 발기발기 찢겨져야 했다. 그리고 다른 집에 보내어졌던, 이젠 다 큰 청년이 되어 있을 동생. 그의 이런 상처의 편린들은 그대로 극 속에 되살아나 제살풀이를 하는 듯했다.

“한동안 주변에서 말들이 많았죠, 퍼포먼스 작업에 굿을 이용하는 게 아니냐는. 무녀가 되었다고 하니 색다른 눈으로 저를 보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저는 너무 당당합니다. 지금이 오히려 행복한 걸요. 무언가 나를 억누르던 응어리가 풀린 것만 같아요. 무녀가 되어야 했을 때, 예술을 포기하고 굿만 하라고 한다면 이 자리에서 죽겠다고 했죠. 다행히 제가 하고 있는 퍼포먼스 작업으로 풀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앉은걸이(점보는) 무당이 아닌 선걸이(굿하는) 무당으로서 신과 인간이 해후하고 화해하는 다리 역할을 충실히 하고 싶다는 그는 예술로서 사람들의 마음의 질병을 치유하는 무녀가 되길 원한다.

지난 2000년부터 이미지극과 퍼포먼스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그는 과천마당극제 폐막식 공연, 제천의병제 공연, 삼랑성대학로공연, 환경프로젝트개막위령제 등 각종 행사의 개폐막 퍼포먼스 공연을 해오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올 9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있었던 ‘세계실험예술제’는 그에게는 잊지 못할 공연으로 기억된다.

“우리의 오방색을 퍼포먼스에 담아 보여주었죠. 반응이 좋았어요. 우리의 전통색에 대해 아주 열정적인 호감을 보였어요. 또 샤머니즘적인 이미지들을 우리의 것으로 인정해 주고 독특함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 공연은 ‘한영애 모노 퍼포먼스 굿 하나’이고 매년 공연 횟수를 늘려 갈 생각이다. 그는 이번 퍼포먼스에 대해 “한 사람의 작은 몸짓에 불과하지만 인간의 희로애락을 씻어내는 굿판, 즉 인생은 바로 굿이며 굿은 곧 인생이라는 명제를 공연을 통해 관객과 함께 느껴보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민들과 함께 하는 대형 굿판을 벌이는 것이다. 그의 씻김굿 공연을 통해 이 땅의 상처받은 영혼이 위로받기를 기대해 본다.

윤혜숙 객원기자 heasoo21@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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