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 피임약 기사 공감했다

응급피임약 판매 허용 1주년을 맞아 쓴 기사를 읽고 공감하는 바가 많았다.

알다시피 노레보의 전문의약품 승인을 둘러싸고 나왔던 반대의견 중 대다수는 바로 노레보가 시판되면 우리사회의 성문화가 문란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노레보가 시판된지 1주년이 지났지만 '응급피임약 때문에 사회가 문란해졌다'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한 사회의 성문화는 성문제를 둘러싼 사회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리고 그 사회환경 중 가장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바로 남녀평등 문제다.

왜 응급피임약을 둘러싼 논란의 한 가운데에 여성이 서 있어야 하는가. 왜 임신에 의한 스트레스를 여성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가. 임신이 축복이 아니라 기피의 대상이 된 데에는 남성 위주의 성문화에 기인한 바 크다. '원치 않은 임신'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성숙한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응급피임약을 둘러싼 논란도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원치 않은 임신을 막을 수 있는 노레보의 일반의약품으로의 전환은 일부 '생각있는' 남성들 역시 크게 공감하는 사안이다.

원치 않은 임신으로 인해 여성들이 입을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고통을 생각한다면 '성의 문란을 조장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노레보가 일반의약품으로 전환되는 것을 반대하지는 못할 것이다. 여성들이 남자친구나 의사 앞에서 임신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을 당당하게 말하기 어려운 현실을 생각하자. 그렇다면 노레보의 일반의약품으로의 전환은 당위성의 문제로 뒤바뀔 것이다.

rhka09@yahoo.co.kr

보편적인 인권 확장하는 신문 되길

“총 32면 지면에 여성계 소식과 여성관련 법적 제도적 쟁점, 정치계와 여성문화계, 생활환경 문제 등 다양한 부분을‘독특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여성신문사의 웹사이트에 기재돼 있는 여성신문의 소개 글이다. 그러나 비록 조·중·동 중심의 일간지들이 다루지 않는 기사들을 폭넓게 다루고 있지만 이 또한 단순한 사실의 보도에 머무를 뿐 소개 글에 나와있는 ‘독특하고 새로운 시각’은 특별히 부각되지도 다뤄지지도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신문이‘윤택한 삶의 공동체를 가꾸어 가는’나름의 지향점을 갖고 또 그런 지향점에 동의하고 함께 했던 이들의 목표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독특하고 새로운 시각’은 ‘일반의 시각과 다른 무엇’으로써가 아니라, ‘제한되고 있는 여성의 사회적 권리와 참여의 폭을 신장하고 더불어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를 확장하고 실현하기 위한 시각’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uridl@korea.com

여성, 그 희망의 근거를 찾기를

“진정한 인간해방은 여성해방에 있다.”

학창시절에 접한 여성관련 서적에서의 이 구절은 30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에도 내 인생의 지침이 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사회에서 여성과 여성문제의 본질을 생각하고 행동하게 했던 이 말을 되짚으며 여성신문의 최근 모습을 돌아본다.

14년의 세월을 변함없이 여성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척박한 토양을 닦아왔던 힘은 무엇일까. 여성신문 이계경 전 대표라는 한 개인의 희생과 노력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정작 조명을 받아야할 광범위한 여성계의 지지와 성원은 빠져있는 듯 하다. 개인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허탈감과 배신감의 강도도 높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개인의 한나라당 행이라는 정치적 선택이 여성신문의 존립을 위협할 수 없고 위협해서도 안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여성신문사 내부의 취약함은 자연스레 바깥으로 흘러 나왔다. 독자들의 빗발치는 항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이나 뒤이은 모습 등이 여과 없이 게시판을 통해 전달됐다. 우왕좌왕하며 진통을 겪는 여성신문의 아픔을 지켜보며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을 숨길 수 없었다. 존중하고 사랑했던 민주언론의 현실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많은 이들이 보내는 우려와 걱정이 선의겠지만 이제 더 이상 무거운 짐을 얹고 싶지는 않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지금은 부실한 산모의 몸으로 과연 어떤 아이를 낳을까하는 우려보다 몸을 추스려야 할 때라고 본다. 산모 자신의 노력과 함께 주변 사람들의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건강한‘여성해방’이라는 아이를 낳아야 하고, 여성이라는 든든한 토양 속에서 몸을 추스리는 산모를 만들어야 한다.

산모의 체력과 정신력이 밑받침된다면 여성의 권익과 이해를 반영하는 여성신문의 본령은 훼손되지 않으리라 믿는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산모의 고통이 따르듯 여성신문의 재탄생과 새로운 역사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독자들의 따가운 질책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이를 수용하려는 낮은 자세와 독자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당당한 발걸음을 기대한다. 신문사의 꺼지지 않는 불빛 속에‘여성’그 희망의 근거를 찾을 수 있겠지.

shlee31@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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