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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채천 교수가 ‘가르침과 배움의 생물학’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왜 사느냐 물었을 때 예전의 부모님들은‘자식을 위해서 산다’고 거리낌없이 이야기했다. 물론 지금도 그런 부모들이 많기는 하다. 그러나 전처럼 다수가 입을 모으는 상황은 아니다. 그랬다가는 오히려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이야기를 듣기 십상이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 바라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지난달 31일 이화여자대학교 인간생활환경연구소 주최로 열린 ‘올바른 가치관 정립을 위한 가정교육’ 심포지엄에서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최재천 교수가 강연한‘가르침과 배움의 생물학’의 내용을 통해 그 일면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생물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종족의 번식이다. 최재천 교수는 “생물로서의 인간은 오로지 자손을 퍼뜨리는 것이 존재의 이유”라며, 무엇 때문에 태어났고 무엇을 위해 사는가 라는 질문에 서슴없이 “자식을 위해 산다”고 말한다. 생명체란 유전자가 더 많은 유전자를 복제하기 위해 잠시 만들어낸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생물학자인 그가 주장하는 바다.

동물 세계에서 발견되는 교육

굳이 자식을 위해 산다는 명분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부모가 자식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경향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최 교수는 “생물로서의 인간에게 자식은 내 유전자를 후세에 널리 퍼뜨려줄 존재이기 때문에 자식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려는 부모의 심정은 황당한 일은 아니다”라며 “다만 보다 큰 만족을 얻기 위해서는 현명한 부모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식에도 반기를 든다. 동물에게서 인간보다 지혜로운 교육 방식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뭐가 두려운지 자식 눈치를 보며 ‘오냐오냐’를 남발하는 부모가 많아지면서 이기적인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 교수는 침팬지 연구를 예로 들면서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은 남과 함께 사는 방법을 어릴 때부터 배워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는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 박사의 ‘침팬지 사회에서는 무엇을 아는가보다 누구를 아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하면서, 침팬지 사회에서도 관계의 중요성이 발견된다고 언급했다. 동물도 아는 관계의 중요성을 우리 아이들이 정작 모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일침이다.

동물 사회에 교육제도가 있다고 하면 쉽사리 믿기지 않는다. 최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단순한 동물인 플라나리아를 T형 미로를 걷게 하고 갈림길에 다다를 때마다 한 쪽에서 가벼운 전기자극을 주면 다음 번에 그 갈림길에 섰을 때 지체없이 자극이 오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몸을 튼다. 두어 번의 경험으로 충분히 배워 생활에 적용하는 동물들의 삶에서도 학습은 유전자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는 이외에도 동물계에서 조직적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교육과정을 발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몸으로 가르치라

인간은 말로서 정보를 전달한다. 최 교수는 말로 가르치는 것은 많은 정보의 전달은 가능하지만 그것을 몸에 배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몸으로 가르치란다. 자식이 봤을 때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면 아이들은 저절로 배우고 자발적인 배움은 강압적인 가르침보다 훌륭하다는 것이다. 그는 “아이가 책을 읽지 않아 속상해 하는 부모라면 동물처럼 몸으로 행동하라”고 강조했다. 즉 거실 한복판에 놓인 대형 TV를 치우고 그 자리에 가족 도서관을 만들어보라는 것이다. 그는 아파트 신축 때 놀이터와 함께 작은 도서관을 꼭 짓도록 하는 법이 제정되는 것도 사회가 해야 할 동물적인 몸짓이라고 언급했다.

태어나자마자 걷고 뛰는 동물에 비해 엉성한 신경계를 갖춘 인간은 태어나서 수개월 동안 누워 있는 것이 고작이다. 최 교수는 여기서 “기본적인 얼개만 가지고 태어난 후 자기가 살아갈 환경에 맞게 성장하도록 만들어진 인간의 특성상 평생교육이 중요하다”는 논조를 펼쳤다. 태교 때 ‘아이의 건강과 행복만을 추구했던’ 그 마음을 평생 가져가자는 이야기다. 자식이 건강하게 잘 성장해 스스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아낌없이 돕는 것이 내 유전자를 보다 많이 후세에 퍼뜨리는 길이라는 것이다.

“지나치게 머리로 계산한 사랑보다는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동물적인 사랑이 더 강력하고 효과적이다. 동물적 사랑이란 다분히 맹목적인 사랑이 아니다. 끊임없이 인내하고 아낌없이 주며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보낼 줄 아는 그런 사랑을 말한다. 그 동안 내가 보아온 동물 부모들은 우리들보다 배운 건 많지 않아도 이런 사랑을 베푸는 데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최 교수가 말하는‘가르침과 배움의 생물학’의 참 뜻이다.

조혜원 기자nanca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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