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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뚱띠’로 부르는 박남 시인.

‘뚱띠’는 내 애칭이다.

물론 나 혼자 부르는 말이다. 남들은 ‘뚱땡이’라고 한다. 30대 초반까지 마른 체형을 유지하다가 살이 찐 요인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다. 보약, 운전, 게으름,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은 것들이 다 살로 달려갔기 때문일 거다. 게다가 나이 들면서 뾰족하던 성격이 조금 누그러진 탓도 한몫 거들었으리라 생각한다.

곳간에서 인심 나고 먹는 게 남는 거고 먹고 죽은 얼굴은 혈색도 좋다는 세상 말을 들추지 않아도 먹는 행위는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한다. 흔히 ‘밥 먹었느냐’는 인사말의 근본적인 배경이 배를 하도 곯아서 그랬든 오로지 밥 먹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랬든 이 말은 우리 생활에 익숙하다. 오숙희씨의 ‘아줌마 밥 먹구 가’란 책이 제목만으로도 반향을 일으키는 건 생활과 밀접한 데다 이 시대의 ‘아줌마’란 단어가 내포한 의미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각설하고 용인에서 사람들을 만나려면 언제든지 밥 먹을 준비를 해야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하루 세 번만 밥 먹는다고 고집부리면 안된다는 말이다. 상대방에게 부담주기 꺼려 점심시간을 피해 가면 영락없이 점심을 두 번 먹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저녁 시간대도 물론 마찬가지다. 저녁을 두 번 먹는 일도 흔하니, 세 번 먹지 말라는 법도 없다. 3∼4시 경에 만나면 안전하겠지, 하고 꾀를 냈다가는 평택 옆에 있는 오산을 만나기 십상이다. 평택 옆에 있는 오산, 다 아시죠.

취재하는 일로 또는 행사장에서 일하다보면 밥 시간대와 맞물리는 경우가 있다. 이 때 서울내기처럼 ‘기브 앤 테이크’식으로 나도 밥 한번 샀다가는 두 번 이상 얻어먹어야 하는 일이 벌어지니 아예 포기하는 게 낫다. 한번은 파출소에 갈 일이 있어 안심했다. 시골선생님같이 푸근한 인상의 소장님이 파리채를 들고 파리를 잡다가 반기며 고구마를 쪘는데 맛이 좋다며 먹고 가란다.

고구마는 물론 파출소 근방의 땅에 심은 것이다. 쉬는 짬짬이 농부처럼 고구마 농사를 지었을 경찰관들을 생각하니 동네 사람들같이 편하게 느꼈다. 용인에서는 어디든 누구든 잠깐만 들러도 최소한 차 한잔은 마셔야 한다. 비빔칼국수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먹었다. 국수처럼 삶아 찬물에 씻어 고추장으로 비벼 내온 칼국수, 독특한 맛에 반했답니다.

아, 아! 정말 살 빼야 하는데….

“아, 살은 뭐 하러 빼! 난 그거 참 못 마땅해!”

인심 좋은 동네어른이 호통을 치신다. 온 나라가 다이어트를 한다고, 살 빼느라고 정신없다. 건강하면 최고지, 무슨 쓸데없는 짓이냐는 거다. ‘밥 먹구 가’라며 소매를 끌어당긴다.

밥상 앞에서 고민을 할 때마다 그분의 음성이 들린다.

어찌하오리까.

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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