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일/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상담위원

우리 상담소에는 여성들의 한과 억울함을 호소하며 눈물 흘리는 여성들을 위해 마련한 ‘눈물의 휴지’라고 불리는 화장지가 있다. 헌데 이제는 두루마리 휴지를 갖다놓을 지경이다.

아내의 불륜으로, 아내의 폭력으로, 때로는 돈 때문에 구박 당하고 쫓겨났다는 사연을 갖고 상담실을 찾아 눈물을 흘리는 남성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물이 반성과 회한의 눈물인지 아니면 억울함의 표시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떤 미혼 남성이 상담소를 찾으며 했던 말이다.

“저는 정말 아이를 원치 않았습니다. 서로 좋아서 즐기자고 한 것이지 아이 가질 생각은 죽어도 없었습니다. 여자한테 피임사실을 몇 번씩 확인도 했고요. 혼자서 애 낳아 놓고 이제 와서 남자니까, 아빠니까 책임을 지라니요.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장남의 역할에 버거워하는 30대 중반의 남성은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집안의 기둥이었습니다. 대기업에 들어갔으니 시골에선 출세한 셈이죠. 1년에 한두 차례씩 꼭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저희한테 ‘집 사 달라, 생활비 대라’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월급 받아 애들 공부시키기도 힘든 처지입니다. 저 때문에 고생한 것은 알지만 시집간 여동생들도 살만큼 사는데 체면 때문에 아쉬운 소리 하기 싫다며 아들인 저한테만 집착합니다.”

“전 오로지 가족들 돈 걱정 없이 살게 하려고 애썼습니다. 집 장만하고 애들 유학도 보냈습니다. 이제 살 만하니까 아내가 이혼해 달라합니다. 파출부처럼, 노예처럼 살수 없다나요. 세상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습니다. 어디 감히 여자가 이혼한다는 말을 그리 쉽게 할 수 있나요?” 이는 어느 중년 남편의 분노 어린 말이다.

이처럼 우리 남성들은 호주제로 인해 의무로 주어진 부담을 버거워 하기도 하고 무의식적으로 아직도 호주제의 사고에 젖어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호주제가 표방하는 가치관에서 빚어지는 일들이다. ‘상징적’인 제도에 불과하다고 호주제 무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호주제는 우리의 일상생활과 사고체계를 지배할 만큼 그 존재 자체로서의 상징성 그 이상의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는 세상의 변화추이를 반영해야 한다. 법과 현실이 너무 많이 괴리되어서는 안된다. 이제 호주제의 수혜자요 기득권자였던 일부 남성들에게서 조금씩 양성평등 의식이 싹트고 있고 호주제의 과중한 부담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때 법과 제도가 이들의 변화를 빨리 받아들이고 이를 미처 깨닫지 못하는 남성들에게는 그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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