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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개 시민·여성단체가 참여한 ‘디지털TV 방송방식 변경을 위한 소비자운동’이 지난 8월 28일 국회 앞에서 미국식 방송방식을 유럽식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사진·민원기 기자>

디지털TV 방송 방식은 전파를 보낼 때 한묶음으로 묶어 보내느냐(단일캐리어), 여러 개로 쪼개 보내느냐(다중캐리어)는 차이에 따라 미국식과 유럽식으로 나뉜다. 흔히 대형트럭으로 비유되는 미국식은 전파거리가 길고 고화질인 반면 여러대의 소형차에 비유되는 유럽식은 수신율이 높고 이동수신이 가능하다.

미국식이냐 유럽식이냐는 방송방식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논란 중에서 시청자 입장에서 쟁점이 되는 사안을 정리해봤다.

◇난시청 문제

MBC가 방송위원회의 지원으로 지난해 9∼11월 3개월간 비교실험을 실시한 결과 우리 현실에서는 유럽식이 미국식보다 수신율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실외수신의 경우 미국식은 유럽식에 비해 15% 낮은 수신율을 보였는데 이는 수도권 460만 가구에 적용할 때 70만의 난시청 가구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법적으로 난시청은 “자연지형에 의해 발생된 자연적 난시청만 인정”되므로 건물에 의한 인위적 난시청은 법적으로 해결할 길이 없다. 따라서 70만 가구의 시청자들은 난시청 해결을 위해 유선방송에 따로 가입하는 등 추가비용을 부담해야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동수신 문제

이동수신은 디지털TV의 핵심기능으로 평가되고 있다. 앞의 MBC 비교실험 결과 유럽식은 고화질에서도 모바일(이동) 서비스가 충분히 가능했지만 미국식은 이동 중에는 수신이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광호 교수(서울산업대 매체공학과)는 “미국 내에서도 미국방식의 기술적 결함을 개선하기 위해 2년 전부터 실험을 계속했지만 지난 7월 내놓은 결과자료를 보면 실험실 안에서도 이동수신이 대부분 실패한 것을 볼 때 실제상황에서 수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며 미국식으로도 2년 이내에 이동수신이 가능할 것”이라는 정통부의 주장에 대해 김교수는 “단일 반송파 방식의 미국식은 근본적으로 이동수신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설령 몇 년 뒤에 가능해진다 해도 그 방식이 기존 수신기와 호환을 이루기는 어렵다”고 반박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통부가 미국식을 고집한다면 시청자들은 내지 않아도 될 통신비용을 고스란히 부담해야할 형편이다. 김교수는 “IMT-2000(차세대 이동통신)을 통해 데이터 서비스를 이동전화로 수신할 경우 그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며 “가구당 통신비용이 16만 5천원에 달하는 현실에서 이 비용까지 부담하게 된다면 정보의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고 경고했다.

◇수신기(셋톱박스) 가격 문제

현재 디지털TV는 32인치가 300만원, 47인치가 540만원 상당으로 대부분의 시청자들에게는 부담스런 가격이다.

서울YMCA가 올 초에 실시한 ‘디지털지상파방송 및 방송방식에대한 설문조사’를 보면, 디지털TV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응답자 중 3.5%에 불과했고 디지털TV가 보편화되거나 가격이 내리면 사겠다는 사람은 19%였다. 반면 구입할 계획이 없거나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응답자가 77.5%나 됐다. 그런데 유럽식으로 방송방식을 변경하는 경우 유럽식이 미국식보다 로얄티가 저렴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수신기의 가격이 내려가는 효과가 생긴다. 현재 교체대상이 되는 아날로그 수상기가 2천만대가 넘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방송방식 변경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큰 비용 절감을 가져온다.

◇국제적 추세

지금까지 미국방식을 선택한 나라는 세계에서 미국과 한국, 캐나다 3개국뿐이다. 반면 유럽방식은 유럽과 중남미, 호주, 싱가폴, 인도 등 40개국 이상이 채택함으로써 공통의 표준이 되고 있는 추세다. 우리와 유사한 환경을 가진 대만은 미국식을 선택했다가 지난해 비교시험을 거친 후 유럽방식을 재선택했다. 따라서 수신기 수출이라는 산업적 측면에서 봤을 때도 유럽식이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방식변경에 따른 경제적 손실

정부는 이제 와서 방송방식을 변경하게 되면 경제적 손실이 크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박병완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장은 “방식이 변경되면 지상파 방송사들은 관악산 송신기의 변조부를 모두 바꿔야 하지만 그 비용은 5억 미만이다”라며 “정부가 미국방식을 강행했다가 문제가 불거져 뒤늦게 유럽방식으로 바꿀 때 드는 사회적 비용이 수십조원일 것을 감안하면 피해액은 최소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보급된 수상기 및 셋톱박스에 대한 보상문제를 내세우는 정통부 논리에 대해서도 박씨는 “시중에 나온 수상기는 1만대가 채 되지 않는다”며 “미국이 기술적 문제로 표준확정을 계속 미루고 있는 상황이어서 미국식이든 유럽식이든 어차피 지금 보급된 셋톱박스는 교체해야 될 것이다”고 반박했다.

이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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