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1년은 세계의 10년”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88년 서울올

림픽을 앞두고 전 세계의 관심이 서울로 집중되던 시기였다. 당시에

“한국의 1년은 세계의 10년”이라는 자랑과 찬사가 명실상부했었다.

그런데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물가가 치솟고 문익환목사 방북을 기화

로 공안정국이 조성되더니 나라의 분위기가 급락한 적이 있다. 그 끝

물이 지금인지 모르지만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비행기 추락 열

차탈선, 지하철사고, 가스관 폭발, 성수대교붕괴, 삼풍참사 등 끝이

없을 때의 얘기다. 그이후 한동안 잠잠해서 ‘나랏님’부덕의 소치는

아니구나 하고 안심했었다. 그런데 괌에서 웬 날벼락인가. 지금 지

난 일을 되새기자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가 큰 일이어서 하는 말이

다. 큰일은 대통령선거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다른 나라 ‘국가 원

수’이상의 권한과 책임을 가졌다는 것은 다 아는 일이다. 지금까지

확정된 후보든 출마설을 흘리고 있는 후보든 ‘민족과 국가’를 위해

서라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우선 믿고 싶다.

사익이나 개인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위해서 출마한다면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너무 복잡하다. 어쨋든 우리

나라의 97년 여름은 어느 문제 하나도 해결이 안된 채로 엎친데 겹치

는 형국이 계속되고 있다. 국민들이 짜증이 난다. 여름 더위를 잊게

해줄 만한‘화끈한 사건’은 계속 터지는데 사건이 지나고 나면‘블

랙 코미디’의 뒷맛처럼 씁쓸하다.

이번 여름 불행은 괌에서 있었지만 비슷한 시기에 우리민족사에 ‘

숫가락’하나 정도는 얹을 수 있는 사건이 일본 오사카에서 있었다.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일본 오사카 국제교류센터에서는 전세계에 흩

어져 있는 한국학관계학자 4백50명이 모인 제5회 조선학국제학술대회

가 열렸다. 이 대회가 국민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한국학학자들에게

는 알려져 있는 대회다. 주최는 대만경제법과대학아시아연구소 북경

대학조선문화연구소 국제고려학회 세기관이 공동으로 했다. 1회(86

년) 2회(88년)는 북경대학과 대판경법대학이 공동주최해 북경에서 열

렸다. 주로 중국 소련 북한 일본의 조총련계학자들이 모여 어느 정도

반한 분위기를 보여왔다. 90년 오사카에서 열린 제3회 대회때부터 분

위기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이때는 전세계의 조선학 한국학학자들이 거의 다 모였다고 할 정도

로 14개국에서 1천여명의 학자가 모여 북적댔다. 북한에서도 유명한

사학자인 김석형 사회과학원장을 비롯한 학자 교수들이 대거 참석했

다. 우리쪽에서도 이세기 국회 외무통일위원장을 비롯한 거물급 학자

교수들이 참석해 한반도의 통일과 민족의 장래에 대한 진지한 토의를

벌였다. 그뒤 92년 북경에서 열린 제4회 대회땐 규모가 줄어 9개국에

서 7백여명의 학자가 참석했다.

이번 대회때문에 장황한 경과설명이 필요하다. 2년만에 열기로 돼

있는 대회를 그간 열지 못해 5년만에 열렸다. 한반도와 주변정세의

흐름이 너무 복잡했던 때문인지, 이번에는 한국에서 1백여명이 참석

했는데 북한에서는 참석치 못했다. 혹자는 황장엽씨 망명여파 때문이

라 했다. 주최측인 대판경법대측에서 대회전에 북한에 가서 항공료와

숙식일체를 무료로 해주겠다고 제안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경위야

어떻게됐던 이 중요한 시기에 북한측이 참석치 못해 중국의 조선족학

자 2백여명이 대거 참석했음에도 반쪽 대회로 비쳐졌다.

그러나 중요한 결정이 내려졌다. 2년후인 다음 대회는 우선 명칭부

터 ‘제6회 코리아학국제학술대회’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지

금까지 중국 일본을 오가던 대회를 다음에는 미국의 하와이대에서 개

최키로 결정했다. ‘조선학’이라는 용어대신에 남북한이 올림픽공동

참가를 위해 합의했던 국호인 코리아를 쓰기로 한 것이다. 작은 변화

이지만 의미가 있다. 남북관계는 경색돼 있지만 5백여만명의 교민 교

포사회는 뭉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첫머리에 언급했던 중국의 변화는

사실 중국화교들의 도움으로 이뤄지고 있다. 우리도 전세계에 나가

있는 우리의 핏줄에 눈을 돌려야 한다. 분단의 피해자인 교포들에게

서 분단을 극복하는 힘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평화통일의 뒷심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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