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국어대 제1회 여성문화제 개최

한이 맺힐 만도 하다. 여학생위원회에서 했던 피임 워크숍을 제외하고 본격적인 여성주의 행사 하나 존재하지 않았던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10월 7일부터 11일까지 제1회 여성문화제 ‘恨매친년들 發光하네’가 열렸다.

문화제 기간 내내 학교 곳곳에서 대자보 전시가 있었다. 여성위인전, 광고비평, 드라마 속 여성캐릭터 비판, 성폭력 FAQ, 대안생리대, 성매매, 전쟁반대 등에 대한 대자보들이 전시됐는데 특히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와 대안생리대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다.

본 행사는 10월 8일 학교 노천극장에서 개최됐다. 여성주의 노래대회와 호신술 배워보기, 여성들의 한 맺히는 경험을 익명의 형식을 빌려서 이야기한 ‘그림자 이야기’, 남성들의 성폭력적 시선을 비판하는 퍼포먼스 등이 진행됐으며 숙명여대 중앙노래패 한가람과 여성 랩그룹 WWW, 페미니스트 가수 지현씨의 공연은 행사 분위기를 한결 신명나게 만들어 주었다.

여학생 휴게실에서 여자친구들끼리 수다 떠는 방식으로 전개된 ‘여휴수다방-외대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도 인상적이었다. 작년 2월 여학생 샤워실에 한 남학생이 들어와 샤워하고 있던 여학생의 소지품을 모두 훔쳐간 사건, 2000년 9월 학교 안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한 여성이 지나가던 사람에게 폭행을 당한 사건, 2001년 4월 한 여학생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데 옆 칸에 남학생이 들어와서 칸막이 밑으로 손을 뻗어 엉덩이를 만진 사건… 최근 일어났던 어이없고 기막히며 끔찍한 사건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여휴수다방’은 외대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왜 쉽지 않은지를 말해주었고 외대 내 여성인권의 심각성을 일깨워주었다.

기획단 ‘Bad girls’와 함께 문화제를 준비한 여학생위원회 지승경(정외과 3)씨는 “문화제라는 형식을 빌려 노래나 극, 퍼포먼스 등을 통해 더 많은 학우들과 여성주의를 공유하고 싶었다. 그리고 기획단을 공개적으로 모집해 외대 내에서 여성주의를 고민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싶었다”고 밝혔다. 또 “공간과 예산의 한계가 많아 힘들었고 소수의 사람들이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했지만 결과가 좋아 뿌듯하다”는 소감을 이야기했다.

외대의 여학생 비율은 65%에 이른다. 남녀공학인 다른 대학들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높은 비율이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은 단순히 숫자에만 머무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문화제 본 행사 때도 생각했던 것보다 참여율이 낮아 ‘그 많은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외대에서 여성주의를 고민하고 이야기하기엔 그것을 막고 있는 장벽이 아직 높기만 하다. 그러나 이번 문화제를 시작으로 해서 그 많은 여성들이 내는 다양하고 풍성한 이야기들이 조금씩 퍼져나가기를, 그런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강우 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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