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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불어오니 몸이 고달프고 덩달아 마음까지 고달파지는 요즘이다. 원래 웃음을 못 참고 잘 웃는 편인데 요즘 들어서 통 웃을 일이 없었다. 텔레비전을 봐도 어이없는 장면들에 혼자 펄펄 뛰기 일쑤고 웃을 거리가 없다는 것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이라는 제목의 뮤지컬을 보게 됐다.

일단 발랄한 제목과 알록달록한 포스터가 마음에 들었다. 이라니 제목에서부터 벌써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가. 은 그런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은 누군가가 껄렁껄렁하게 다가와서 여자를 얕잡아 부르는 말이 아니라 친숙하고 유쾌한 그녀들이 호기롭게 부르는 말이다. 공연을 이끄는 다섯 배우 모두 씩씩하고 장난스러운 언니들이었는데 이들이 각각 다섯 명의 임산부를 연기했다.

아카펠라 뮤지컬

당당해서 유쾌한 임산부들

줄거리는 다섯 명의 임산부가 마을의 공장에서 나오는 식품들이 ‘실험을 충분히 거치지 않은’ 유전자 조작 식품이라는 것을 알고 이에 맞서 싸우는 내용이다. 이들은 ‘어리석은 짓’이라며 자신을 무시하는 남편과 사회를 향해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 결과는 다섯 여성들의 승리. 약간 뻔한 감동을 주는 결말이지만 보는 내내 즐거운 마음을 누를 수 없었던 것은 ‘도대체 언제 여성들이 이렇게 무대 위에서 당당하고 현명한 주인공으로 등장했었던가’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카펠라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특이점과 배우의 매력을 뒤로 제치고 보더라도 은 여전히 유쾌하고 좋은 공연으로 남는다. 일단 마음껏 큰 소리로 웃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웃음을 터뜨리는데 가장 불편한 웃음은 사회적 약자를 희화화해 생기는 웃음일 것이다. 이 전해주는 웃음은 남의 약점을 비웃는 웃음이 아니라 사회적 통념을 속 시원히 깨부수어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는 웃음이다. 이제껏 ‘아줌마’로 통칭되며 ‘바깥일 잘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되던 그녀들이 ‘자신의 몸의 주체’로 나올 때, 또 임신에 대한 여러 가지 잘못된 생각들이 깨어질 때 객석 곳곳에서는 즐거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들은 자신이 하는 얘기를 ‘임신에 의한 호르몬 이상으로 신경이 쇠약해져서 그렇다’고 결론짓는 의사와 남편 앞에서 “자궁도 없는 남자 둘이서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냐”며 당당히 외친다. 그 동안 소외 받아온 여성의 몸이 진정한 주인을 찾은 것이다. 그녀들은 “평소에 듣지도 않는 클래식 듣는다고 태교가 되냐”면서 좋아하는 트로트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면서 건강을 지킨다. 들으면 졸리기만 한 클래식 음악보다야 내 몸이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는 게 더 건강에 좋다는 말이다. ‘태교’ 역시 여성을 고려한 것이라기보다는 태아에 더 중점을 둔 사고가 아니던가. ‘임신 중에는 성관계를 하면 안 된다’는 말 역시 옳은 말이 아니라는 것도 공연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왜 그 동안 여성만이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타자에 의해 서술돼 왔는지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막간을 이용해 그녀들은 임산부처럼 보이기 위해 배속에 넣어두었던 소도구를 꺼내어 이를 이용한 춤을 추기도 하고 광고를 흉내내기도 했는데 임신이 ‘성스러울 뿐’인 것이 아니라 여성들의 자연스러운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임신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지만 ‘아이의 탄생’에만 초점을 맞춰 여성을 옭아맬 수는 없다는 말이다. 다섯 임산부들의 가짜 배를 이용한 장난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그 동안 임신에 대해 가졌던 무겁기만 한 생각들이 날아가 버리는 것 같았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나와 내 친구들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소재이기에 공연 중간 중간 ‘당신도 해봐요∼’하는 노래가 나올 때 민망했다는 것이다. 축복 받을 만한 일이라는 것도 알고 몸의 당당한 주체로 선 그녀들이 자랑스럽게 느껴졌지만 ‘임신에 대한 지나친 숭배’가 여성을 옭아맬 수 있지 않을까. 세상에는 임신을 하지 않는 여성들도 많은데 임신만이 여성의 위대한 능력인 양 오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비하면 기우일 수 있지만 말이다.

당분간 찬바람이 불어도 고달프지 않을 것 같다. 실컷 웃고 났더니 온 몸에 기운이 다시 도는 것 같다. 삶이 보이지 않는 무엇에 의해 억압받고 있다고 느끼기에 사람들은 요란스럽게 웃으며 현실을 잊으려 한다. 하지만 웃음은 늘 공허한 것이 될 뿐이고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단지 현실을 잊게 하는 무기력한 웃음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을 주는 웃음, 온 몸에서 자유롭게 터져 나오는 즐겁고도 행복한 웃음을 안고 살고 싶다.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꼭 한 번 보라고 추천하고픈 공연이다.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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