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여성혁명가 추근 일대기 다룬 영화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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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동양사학과의 중국답사에 동행했을 때 짜증스런 무더위 속에서도 매우 인상깊었던 한 가지가 있었다면 의연한 표정으로 검을 든 추근의 사진이었다. 그러나 내가 받았던 깊은 인상에 비해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매우 적어서 중국현대사 책에서 몇 줄 정도밖에는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그렇게 추근이 나의 기억에서 사라져갈 무렵 한국영상자료원과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한중수교 10주년 기념 시에진 감독전으로 추근에 대한 영화를 상영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영화 <여성혁명가 추근>은 그녀의 애국심과 삶을 다소 과장하는 면이 없지 않았지만 추근이 청나라 말기의 어지러운 중국사회에서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추근은 1904년 혼자 일본으로 유학 가기 전까지 아이 둘 가진 어느 부잣집 출신 남편의 아내였다. 그녀는 종종 혁명적인 시를 쓰고 검술을 익히며 중국의 미래를 걱정했지만 ‘아녀자’의 신분으로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홀로서기를 결심한다.

여성이 혼자 유학을 간다는 것과 아이에 대한 걱정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지만(영화에서도 이 부분에 상당히 긴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마침내 추근은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생들과 친분을 쌓고 교류하며 서양의 현안들을 광범위하게 연구하고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논한다. 추근의 활약은 일본유학생들 사이에서 널리 명성을 떨쳤으며 중국유학생에 대한 일본의 탄압에 반대해 유학생 대표로 일본정부에 항의하기도 하고 동맹회, 광복회 등 여러 혁명단체에 열성적으로 참여한다.

사람들의 여성에 대한 편견은 추근의 열정으로 인해 이내 탄복으로 바뀌고 만다. 추근 역을 맡은 배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혁명에 대해 큰 목소리로 말하는 장면은 문득 추근을 ‘명예남성화된 여성혁명가로 그리고 있지는 않은가’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지만 남성동지들에게 ‘동지들은 잘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여성으로서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면서 여성의 권리에 대해 씁쓸한 목소리로 말하는 부분에서는 백년의 세월을 넘어 공감을 느끼게 했다.

일본유학을 마치고 저장으로 돌아와 교사생활을 하던 추근은 믿었던 관리의 배신으로 서석린 사건과 연좌돼 지방군에게 어이없이 잡히고 만다. 그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혁명에 대한 열정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고 불행한 생을 보낸 듯 보이지만 영화 속에서 그녀는 죽을 때까지도 당당한 모습을 잃지 않는다.

<혁명군>의 작가 쩌우룽이 19년의 짧은 생을 통해서 청나라 말기에 강한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추근은 비록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혼란한 중국사회에서 진취적인 행동과 사상으로 다른 중국혁명가들과 여성들에게 강한 일깨움을 줬다. 이후에 루쉰은 추근을 애도하며 혁명가의 고기를 먹는 민중의 비극을 그린 작품 <약>을 [신청년]에 기고하기도 했다.

시간은 지났지만 흐릿한 흑백사진 속에서 추근의 검은 언제나 빛나고 있다. 강압적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추근의 혁명정신은 오늘날에도 기억돼야 할 것이다.

전남 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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