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숙/ 이화여대 국제 대학원 교수 choks@ewha.ac.kr

대선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국민들의 관심은 시들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찍을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국민이 정치를 불신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아예 냉소하고 조롱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사랑과 관심을 먹고 자라는 나무와 같다. 이런 풍조가 지속된다면 대한민국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곧 고사할지도 모른다.

정치가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이유는 정치인들이 일차적으로 잘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가 정치불신을 부추기는 측면도 매우 크다. 언론의 일차적인 책무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도하는 것이다. 또한 부패한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며 올바른 여론을 형성할 임무도 언론에게 있다.

하지만 우리의 언론은 사실보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어 믿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국민은 언론이 유일한 정보원이며 이를 철석같이 믿고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 언론은 수많은 개인에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사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에 대한 반성은 고사하고 자사의 이익에 충실하기 위해 국가의 이익은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한 태도다.

워터게이트를 파헤칠 만큼 비판의식이 투철한 미국언론도 국익이 걸린 문제에 관해서는 철저히 자제하는 이성을 발휘한다.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레이건 대통령은 파나마의 수도를 침공해서 마약밀매 혐의가 있는 노리에가 대통령을 생포해 미국 법정에 세웠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의 폭력은 파나마를 주권국가로 인정치 않는 어처구니없는 짓이었다. 더욱이 미군은 노리에가를 체포하기 위한 공습에서 민간인을 200명 이상 살상했다. 그러나 한동안 미 언론은 미국 정부의 야만적 행태에 대해 침묵했다.

국가이익이 걸린 문제에서는 함부로 발언하지 않는 미국언론이 나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두려웠다. 그러나 모든 일이 일단락되면서 공정하기로 유명한 PBS 공영방송의 뉴스에서부터 미 정부의 행태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 비판은 외국인인 나조차도 ‘역시 미국은 열린 사회로구나’ 하는 안도감을 갖도록 만들었다.

우리 언론이 국익을 얼마나 생각하는지는 최근 노벨상 로비 관련 보도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부정한 거래로 감옥에 있는 최규선씨의 보고서를 뉴스위크 한국판이 기사화했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이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 재미있는 것은 뉴스위크 한국판은 중앙일보와 같은 계열의 회사인데 정작 중앙일보는 이 기사를 신뢰할 수 없어 다루지 않기로 내부적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왜 최근 중앙일보 부수가 증가하는지를 눈치챌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과 동아가 소속 정당도 없이 레임덕에 시달리는 대통령을 흔들면서 권력에 맞서 비판정신을 발휘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커다란 착각이다. 비판정신은 정말 두려운 권력자에게 발휘해야 의미가 있다. 철권정치로 기록되는 5공을 ‘전두환 장군은 새시대의 지도자’라며 찬양하던 조선일보가 간신히 숨만 남아 헐떡대는 레임덕 대통령을 끝까지 쫓아가 일격을 가하는 행태는 치졸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설사 최규선씨의 보고서가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고 해도 이를 막무가내로 비판만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요즘에는 국가나 기업은 물론이고 개인도 홍보(PR)를 하는 시대다. 피알(PR)이라는 것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함으로써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다. 따라서 피알에는 기획과 전략이 필요하다. 고은씨나 이문열씨 등도 노벨상을 받도록 정부에서 나서서 지원을 하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도 노벨평화상을 타기 위해 집중적인 노력을 했다.

물론 피알을 음성적으로 하면 로비가 된다. 하지만 확실한 근거도 없는 이런 식의 보도는 노벨상을 폄훼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는 국가적 망신이기도 하다. 이런 모욕을 당한 노벨상위원회가 한국인에게 또 노벨상을 주고 싶겠는가. 자전거를 경품으로 내걸고 독자를 확보하는 불법행위를 자행하는 신문이 모든 사안을 부정적 거래로 해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칼럼니스트 홍재희씨의 말에 공감이 간다.

조선과 동아는 어느 나라 언론인지 묻고 싶다. 그런 동아에 매달 글을 쓰는 내게 독자들은 “너는 어느 나라 국민이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동아에 글 쓰기를 그만두지 않는 이유는 최소한 동아의 식구들은 한목소리라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동아에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믿는다. 어려서부터 동아를 구독해온 나는 이렇게 동아에 대해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면 그래도 동아가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 꿈이 단시일 내에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다. 남성 언론인이 넘쳐나는 언론사가 쉽게 개혁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나는 대한민국의 남성 언론인이 미덥지 못하다.

마약의 천국 콜롬비아에서 마약거래에 얽힌 정경유착 흑막 등을 파헤치다 목숨을 잃은 언론인이 최근 7년간 62명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는 특정한 정치인으로부터 언론장학금을 받은 언론인은 많다고 들었지만 부패와 싸우다 혹은 전쟁을 취재하다 죽었다는 언론인은 별로 들어 본 적이 없다.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군인이 발포를 할 때 거리에는 외신기자뿐이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어디든 전쟁이 났다 하면 달려가는 사람이 이진숙 기자인가. 여성은 문화부나 생활부 등 가벼운 부서만 맡기고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를 것을 기대하는 언론사가 전쟁에는 대범하게도 여성기자를 내보낸다. 자기는 몰랐다며 마누라를 뇌물수수로 감옥에 보내는 전 복지부장관을 보면서 ‘참 한국남자들 쩨쩨하다’는 것을 진작에 알기는 했지만, 깜빡거리는 촛불 같은 현정부를 필사적으로 혼내고 있는 한국 언론도 정말 쩨쩨하기는 마찬가지다.

“용감한 한국여성들이 언론을 주도해야 비로소 언론개혁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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