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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환, 그는 부담없는 가수가 되기는 어려울 거라 말한다. 노래를 통해 담아내야 할 이야기가 너무도 많은 탓이다. <사진·민원기 기자>

호소력 짙은 안치환의 노래는 라이브에서 더 빛이 난다. 최근 콘서트를 통해 만난 그와의 생생한 기억들이 음반으로 재생됐다. 첫 라이브 앨범을 두 장의 CD에 담아 내놓은 그를 지난 7일 마포 작업실에서 만났다. <편집자 주>

연일 강행군을 치르고 나서인지 쉰 목소리에 다소 지친 듯한 표정이다. 최근 그가 충분히 혹사(?) 당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첫 라이브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이야 자신의 필요에 따른 것이라 치부한다 해도 10월 한 달간 줄줄이 이어진 콘서트 일정들은 누가봐도 그의 인기를 실감케 하는 지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의 생음악은 대학가 아니면‘양심수 석방을 위한 시와 노래의 밤’‘다시 서는 봄’‘겨레의 노래’등 메시지가 담겨 있는 제한된 무대에서만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대기업 행사장, 아시안 게임 등에까지 동원(?)될 만큼 폭넓은 대중들과의 만남을 갖고 있다. 그만큼 그의 노래에 귀 기울이는 팬들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그는 그닥 기쁘지만은 않은 눈치다.

“초기엔 대학무대가 주였지만 이제는 사회단체, 대기업 행사, 장애우들 행사에 이르기까지 초청받는 공연이 다양해졌어요. 폭은 넓어지긴 했는데...”

그가 그토록 동행하고자 했던 정신적 동년배, 386세대를 만나볼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정치적 무관심, 대안적 발언에 대한 냉소적 태도, 진지함에 대한 피곤한 회피로 점철된 우리 사회 분위기가 그로선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저항의 가치가 적응의 가치로 매몰되는 현실을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내 모습 변해도 아름다울 수 있는 서툰 발걸음 걸을 수 있는 그런 우리 됐으면...’

그의 이번 라이브 앨범에 수록된 노래 ‘얼마나 더’는 그의 이런 심경을 충분히 대변해 주고 있다. 그는 대중들이 자신을 좋아해 주는 이유를 잘 알고 있지만 무엇보다 언제고 자신의 노래에 귀기울이는 이들과 함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함께 호흡하기를 갈망하고 있다.

“전 부담없는 가수가 되긴 어려울 것 같아요. 영화 ‘오아시스’를 보면서 사람들은 내내 불편함을 감출 수 없었다고들 하던데 제 노래 전반에 깔린 내용 역시 사람들이 불편해 할 순 있어요. 어떤 노래는 아름답고 편안하기도 하지만... 제 음악도 그렇게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노래를 통해 자신의 개인적 삶을 구현하기도 하지만 노래를 통해 발언하고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라 여기는 탓이다. 그래서 그는 “제 자신이 맘에 드는 노래를 더 이상 못쓰게 된다면 절망스러울 것 같다”고 토로한다. 그 자신이 노래한다는 행위 자체가 자신의 두 아이들에게 부끄럽게 여겨질 때, 그때가 자신의 노래 인생을 접어야 할 시점이라고 여길 만큼 그는 자신의 노래에 정직을 담아내고자 한다. 노래를 통해 장사하지 않고 가수로서의 정도를 걷겠다는 얘기다. 오로지 자신의 노래 ‘귀뚜라미’처럼 ‘보내는 내 타전 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돼 울릴 수 있을까 ’를 고민하는 그런 가수가 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는 자신을 민중가수라 칭하는 것에 대해선 손사래를 친다.

“그냥 노래꾼으로 불려졌으면 좋겠어요. 민중가요, 민중가수란 말은 애당초 부적절해요. 오히려 아리랑처럼 오랜 세월 삶 속에서 민중들과 함께 고락을 함께 한 이런 노래야말로 민중가요라 할만하지요.”

다만 자신은 진보적 내용을 담은 노래를 부르는 색깔을 가진 가수라 부르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는 그래서 자신을 고정된 틀 속에 가두는 것은 사절이다. 그는 자신의 5집 앨범 <갈망>을 발표하면서 그 비슷한 심경을 남겼다고 말했다.

“그대여! 나는 항상 그 무엇인가를 속내로부터 갈망하면서 살아왔네. 나의 덧없는 하루하루에, 힘겨운 우리의 터전에 대해, 때로는 서투른 사랑의 대상에 대해 목마른 일상의 바램을 노래하고자 했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나의 노래를... 나는 그대가 원하는 그 무엇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노래꾼이라네. ”

다만 그는 세월의 흐름 속에 자신의 노래가 그 무엇을 대답해 줄 수 있으리라 믿을 뿐이다.

실상 음악에 경계가 있을 리 만무하다. 오로지 분별하는 우리들 어설픈 머리가 음악에 선을 긋고 그 자체를 제 빛깔로, 온전히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뿐.

무대를 내려오면 그의 삶은 어떨까. 그는 지극히 평범한 삶이라 말하지만 그렇게만 보이진 않는다. 무엇보다 간간히 내비치는 딸내미의 도전 앞에서 그는 어찌할 도리없는 불충분한 가장인 탓이다.

“아빠, 가수 그만 두면 안돼요?”

콘서트 장에서 딸내미가 확인하는 아빠의 모습은 영 자신이 보기에도 독점할 수 없는 공인이 돼버린 탓이다. 그래서 그는 가족들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다만 그는 자식들이 자신이 무대 위에서 허튼 쇼를 보여주는 그런 사람이 아님을 알아주길 바랄 따름이다.

그는 제주도 공연을 제외하고는 집에 가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단다. 공연이 끝나고 간간이 아이들과 산행을 하는 것으로 그 공백을 메우고 있다고.

“가수의 아내는 하루에 피가 세 번 솟구친다는 말이 있어요. 공연 다녀보면서 디딤돌적인 삶이 무엇인가 생각해 봤어요. 가정적으로 제 아내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아내가 한 여성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대목에선 아직은 자신이 없어요. ”

다만 자신이 진정 무엇인가 하고 싶어할 때 최대한 도와주겠다는 얘기를 하고 있을 뿐이라고. 어쩌겠는가. 우린 그에게 한 가장으로서의 삶보다 이 시대의 진정한 소리꾼으로서의 기대감이 더 큰 것을. 이제 그도 내일 모레면 불혹이다. 애써 38살임을 강조하는 그이지만 세월을 이기는 장사일순 없을 터. 이번 라이브 앨범에도 수록된, 어느새 배가 볼룩하게 튀어나오고, 몸이 두꺼워진 세월을 느끼게 하는 친구들과 술 한잔 나누고 헤어진 뒤 만든 노래 ‘위하여’의 노랫말처럼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은 것’을 느끼고 있는 터다. 그러나 너무 힘이 빠진 것은 아닌가. 아직은 그런 말들이 자신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싶어 그는 라이브 현장에서 가사를 이렇게 바꿔 부른다고 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있다. 청춘의 꽃이여 힘내자. 파이팅!”

보수의 회귀를 꿈꾸는 음험한 세상의 뒤통수를 치는 그의 메시지가 이렇듯 힘이 실릴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김경혜 기자 musou21@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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