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에 여성문화운동의 키워드가 ‘마녀’였다면 이제는 ‘여신’입니다.”

여성문화예술기획(이하 여문기획) 이혜경 대표는 이번 제주도 여신기행을 시작하는 말문을 이렇게 열었다. 지난 10월 3일부터 5일까지 제주도에서 열린 이 행사는 여성의 아픔과 한을 풀어내는 ‘해녀굿’의식을 시작으로 글로리아 스타이넘과의 대화, 제주여신학자 김순이(제주도 문화제 전문위원)와 함께 하는 설화지 여행 등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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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여성인사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던 이번 여신기행은 올해 들어 지난 지리산 여신기행에 이은 두 번째 행사다. 여문기획은 지난 지리산 여신 축제가 “원혼은 푸는 과정”이었다면 이번 기행은“여성성의 원천을 찾고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출발”이라며 행사 의의를 밝혔다.

‘문화’ 영역을 유효한 운동의 장으로 확장해 왔던 여문기획의 올해 화두는 단연 ‘여신’이다. 왜 여신인가. 이에 대해 여문기획의 이혜경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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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는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착한 여자’에 자기를 맞추느라 자신을 잃어버리는 여성이 많다는 현실인식 속에서 ‘나쁜 여자’가 되자는 슬로건을 내세운 거죠. 유럽을 휩쓴 마녀사냥 속에서 마녀로 낙인찍힌 여자는 능력 있고 창의적인, 그리고 카톨릭 신부보다 인기 있는 여자였죠. 그런 의미에서 마녀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어요. 사회가 요구하는 아이덴티티(identity)를 벗어난 여성. 여성의 에너지를 표현하는 안티 테제로 ‘마녀’가 필요했다면 이제 자신의 고유한 에너지를 찾고 사회적으로 풀어나가는 작업으로 ‘여신’의 의미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아직 ‘여신’이라는 화두나 행사의 뚜렷한 지향은 막연한 상태다. 몇몇 참가자들은 “막상 참여해보니 서로 아는 사람들 위주의 행사인 것 같다. 또한 ‘여신’이라는 화두는 있는데 문제를 관통하는 행사의 통일성이 모호하고 산만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이혜경 대표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비친다.

그는 “늘 그렇듯이 모든 시작은 대중적이지 않아요. 하지만 잠재된 신경줄을 건드리고 있다고 봅니다. 기운이 퍼져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신기행은 행사 특성상 큰 사이즈로 기획할 수 없어서 대중적 참여 자체에 한계는 있어요. 90년대 문화담론의 부상 이후 여성들은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 구체적 일상 속에서 공동의 문제들을 발견하고 표현하기 시작했죠. 지금은 여성 각각의 자기 사고에 근거해 자신만의 방법론을 찾을 때라고 봅니다”라고 여성문화운동의 흐름을 설명하면서 “이 행사 자체가 정서가 감각을 움직이는 일이기 때문에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명시된 주장이나 일치된 목표가 없어 보이더라도 이전과는 다른 방법론이 아닌가 싶어요. 다양함을 실험하고 있는 과정이고 ‘여신’이란 컨셉 자체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풀어낼 것을 함의하고 있어요. 하나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모습, 각자의 여신을 느끼고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앞으로는 보다 대중적인 실험을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문이 정민 기자 knnif@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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