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 여성비율 높아… 한·양 의학 혼용
의료인 여성비율 높아… 한·양 의학 혼용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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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선언 이후 남한사회에 대한 인식급변
여성신문은 전쟁을 반대하는 여성연대(WAW)가 주최하는 ‘소수자의 시선으로 북한 만나기’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 거주하고 있는 북한여성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통해 가깝고도 먼 ‘북한여성의 삶’을 조명·연재한다. <편집자주>

아무개씨- 39세로 함경북도 지역에서 10여 년간 약사로 일했다. 2001년 6월 탈북해서 곧바로 남한으로 왔기 때문에 그를 통해 최근 북한의 소식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 약사가 되기까지 = 집안이 이남 출신이라고 고등중학교 다니던 70년대에 평양서 추방당했다. 성분불량 가족이기 때문에 대학 추천을 못 받았다. 대신 사회생활을 3년 이상 해서 검증기간을 거치면 상급학교나 대학에 갈 수 있다. 나는 4년을 일하고 함경북도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임상의학부와 약학부로 나뉘는데 약학부를 전공한 것은 어머니의 권유 때문이다. 어머니는 “보건부문 사업은 신성하고 좋다”고 하셨다. 그러나 “사람 생명을 다루는 일(의사)은 뒤가 든든해야 한다. 운명(사망)해야 할 사람이 운명해도 고의가 아닌지 보위부가 캐니까. 약사들은 그런 일 안 생기고 좋다”고 하셨다. 약학부 졸업하고 병원에 있었지만 나보다 못한 애들이 행세하는 데 반발심이 생겨 대학에 가겠노라 했다. 함흥약학대학이라고 약학대학은 북한에 1곳밖에 없다. 거기를 졸업하고 약사로 일했다.

◇ 보건인력 구성 = 보건부문은 여자가 월등히 많다. 반면 공과계통은 남자가 주로 간다. 보건 쪽이나 공과계통이나 노임과 사회인식은 비슷하다. 의학전문학교는 3∼4년 과정이고 의대는 6년, 약대 5년이다. 대학에서 전체 여교수 비율은 10%에도 못 미치지만 보건부문에선 여자가 3:2 정도로 더 많다. 병원 내에서 의사와 약사는 동등하다. 노임도 같고 급수시험도 같다. 그렇지만 사람들 인식은 약사를 준의(레지던트)보다 못하다고들 생각한다. 간호원은 100% 여성이고 신분이 다르다. 의사, 약사는 간부고 간호원은 노동자다.

의과대학의 경우 남자들은 제한적인 분야를 맡는다. 주로 외과나 산부인과에 있다. 칼 많이 쥐니까 대범해야 한다는 인식 때문인 것 같다. 보통 기호에 따라 지원하는 분야가 다르다. 외과를 조금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무래도 수술을 많이 하니까 사람들 인식이 높아서다. 수술하면 뇌물이 많이 들어온다. 성형술은 북한에서 상상도 못 해봤다. 80년대 말기부터 평양에 의사재교육대학이 생겼는데 배운 지 오래된 사람들을 재교육시키고 6개월 과정이 끝나면 급수가 올라간다. 물론 교육은 무상이다.

◇ 약사의 일상 = 8시 30분까지 병원에 출근해서 1시간 동안 조회를 한다. 그 동안 환자들이 복도를 가득 메운다. 조회 내용은 뭐 내라, 왜 안 냈냐 등이다. 우스개로 ‘인민학교 학생 때부터 총회는 계속된다’고들 했다.

오전에는 환자들을 돌보고 오후엔 중환자들을 위해 2∼3명만 근무 세우고 다른 작업을 한다. 주로 약초밭을 가꾸는 일이다. 병원이 약초밭을 갖고 있고 의사와 약사가 농사꾼처럼 일했다. 약초 캐기 1년 과제도 있었는데 산에 질리게 다녔다. 약초는 말려서 빻고 분말이나 한재(환약) 상태로 환자에게 준다. 의사처방에 의해서만 투약할 수 있게 돼있다.

갈수록 먹고사는 데 바빠서 지적인 면은 무뎌졌다. 80년대 이후 사람들 인식도 이제 제대로 된 보건인들은 없다고 했고 예전에 공부한 사람들을 더 선호했다. 동네에 환자들이 있으면 집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 사람들이 대가를 가져오면 생활에 충당했다.

◇ 사망사가 발생하면 = 환자가 사망하면 ‘사인토론회’를 열어 의사들이 각자 주장을 내세운다. 한 번은 60살 할머니가 죽었는데 한 늙은 의사가 융통성이 없어서 사인을 ‘기아사’라고 했다. 60살이면 고혈압이나 동맥경화증이라고 붙여야지 정체성없이 사회주의 사회에서 기아사라고 하느냐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환자의 사망을 둘러싸고 유가족과 마찰이 생기는 경우는 드물다. 지역에 병원이 1개니까 그 병원 눈밖에 나면 못 산다. 그래서 의견을 내지 못한다.

◇ 정신과 환자는 = 신경환자(정신과 환자)들은 산간에 병동을 지어 격리시키는데 이런 환자들을 ‘49호’라고 부른다. 의사 1명과 간호원 2명 식모 2명이 교대하고 군에서 식량을 조달하는데 굶기지는 못한다는 인식이 있었고 그래서 사람들은 오히려 그들이 행운아라고 말들 했다.

◇ 한의학과 양의학 = 의학용어는 라틴어가 공용어다. 동의보감이나 사상의학도 본다. 그렇지만 예로부터 이름 있는 사람들(허준이나 이제마와 같은)은 별로 없고 자력갱생한 현대사람들을 내세운다. 중국 영향은 별로 받지 않고 중국에서 들어온 약들을 개인적으로 조금씩 사용할 뿐이다. 그보단 전통요법을 더 선호한다. 양약도 군 약품공급소에서 내리 공급한다. 진료는 주사와 진맥, 침 등을 혼용한다. 80년대 중반 김정일은 ‘모든 치료에 한약을 동반하라’고 지시했다. 의사 약사들이 자습해서 침요법 등 동의학을 습득했다. 자격증 없는 고전 한의사들 있었다. 그런 동의사들이 사고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었고 숙청 당하기도 했다. 경험방(민간요법)도 많다.

◇ 배급이 끊기고 난 이후 = 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배급이 끊겼고 97년부터는 노임이 없었다. 대신 쪽지를 주고 저금소(은행)에서 능력껏 찾으라 했다. 저금소에 가면 지불 받아야 할 액수의 1/3 정도를 받을 수 있었다. 최근 들어 은행종사자들이 행세하고 있다. 거의 공식적으로 반재기를 한다. 그래도 아예 못 받는 것보다 나으니까 어쩔 수 없다.

전반적으로 출근율이 좋지 못했지만 보건 일꾼들은 결근이 없었다. 모두 부업이 있었다. 두부 팔러 다니는 사람도 있었고 나는 국수를 만들어다 팔았다. 의사나 약사들은 사람들과 안면이 많아서 도움도 많이 받고 판로가 많은 편이다. 또 의사들은 진단서를 떼어 줄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에 암거래를 했다. 6일 이내로 진단을 떼어 줄 수 있는데 그 기간이면 중국에 다녀올 수 있는 것이다. 강냉이, 옥수수 1kg 정도를 의사에게 고였다(바쳤다).

지금은 병원에서 약도 얻기 어렵다. UN기구에서 약품을 지원하는데 사찰단이 돈다고 하니까 보급소에서 약을 받을 수 있었고 빈전표도 함께 돌았다. 10대를 주면 50대를 받았다 하고 40대에 대한 처방분을 채우라는 것이다. 갈수록 간부들이 유리해지지만 어쨌든 지원받은 물품은 직·간접적으로 평민에게 돌아간다고 볼 수 있다.

◇ 남한병원과 북한병원 = 남한에 와보니 병원분위기가 상당히 달랐다. 북한서도 24시간 병원을 비우면 안되니까 밤새 수직(철야)을 선다. 3일에 한 번 정도 걸리는데 수직 설 때 환자가 찾아오면 짜증스럽다. 보건인력들에게 권세욕이 많다. 그런데 여긴 고객(환자)이 왕이고 고상한 인간관계를 맺는 것 같다. 북한에선 “남한 의사들은 청진기를 가슴에 대는 게 아니라 돈주머니에 댄다”고 비판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북한이 그렇게 됐다. 권력과 돈을 맞바꾸고 황금만능이 됐다.

◇ 남한에 대한 인식변화 = 한국물품이 들어오고 이산가족 방문하면서 남한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바뀌었다. 이전엔 이남출신이라고 하면 성분 나쁘다 했는데 지금은 눈치가 다르다. 너는 이제 잘 살게 되겠다 한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 상봉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노동신문을 보면 5면이 전부 남조선 괴뢰당 얘기였는데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그 5면이 다 없어졌다. TV에서도 예전엔 괴뢰역도가 훈련한다는 내용이 나왔는데 이젠 다 빠졌다. 김대중 역도라는 말은 없다. 김영삼 역도까지는 나왔어도.

TV는 세 가지 통로(채널)가 있는데 평양중앙, 개성, 만수대 통로다. 우리 고장은 중국과 가까워 길림, 연방통로가 다 들렸다. 연변TV에선 8시부터 12시까지 한국 드라마가 나왔다. <욕망의 바다> <토마토> 등을 봤다. 비가 와도 한 집에 모여 봤었다. 북한에서 남한에 대한 인식이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아시안 게임도 방영한다고 하지 않나. 월드컵 방영도 큰 전진이었을 거다.

정리=조이 여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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